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틋한 나를
성인이 된 후로 단 한 번도 맞아보지 않았던 독감 주사를 맞아 봤다. 금년에 병원에 자주 다니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내년 상반기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아프게 되면 또 살이 빠져버릴 것 같아서. 주변에서는 독감이 유행이라는 이야기와 걸렸다더라는 말, 누군가는 열이 40도까지 올라 응급실에 실려갔다던가. 관련된 말들이 여기저기서 속속들이 들려왔다.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은 뒤 뉴스에서 떠들썩했던 심장 부작용이 왔던 사람이 바로 나다. 두드러기 발진까지 도져 반년에서 일 년은 고생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아직 의학적으로 안전하다 명명되기엔 역사가 짧았던 백신을 굳이 몸에 꽂아 생체 실험을 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까지 힘들게 부작용을 겪고 난 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고, 걸렸을 땐 며칠간 통증에 잠 한숨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상태로 병원을 전전해가며 한동안은 거의 매일 링거를 팔에 꽂아야만 했다. 후유증도 반년이 좀 넘게 갔었던 것 같다. 이후로 백신 주사란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올해 독감이 유독 무섭다던데. 독감 주사는 코로나 백신과는 달리 그래도 의학적 데이터가 많으니 좀 낫지 않을까? 생각하며 수십 번을 고민하다 결정했다. 그래, 한 번 맞아보자!!!
첫날엔 가벼운 몸살. 이쯤이야 어느 정도 예상했으니 집에 있던 상비약을 먹었다. 다행히 서서히 증상이 가라앉는 듯해서 안심했지만 다음날이 되자 약이 듣지 않고 점점 심해졌다. 회사 근처 약국에 가서 상태를 설명하니 다른 약을 권해 줬다. 복용하니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가, 그다음 날이 되자 또다시 으슬으슬 쑤셔오는 몸. 아무래도 약국약만으론 증세가 해결되지 않는 듯 해 동네 병원에 가니 해열진통제를 링거로 놔주셨다. 그러면서 지금은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라 병원약은 혹시라도 너무 셀 수도 있으니, 대신 타이레놀 두 알을 하루 세 번 복용하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의사 처방대로 약을 먹고 한숨 푹 자고 저녁에 일어났는데. 나아지긴커녕 웬걸? 갑자기 시작됐다. 미칠듯한 메스꺼움과 울렁거림이. 살면서 체해서 토해본 건 물론, 그 괴롭다는 노로바이러스에 걸려 입원 신세도 져 봤지만 이 정도로 속이 메슥거리면서 온몸이 뱅뱅 도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몸이 거꾸로 돌면서 뒤집히는 듯한 느낌. 도대체 이게 뭐지. 게다가 코로나 백신 부작용 때처럼 심장도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복합적인 고통에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병원에서는 타이레놀을 먹으라고 했는데. 도무지 약이고 뭐고 그 무엇도 입으로 넣을 수가 없었다. 삼킬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든 눈에 보이면 역해서 토가 밀려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엉금엉금 방에서 기어 나와 부모님에게 어디든 지금 하는 병원에 찾아가 수액을 맞든 진료를 보든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날엔 링거는 맞지 못하고 결국 처방약만 받게 됐었는데, 약을 먹으니 다행히도 울렁거림은 조금 나아져 잠에 들었다.
그다음 날. 잠들 땐 괜찮았던 몸이 왜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보다 메스꺼움이 몇 배는 더 심해졌다. 앞이 하얘지면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일어서는 건 물론 이젠 앉아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절망스러웠다. 도대체 독감 주사 하나로 이렇게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건가. 이번에도 겨우 기어가다시피 거실로 가 부모님에게 제발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만약 그날 집에 아무도 없었더라면 필히 119를 불러야 했으리라. 다행히 차로 5분 거리에 주말에도 여는 병원이 있었다. 그런데 나가려면 옷을 갈아입어야 했는데. 그 어떤 미세한 동작조차 무리가 되는 상태였어서 그런지, 옷을 찾아 입다 그만 토해버렸다.
