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마주할 수 있으려나
식습관은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성추행을 당한 후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이유 모르게 자주 체하고 토하다가, 무의식 중에 어느 날 스스로 깨달았던 것 같다. 이렇게 온몸으로 고통을 쏟아내도 그 누구도 내 마음엔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걸. 그래, 심지어 나조차도. 그렇게 끊임없이 외면받다 유일하게 괴로운 증상을 가라앉혀주는 약을 서서히 찾기 시작했었나 보다. 소화제부터 두통약, 감기약, 몇 년간 끊지 못했던 판피린 등. 처음엔 소화 쪽에만 문제가 있다가 점점 감정은 다른 부위에도 전염되듯 번지며 퍼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건강 악화가 마음과 연결되어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나는, 스스로를 달래는 방법을 몰라 그저 삼키기만 하면 몸에 빠른 작용을 하는 여러 약들을 한동안 꽤 오래, 자주 일상처럼 복용했다. 그렇게라도 삶을 유지하긴 해야겠었으니까. 숨통을 끊을만한 용기는 나지 않았던 날도 여러 번 있었으니까.
지난 글에서, 사람들 앞에서 나조차도 속이며 괜찮은 체하던 모습 뒤엔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피눈물을 흘리다 어느새 온몸이 피로 뒤덮여 버린 진짜 내가 있었다고 했다. 그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망연히 궁금해하던 중 마음속에서 한 마디 말이 온몸으로 울려 퍼졌다.
나에겐 내 편이 평생 아무도 없었어.
그 말이 진실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느꼈던 내가 아주 오랜 시간 존재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혹여 누구에게라도 들킬까, 하물며 차마 나 자신에게조차 그 모습을 보일까 두려워 혼자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울음을 끅끅 참아 가며 마음 깊숙한 곳, 그 누구도 시선조차 주지 않는 곳에 긴 시간 홀로 처박혀있었을 외로움의 깊이가 나는 아직도 감히 상상되지 않는다.
이번에 독감주사 부작용으로 토하는 일을 겪게 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생각해 보니 자주 체했던 그 시절 이후로, 노로바이러스에 걸려 입원 신세를 졌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십오 년간 단 한 번도 토한 적이 없었다. 뭔가를 잘못 먹거나 과식을 하게 되면 당연히 밖으로 뱉어내야 하는데. 이 정상적 과정을 거세시키기 위해 소식과 절식 사이에서 오랜 시간을 살다, 조금이라도 속이 불편해지면 곧장 약을 복용했다. 마치 꾸역꾸역 어떻게든 삼켜낸 감정을 결단코 마주하지 않겠다는 듯이.
늘 체하지 않을 만큼만 먹으려 애썼다. 식습관처럼 관계와 일상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주변 사람들에겐 작은 말실수조차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회사에선 티끌만 한 실수도 보이기 싫었다. 주말 중 하루는 살아갈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꼭 쉬어야 했고, 휴식하려던 날 누군가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어떻게 해서든 약속을 미뤘다. 누군가를 만날 때의 1순위는 컨디션.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차라리 보지 않기를 택해왔다. 좋지 않은 상태로 나가게 되면 상대가 날 신경 쓰게 되니까. 그 자체도 불편하고, 내가 아픈 것도 싫으니까. 자기 돌봄과 강박적 성향의 행동 통제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 가며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 갔다. 아니다, 어쩌면 두 가지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으려나. 나를 지키기 위해 통제 성향이 커져가기 시작했던 것일 테니.
참고, 참고 또 참고, 그럼에도 다시 인내하고, 꾹꾹 눌러 담아 꾸역꾸역 어떻게든 감정을 씹어 삼키려다 토하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와야만 했던 것들이 시야에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다 어느 날엔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당황하며 또다시 밀려 올라오는 구역감을 참을까 망설이다 느낀다. 더는 안 되겠다고. 그러다가도 어느 날엔 관성처럼 결국 억누른다. 마치 오래전부터 토하는 방법을 잃어버려야만 했던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함께 앓는 느낌이다. 증상은 독감 부작용으로 시작했지만, 이후로도 여러 증세를 통해 감정이 분출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저 이 고통을 느끼는 것 외에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깊고 짙은 어둠 속에서 피눈물을 쏟던 가여운 존재가 드러난 뒤 그 곁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된 나의 상황이 참으로 견디기 힘들다. 오래도록 버텨온 네가 안쓰러워 심장이 뜯겨나갈 듯 미안하고 애틋하면서도, 지금의 내가 덜 아팠으면 좋겠다. 홀로 이 시기를 보내기엔 힘이 든다. 도움이 필요해 손을 뻗고, 병원에 가고, 상담을 받고, 글을 쓴다. 더는 혼자이기 싫어서, 마치 이젠 외롭지 않아도 된다는 확답이라도 받고 싶은 양.
나는 정말 혼자였을까, 스스로를 외롭게 만든 걸까. 실은 후자였을 때가 더 많았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만도 몇 년의 세월이 필요했는데. 최근 십수 년 참아왔던 감정의 둑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면서 나를 보호해 왔던 기존의 방식들이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예컨대 지난주는 생리통으로 참 힘들었는데 이전의 나였다면 산부인과에서 준 약을 사전에 미리 복용했을 테다. 혹은 주사를 맞으러 가거나. 그런데 이번에 독감 부작용으로 속이 뒤집힌 후로는, 의사 선생님 말로는 지금 이 상태에서 산부인과 약을 먹게 되면 또 토할 확률이 있으니 웬만하면 타이레놀로 버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심지어 타이레놀조차 이렇게 취약해진 상황에선 위장장애가 있을 수 있다면서....... 얼마 전 독감부작용이 점차 나아갈 즈음 생리 기간에 늘 먹던 철분제를 먹고 나서 한번 더 속이 뒤집힌 후론, 진통제가 몸에 받지 않는 상태 같다고 했다. 예전엔 아프기 전에 약으로 즉각 눌러버릴 수 있던 통증들이 몇 배는 더 생생히 느껴진다. 그런데, 어째서 참 희한하게도 마음의 흐름도 이와 같다. 괜찮을 거라 여기고 싶어 마주하길 미뤄뒀던 과거의 파편들이 생명력을 얻고 되살아나 나를 쑤신다. 아픈 건 몸인데, 왜 이렇게 오래전 마음이 괴로워 체하고 토했던 시절이 이제 와 생생히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약이라는 방패로, 외면이라는 방어기제로 오랜 시간 막아왔었는데. 이미 터져버린 둑 앞에서 이제는 몸도 마음도 예전 방식으론 나를 지킬 수가 없다. 얼마 전 상담에서는 현재 상태의 몸과 마음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 나는, 어떻게 나를 보호해야 하는지. 이것이 과연 성장통이라면, 얼마나 갈지. 엉망진창으로 뒤섞여버린 지금의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그 무엇도, 불분명해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있는 사실 하나가 있다. 체한 감정은 뱉어내야 한다고. 그렇지 않고선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이제라도 토하는 연습을 해야만, 제대로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다고. 게워진 속으로, 개운해진 마음으로 언젠가 글을 계속해서 다시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떤 이유로 그 긴 시간 무엇을 그렇게도 애써 욱여넣었는지, 어쩌다 드디어 다시 숨통이 트이게 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