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애매한 섭식장애입니다.

스스로를 지키고 싶어서요.

by 리솜

다 먹지도 못할 열 가지 맛의 홀케이크를 눈앞에 두고 한 숟가락씩 맛보며 매장 직원과 대화한다. 환히 웃으며 친절하게 응대해 주시는 아주머님. 그런데 왠지 그 해사한 웃음 뒤엔 남모를 그늘이 드리워져 있을 것만 같다.

이내 자신이 일하는 주방으로 돌아가 앉으신다. 별안간 보이는 그분의 공허와 무기력. 텅 비어버린 표정으로, 멍하니 어딘지 모를 곳을 응시한다.



한동안 코로나로 격리가 당연했던 시절, 재택근무를 하며 배달을 시키는 게 일상이었다. 조금 특이한 건 식사류가 아닌 디저트류를 그렇게도 많이 주문했다는 거다. 하루에 한 번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시키기 시작했던 배달은 어느 날엔 두 번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집에 들인 음식은 다 먹지도 못한 상태로 냉장고에 쌓여 갔다. 때로는 방 안에 두다 버리기 일쑤. 이제와 생각해 보면 허한 마음을 이런 식으로라도 메우려 애썼던 것 같다. 이제는 다행히도 중독의 경향성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 배달의 횟수도 버리는 양도 현저히 줄었지만, 여전히 디저트는 내 삶에 필수다.


어린 시절부터 늘 마른 체형에 양도 적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햄버거 하나를 다 먹어본 적이 없다. 식당에서 나오는 밥 한공기도. 그래도 그때는 남겨봤자 밥 몇 숟가락, 햄버거 두어입 수준. 누군가의 시선에서 그저 '아 저 사람은 적게 먹는구나.' 싶은 정도였다.


식습관이 두드러지게 바뀌기 시작한 건 성추행을 겪은 그날 이후부터였다. 평소와 별다를 바 없이 먹어도 희한하게 시도 때도 없이 체하고 토했다. 학기 중 수업을 마치고 허기가 져 뭔가를 먹고 나면 집 오는 길 대중교통에서 속이 자주 울렁거렸다. 꾸역꾸역 비집고 올라오려는 무언가 들을 꾸욱 꾹 참아내며 억누르다 이내 차가 멈춰 서면 곧장 뛰쳐 내려 화장실로 달려가길 여러 번. 작은 칸 안에서 홀로 외로이 소리 내며 속을 게워내고 나면 떨리는 몸으로 스스로를 겨우 진정시킨 뒤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소화제를 들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되고, 그즈음부터 두통도 일상적으로 찾아왔다. 잦은 감기와 몸살, 심해져 가는 생리통은 덤이었고. 이제와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게 트라우마로 인한 신체화 증상이었다. 몸속으로 웅크려 숨어든 감정이 보내는 구조 신호였다. 그러나 그땐 도무지 알아챌 방도가 없었다.


그저 몸의 문제인 줄로 알고, 토하는 게 두려워 극도로 적게 먹기 시작했다. 체질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항상 저체중이었던 데다 어딘가 조금 아프기라도 하면 2-3킬로씩 순식간에 쑥 빠져 버리곤 하던 내게 체한다는 건 곧 건강과 직결된 생존이었다. 연예인 중 박소현 씨가 소식으로 유명하다. 계란 한 알도 여러 번에 나누어 먹고 김밥도 두어 개면 배가 부르다고 한다. 그 모습이 딱 나였다. (박소현 씨가 나처럼 심리적인 이유로 인해 식습관이 변하신 건지 타고난 건지는 전혀 모른다. 그저 식사량에 대한 공통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제 나름의 과식으로 김밥을 세 개쯤 집어 먹으면 더부룩함이 몇 시간을 간다. 얹힌 느낌에 소화제를 찾다 문득 자괴감이 든다. '성인의 몸으로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어린이집 다니는 조카도 나보다 많이, 잘 먹던데.'


식당에 갈 때면 괜스레 눈치 보이기 일쑤다. 새로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면 더욱이. 주문한 음식을 남기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게 다가와 물으시기 때문이다. "혹시 맛이 좀 취향에 안 맞으셨을까요?"

밖에서 혼자 식사를 해야 할 때면 되도록 포장을 선호하지만, 최근 어쩔 수 없이 국밥집을 가게 될 일이 생겼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픈 주방에 바 형식이었다. 보통은 구석진 테이블 자리에 앉아 존재감 없이 먹고 나오는 편인데, 전부 바 좌석이다 보니 내가 먹은 식사량을 주방장과 직원이 다 알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순간 나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밖은 38도에 육박하는 그야말로 절절 끓는 날씨. 더는 음식점을 찾아 돌아다닐 체력이 안 되어 결국 자리에 앉고 말았다. 역시나 몇 숟가락 뜨니 곧바로 불러오는 배. 국밥이나 면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릇 안에서 점점 양이 불어나 식사를 마쳐도 여전히 새것처럼 보인다. 그날따라 사장님과 직원 분 모두 너무 친절하셔서 괜스레 남긴 음식이 죄송해졌다. 맛없어서 숟가락을 놓은 게 아닌데. 새벽부터 열심히 재료 준비하셔서 만든 음식이실 텐데. 식사를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갓 나온 메뉴처럼 따뜻하게 남아 있는 그릇을 보면 분명 염려하며 물어보실 것 같았다. 눈알을 굴리며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다 일부러 두 분 모두 바쁘게 일하실 때 후다닥 짐을 챙겨 계산대로 도망치듯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싹싹하신 직원 한 분이 내 쪽으로 재빠르게 오셔서는 혹시 음식이 입에 안 맞으셨냐고 묻는다. 적게 먹어서요.라고 사실대로 답하기엔 마치 시식만 하고 남긴 모양새라 아무래도 영 믿지 않으실 것 같았다. 고민하다 둘러댔다. "아, 제가 사실은 좀 체한 상태에서 왔거든요. 먹을 수 있을 줄 알고 시켰는데, 속이 별로 좋지 않다 보니 잘 안 들어가네요. 맛있어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분명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그에 상응하는 식사를 한 건데도 이런 일이 벌어질 때면 어째서 자꾸만 죄송해져 선의의 거짓말을 하게 되고 만다.