어찌어찌 몸을 떨어 가며 아무거나 주워 입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도무지 서 있을 수 조차 없어 주저앉아 내려갔다. 새하얗게 창백해진 얼굴로 병원에 이송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가는 길에 차의 움직임 때문에 멀미까지 겹쳐선, 병원 앞에 내렸을 땐 한참을 일어날 수가 없어 길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정신이 아주 조금 돌아와서야, 한 걸음씩 발을 천천히 내디뎌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유독 대기자가 많았다. 주말이라 더 그랬을까. 앉아있을 힘도 없었기에 함께 간 엄마 다리를 베고선 옆으로 널브러져 누워 축 늘어진 채 진료 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차례가 왔다. 엄마 팔을 붙들고 겨우 일어나 진료실에 들어가선 독감 주사를 맞은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상태를 최대한 세세히 설명했다. 대기가 길었던 탓에 병원 마감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진료를 보게 됐었는데, 의사 선생님 눈에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보였던 걸까. 수액을 맞고 가라고 하신다. 보통 링거는 건강한 사람 기준으로 평균 30~40분이면 족히 다 맞기 마련인데 당시 나는 심장 부작용도 같이 왔었다 보니 한 시간 반동안 맞는 걸로 오더를 내려주셨다. (링거는 사람에 따라 빠른 속도로 맞으면 간혹 심장 박동이 빨라지거나 속이 메슥거리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걱정이 퍽 되셨는지 맞고 나서 얼굴도 다시 한번 보고 가라고 하신다. 졸지에 의사도 간호사도 나로 인해 한 시간 반 넘게 야근하게 됐다. 너무나도 죄송했지만 일단 살고는 봐야겠어서, 처방해 준 약을 받아먹고 곧장 링거실로 향했다. 아, 그러고 보니 독감 검사도 했더랬다. 간혹 백신 주사로 독감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부작용이라 치기엔 아무래도 상태가 복합적으로 너무 안 좋아 보이니 혹시 독감일 확률도 있다며 검사를 해주셨는데, 결과는 그저 후유증이라며 앞으로 백신은 웬만하면 맞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해 주셨다.
수액을 맞으니 그나마 일어서고 걷는 건 일시적으로 가능해지게 되어, 감사함을 전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전날 병원에서 맞은 해열진통제와 복용한 타이레놀이 이미 백신 부작용으로 취약해진 내 몸엔 많이 버거웠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어떻게 한 순간에 이 지경까지 될 수가 있는 건지..... 사람 몸은 참 어렵고 이해하기가 힘들다. 여하튼, 그날은 아예 금식을 하라고 하셔서 완전히 속을 다 비운 채 잠에 들었고 다음 날 눈을 떠서 약을 먹으려 했는데. 살면서 아무리 아파도 이렇게까지 기운이 다 빠진 적은 없었는데. 하물며 노로 바이러스에 걸려 입원했을 때도 두 발로 걸어서 병원에 갈 순 있었다. 그런데 그날엔 방에서 부엌까지 약 먹으러 가는 그 몇 걸음조차 도무지 갈 수가 없었다. 하필 근처엔 핸드폰도 없었고, 부모님도 잠시 집을 비우셨던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방과 부엌 사이 어딘가에서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대로 쓰러지듯 누워 잠에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엄마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눈이 떠졌다. 겨우 입을 떼고선 약을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약과 물을 건네주시며 어제부터 굶었으니 미음이라도 좀 먹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셨지만, 도저히 뭔갈 입에 넣을 상태가 되지 않아 고개를 저으며 약을 삼킨 그 자리에서 몇 시간을 또 내리 잤다. 그날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드문 드문 한 기억으론 눈을 뜨면 약을 먹고, 잤다. 울렁거림이 조금 나아지고선 미음을 먹고 다시 약, 그리고 잠. 조금 더 괜찮아진 뒤엔 죽을 몇 숟갈 떴다. 그리고 나선 다시 약과 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어둑한 밤이 되어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내일은 출근을 해야 했다. 그런데, 집에서 거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데 이 상태에서 업무라니. 도저히 불가능했다. 급히 팀장님께 연락을 드려 상황을 설명드리고선 병가를 냈다. 다음 날도 계속 식사, 약, 잠을 반복했다. 그다음 날엔 여전히 어지럽긴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집에서 걸을 수 있는 정도의 상태는 되어, 재택으로 당장 급한 일만 처리한 뒤 휴가를 냈다. 이후로도 출근은 어려워 하루를 더 쉰 뒤 그 주엔 계속 재택을 했다.
