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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고통의 행운

by 리솜

어중간하게 고장 난 삶은 작가가 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모름지기 누구나 납득할만한 서사가 있어야 흡입력 있게 글이 읽힐 텐데. 내가 무슨.

차라리 명료히 아팠으면 했다. 정상적 생활이 어려워 입원이 필요했다던지. 누가 들어도 인정할만한 정서적 아픔을 겪은 불운한 삶이라던가. 충분히 이해받는다 느끼기엔 고작 이만큼의 상처였고 멀쩡 하다기엔 수천 개의 바늘에 피부가 찔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또 죽을 정도는 아닌. 고통에 신음하며 숨을 껄떡이다가도 이내 정신은 차려지는 그런 인생.


자가 회복에 무한히 실패하고서야 주위에 도움을 청했다. 철저히 망가졌다면 좀 더 일렀을까? 서서히 곪아가던 상처는 점차 익숙해져선 통각이 무뎌졌다. 어느 날 정신이 들고 보니 팔 하나가 썩어 잘려 있더라. 차라리 처음부터 심각한 상태였다면 곧장 도와달라고 외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병원에 실려갈 정도는 아닌 통증을 어떻게든 홀로 견뎌내다 외려 더 깊게, 오래 아팠다고 하면 믿으려나. 끊임없이 어중간하게 숨을 조여오던 고통이야말로 내겐 불운이었다. 불구가 되어버린 상태를 알아챈 건, 엉겨 붙던 피가 시커먼 돌덩이가 되어서였다. 몸의 어딘가가 콱 막혀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느껴져서야 뒤늦게 상담소를 찾았다.


그로부터 약 십여 년이 흐른 2024년의 늦여름과 가을 사이,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다. '내밀한 10년간의 상담 이야기를 용기 내어 이곳에 내보일 때 누군가는 저로부터 희망과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로. 그렇게 '작가'라는 단어가 인생에 훅 들어왔다. 장래 희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됐던 어느 날부터 출판 작가는 남몰래 품고 있던 비밀스러운 꿈이었다. 그 여정에 기필코 한 발짝 내디뎠다는 뿌듯함과 함께 생의 오랜 슬픔이었던 "어중간함"이 또다시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삶도 글도 세상엔 나보다 극적이고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람이 넘쳤다. 하루는 상담 선생님에게 말했다. "저는 늘 애매한 아픔을 이고 지고 살아온 것 같아요. 누군가는 제 이야기를 듣고 '힘들었겠다'라고 공감하거나 응원해 주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그다지 가닿지 않는다고 느끼거든요. 왜 이렇게까지 길고 깊게 아파하지? 라며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고요. 고통에 대한 민감도는 개개인마다 다르니 저와 같은 경험을 해도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잘 사는 사람도 많을 테고.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나. 나처럼 조용히 신음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세상에 알리고, 뒤늦게라도 상처를 이해받고 싶었어서요. 그런데 쓸수록 애매하다는 생각만 드는 것 같기도 해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제가 누구나 납득할만한 사연을 가진 사람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글쓰기에 수려한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살면서 만나온 타인들에 비해 트라우마를 전면으로 마주한 세월이 명백히 긴 건 맞지만 고통의 강도가 다수의 마음을 머물게 할 정도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들었다. 스스로 여기기에, 작가란 모름지기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글감이 있어야 한다는 편견과 강박이 무의식 중에 있었던 듯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뭉툭한 칼날로 조여 오던 숨을 적당히 견딜 수 있었던 인생이라 다행이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어떻게든 버틸만했던 덕에 살아남아 작가가 되었으니, 불운이라 여겼던 고통의 순간들이 되려 꿈과 연결되는 행운이었으리라.


내담자 입장에서의 십여 년 동안의 상담 경험을 활자책으로 펴낼 날을 꿈꾼다. 처음 상담소 문을 열기로 결심했던 시기엔 주위에 비슷한 경험을 지닌 사람이 없었다. 도움을 얻고자 서적을 찾아봐도 상담사 입장에서 쓰인 책들만 한가득. 본능적 직감에 의지해 칠흑 속에서 손을 더듬어 가며 생존해 왔다. 이전의 나처럼 막연함에 길을 잃고 망연한 어느 누군가에게, 더는 혼자가 버거워 상담을 고민하던 혹자에게 긴 시간 헤매어 온 내 삶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순간의 동행이자 위로이며 도움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이름 모를 당신을 먼발치에서 진실로 응원하고 있는 내가, 여기 이곳에 살아 있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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