타인과 동행해 식당에 갈 때도 매끼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나 누군가가 선심으로 밥을 사주는 자리라던가, 내 식사량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라면 더욱이. 적게 먹는 모습이 누군가를 신경 쓰이게 만든다는 생각에 괜스레 스스로가 싫어지면서도 이 모습 그대로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하며 충돌한다.


"벌써 배가 찼어?"

"한 숟갈이라도 좀 더 먹어봐."

"아이고, 이렇게 먹고 어떻게 살아."


걱정해 주는 소리들이 익숙하다. 영 불편한 마음을 못내 감추며,


"제가 원래 되게 적게 먹어서요. 예전에 자주 체한 뒤로 식사량이 줄었거든요."

"조금만 더 먹으면 얹힐 것 같아서요."

"제 나름으로는 진짜 배불러요. 더는 못 먹을 것 같아요."


이런 말들을 어쩔 수 없이 일상적으로 돌려준다.


입으로 들어가는 하나하나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염려하며 삼킨다. 얼마 전엔 식도염을 제대로 앓았는데, 최근 미미하게 계속 증상이 남아 있어 이 또한 먹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음식을 즐기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진단받기엔 애매하다. 거식도 아니고, 폭식도 아니고, 그 둘 사이를 오간다던가 혹은 소위 말하는 먹토라던지 그런 대증적 섭식장애 증상도 없다. 그러나 명백히 불편하다.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는데. 하루 세끼는 물론 중간중간 목을 타고 넘어가는 모든 것에 신경이 예민하게 가 있다. 자칫 아플까 봐 겁이 난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성추행이 벌어졌던 그날, 몇 시간 뒤 가족과 다른 분들과의 식사 모임이 있었다. 겪은 일을 숨겨야 할 것 같았다.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달랐던 그땐, 피해자인 나에게 날아올 형체 모를 화살이 두려웠다. 앞에서는 큰일을 겪었다며 위로해 줄지라도 그 뒤의 속내가 어떨진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안 그래도 금이 쩍쩍 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유리에 톡, 하고 아주 미세한 자극이라도 가게 되면 와장창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아무 일을 겪지 않았다. 별일 아니다.'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며, 식사를, 했다.


누구든 부여잡고 엉엉 소리 내어 울며 입 밖으로 당한 일을 삼키는 대신 토해냈다면 그날 이후의 삶이 어쩌면 참 많이 달라졌을까. 그러나 그땐 그게 나를 지키는 최선이었는데. 애초에 눈물 흘릴 여유나 틈 따윈 없었다. 좀 전에 겪은 일이 무엇인지, 감각조차 잘 되지 않는 상태였으니까. 그날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달리 행동할 도리는 없을 테다. 그 사실을 알아서, 마음이 아리고 먹먹하다.


꿈속에서 다 먹지도 못할 열 가지 맛의 홀케이크를 시켜두고 맛만 보고 남기는 모습이 꼭 그날 이후의 나를 닮았다. 좋아하는 게 눈앞에 잔뜩 있어도 양껏 즐기며 먹지를 못한다. 그날로 돌아가 얹힐까 봐. 체할까 봐. 아플까 봐. 또 살이 빠질까 봐. 흔히 말하는 일명 키빼몸 120이라는 야윈 몸무게라도 지키고자 시작됐던 식이 강박은 매 순간 음식으로부터의 유희를 앗아갔다. 무기력과 공허는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됐을까. 소식과 절식으로 표현된 생존의지 그 이면엔 삶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불안이 한가득 웅크리고 있었다. 그로 인한 정서적 허기는 달콤한 것들로도 메워지지 않았고.


상담 선생님은 이토록 불완전한 나를 인정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다른 사람들처럼 음식의 맛에 집중하며 건강하게 딱 1인분만, 아니 0.5인분 만이라도 기꺼이 잘 소화해 내고 싶은데. 누군가에겐 이미 당연한 일상을 나도 살고 싶은데. 품었던 소망을 포기하라는 것처럼 들려 좌절감이 오면서도 기묘하게 숨통이 트였다. 동시에 내겐 아직 버거운 해답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전히 빼빼 마른 외형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매일 자주 건강해 보이는 몸이 되길 바란다. 복스럽게 먹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와 같이 식사를 할 때면 그를 의식하기보다 함께하는 시간 그 자체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게 숨 쉬듯 당연했던 여느 날을, 찾고 싶다. 간절히 바랄수록 스스로를 부정하고 멀어지는 길인 걸 알면서. 희망을 기어이 고이 품은 내가 애틋해 놓지 못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