나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 세 가지 이유
출근하는 삶에서 벗어난 지 꼭 4개월 하고도 반을 채웠다.
여전히 괜찮냐고? 완전히 괜찮다.
갭이어를 작정한 적은 없었지만 이대로라면 1년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날은 성실하게, 어떤 날은 빈둥대며 보낸다.
확실히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빈둥대는 나조차도 괜찮다는 것.
예전의 나라면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기만 해도 스스로를 자책하며 결국은 ‘안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땅 파고 가라앉기 시작했을 거다.
나를 미워하고 재촉하고 압박하는 것을 그만두고 나니, 그야말로 마음의 ‘회복탄력성’이 단단하게 자리 잡아간다.
얼마 전에도 한 1주일 정도 아무것도 하기 싫고 도망가고 싶었던 기간이 있었는데, 금방 또 괜찮아져서 다시 제 페이스를 찾았다.
그 무기력한 마음을 들여다봤더니, 결국 거기 깔려있는 마음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더라.
사람 마음이 참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게, 잘하고 싶고 집중하고 욕심이 생기면 달아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진짜 집중해야겠다고 맘먹으면서도 그전에 핸드폰부터 확인하고 싶어지는 것과 비슷하달까(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인스타 브레인> 읽어보니 만국 공통이었음..).
잘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과연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불안과 자괴감이 더해지면, 갑자기 도망가고 싶어 진다.
그런데 또 뭐, 이럴 때 그냥 잠시 도망갔다가 돌아오는 것도 방법인 것 같기도 하고.
도망갔다가 왔더니 이렇게 또 고요하고 차분한 자신감이 단단하게 차오른다.
답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던 마음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던 머릿속에도, 막상 마음이 차분해지니 많은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것을 이렇게 또 절실히 알아가는 중이다.
생각해보니 작년 이맘때부터였다.
퇴사를 하고 정말 열심히 기획하고 만들어 세상에 내보였던 브랜드가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성장하고 있던 차에 모든 것을 멈추고 다시 0으로 돌아가야 했던 그때.
한 번 해봤으니 더 잘할 수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였음에도 자신감보다 두려움이 더 커지는 바람에 몇 달간 마음고생만 하다가 결국 다시 회사에 들어가는 선택을 했던,
유난히 지독하게 덥고 습했던 2021년의 여름.
누군가는 그다지 덥지도 않았다던 작년 여름이지만, 집에서 에어컨도 거의 켜지 않고 살았던 나는, 마음이 힘들 땐 무조건 밖에서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걸어야 했던 나에게는 정말 그 어느 때보다 혹독했던 여름이었다.
분명 같은 상황인데, 작년에는 왜 번아웃이 왔을까
되짚어 보면 그야말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수많은 최악의 가능성들만이 머리를 맴돌았다.
당장 내일부터 통장에 돈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고, 조만간에라도 신용불량자가 될 것 같은, 그야말로 ‘벼락 거지’라도 될 것 같은 마음.
두려움이었다.
사람을 가장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옥죄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땡겨서 걱정하면서 마음이 움츠러들었고, 그런 마음으로는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인스타 브레인>에 따르면, 우리는 여전히 수렵채집인의 뇌를 갖고 있기에,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어진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야 하니까.
두려움을 느낄 만큼 위험 요소가 큰 상태에서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다는 건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아무리 새벽에 일찍부터 하루를 시작해도 고요한 마음에 책을 읽는 시간 집중은 잠깐이었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뭐 하나 제대로 집중해서 해내는 것 없이 시간만 갔다.
그렇게 불안하게 보낸 하루 끝에는 자괴감이 밀려왔고, 이런 하루가 매일매일 반복됐다.
다음 날을 맞이하기 싫어 기상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그러면 또 반복되는 자괴감.
정말 출구가 없어 보였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두려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번아웃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상황까지 치닫게 만들었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생각에 결국 회사 밖에서 내 것을 하겠다는 도전을 멈추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밀었다.
웃기게도, 그렇게 살겠다고 뭔가를 하면서도 남들이 알까 봐 걱정됐다.
내 실패를, 실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임을 누군가 알게 될까 봐 걱정했다.
야심차게 회사 뛰쳐나가 창업도 했는데 실패했다고 비웃는 사람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내 번아웃의 두 번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으니 타인의 시선에 더 민감해져 갔고, 누가 보지도 않는데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와의 비교가 끝도 없이 시작됐다.
SNS에서 마주하는 그 누구도 지금의 나 자신보다 나아 보였다.
창업을 해서 브랜드를 키워가고 있는 사람이든, 회사에서 자기 일을 잘 해내고 있는 사람이든 그 누구든 그냥 다 좋아 보였다.
아니 심지어, 회사 잘 다니고 있는 남자친구 한테마저 불안을 느꼈다.
7년 동안 착실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문제는 내가 마음이 건강한 상태라면 그저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으로 끝났겠지만, 단단하지 않았던 내 마음은 결국 ‘너는 왜 그러고 있어?’라는 생각을 뱉어내고 만다.
‘왜 퇴사를 했어? 그대로 있었으면 지금쯤 연봉도 오르고 인센티브도 주식도 받았을 거잖아.’
‘사실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착각 때문에 이렇게 된 거 아니야? 그냥 살던 대로 살지 왜 그런 선택을 했지?’
‘몇 개월 동안 만든 그 브랜드보다 뭔가를 더 잘할 수 있겠어? 도대체 뭘 할 수 있는데?’
끝도 없는 비교는 자책으로 이어지고, 결국 내가 과거에 한 선택에 대한 후회로까지 이어졌다.
이게 정말 최악이었다고 생각한다.
후회만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나를 점점 더 좋아하게 만들었던 퇴사라는 선택을, 내가 정말 가치 있다고 느꼈던 분야에서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를 후회하고 있었다.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지. 몰랐어서 할 수 있었던 선택이었어.’
내가 나 자신에게 해야 했던 변명들.
그때는 전혀 몰랐다.
실패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실패 그 이후가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실패를 다루는 건 결국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그때는 마음을 먼저 돌봐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정신없이 정신과 정보를 검색하고 있던 그 순간조차도.
지금부터의 나는 삶의 선택지가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돈이 떨어져서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취업했다.
그게 작년 내 도전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던 거지.
<분명 조만간 다음 이야기를 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