독감 주사를 맞고 나서 몸살에 걸렸다던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토록 거동조차 힘들 정도로 혹독하게 앓는 경우는 정말이지 듣도 보도 못했다. 이런 나를 보다 어머니가 하신 말이 있었는데, "아이고... 남들은 겪지 않고 지나가는 아픔을 호되게 앓고 넘어가네." 그런데, 안타까운 마음에 던지신 그 짧은 말 한마디가 왜인지 내 삶을 관통한다고 느꼈다.
늘 남들보다 깊게 아파온 영역이 있었다. 몇 번의 트라우마로 변질되어 버린 삶을 회복시키고자 시작했던 상담도 어느덧 십 년이 되어 간다. 주변에 상담을 경험한 사람은 있어도 나처럼 길게 받은 경우는 보지 못했다. 마치 이번에 내가 경험한 독감 부작용처럼.
며칠 뒤 상담에 가서 이번에 겪은 이야기를 풀었더니, 이토록 흔하지 않은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온몸으로 받아내 겪은 마음이 어떠냐 물으신다. 씁쓸하고 슬프지만 별 수 없지 않겠냐는 답을 했다.
"엄마가 하신 그 짧은 한 마디가 왜인지 제 삶을 관통한다고 느꼈거든요? 중학생 때의 일도, 성인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하다 벌어진 일도. 그 외의 크고 작은 사건들 말이에요. 물론 세상 어딘가엔 분명 저보다 더 크게 앓고 깊게 아픈 사람도 많겠지만요, 최소한 지금까지 살면서 직접 눈으로 마주해 온 사람들의 범위 내에선 제가 경험한 정도의 상황과 PTSD를 겪은 사람은 없었거든요? 보인다 해도 그저 유튜브나 책, 인터넷, TV 같은 곳에서나 존재했고요. 그래서 그런가. 독감 주사를 맞고 나서 이 정도로 후유증을 앓았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참 서글펐던 것 같아요. 이번에도 왜 또 나만 이 지경이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주변에 맞았던 사람들은 아무도 저만큼 힘들었던 사람이 없었는데. 증상이라고 해봤자 몸살감기 정도였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굳이 인생에서 경험하지 않고도 무탈히 잘 넘어가는 일을, 또 이렇게 나만 고역스럽게 지나가는 건가 싶어서. 좀 많이 씁쓸하고 슬펐어요. 괜스레 화가 나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나라는 사람이 이런 존재인 걸. 때로 유독 길고 깊게 아파도 스스로를 돌보며 사는 수밖에요. 이번에 몸이 아프면 병원에 찾아가 수액을 맞았던 것처럼요."
꼭, 강해지고 싶던 세월이 있었다. 겪어온 아픔을 외면하고 부정하며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왔었다. 진실로, 내가 그런 줄 알았고. 주변의 몇몇은 나처럼 되고 싶어 하기도 했다. 무슨 일을 겪어도 초연히 지나가는 사람 같다면서. 그런데 상담을 받으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길어져 갈수록 알게 됐다. 나의 소망대로 나와 남 모두에게 괜찮아 보일수록, 그런 체 하는 모습 뒤엔 이미 한참 전부터 망가져버린 내가 그 누구도 찾아올 수 없는 음지에 스스로 처박혀선 한 서린 눈물을 꾸역꾸역 어떻게든 숨죽여 참아 삼키고 있었다는 걸. 눈알의 실핏줄이 다 터져 피눈물이 줄줄 흐르다 못해 어느새 온몸을 다 덮어버린 줄도 모른 채.
여전히 덜 아프고 싶어 진짜 마음을 외면하곤 한다. 그저 부디 남들만큼만 무던히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 모습으로 불완전하게 살아가는 법'을 더디게나마 익혀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때로는 스스로를 내려놓고 땅을 치며 엉엉 소리 내어 울어 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진짜 나로서,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존재하길 원한다.
유약하고 연약하여 유난히 깊고 길게 아파하는 나를 마주해야 할 일이 앞으로도 수없이 많을 테다. 그때마다 오늘처럼 다시금 서글프고 몸도 마음도 매번 진통을 겪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하겠나. 그런 나를 곁에서 여전히 바라보다 결국 애틋함으로 끌어안는 수밖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