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백신 부작용 이후, 두 달 가까이 몸살이 지속되며 매일이 괴롭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하루가 멀다 하고 몸이 따갑다. 그러다 얼마 전 이유 모르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다시 몸이 쑤셔와 병원을 찾았다.
평소엔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보다가 지난주엔 점심시간에 잠깐 시간을 내서 회사 근처 병원엘 다녀왔다. 아프기 시작한 후로 주사와 링거를 아무리 맞아봐도 잠시 괜찮다 느껴질 뿐, 근본적으론 크게 호전되지 않는 몸 상태에 스스로 왜인지 아침부터 화가 나며 무기력해졌었다. 그날엔 마침 저녁에 중요한 일정도 있었는데 하필 또 이 지경이라니. 그래도, 혹시 링거나 주사를 한 번 더 맞으면 오늘 약속만큼이라도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간절한 마음에 진료실을 찾았다.
백신 부작용으로 겪은 증상부터 이후 복용했던 약까지 짧고도 긴 현재까지의 히스토리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심박수가 빠르고, 몸이 쑤시고 으슬거리는 오한 증세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했다. 처음엔 수액을 놔주시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다 심박수를 재 보시더니 "아이고. 많이 빠르네. 힘들었겠어요."라는 말을 하셨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 짧은 말 한마디에 두 달 가까이 고생해 왔던 몸과 마음에 왠지 위로가 닿는 느낌이었다. 문득 회상해 보니, 지금까지 갔던 병원들은 대개 증상 위주의 처방을 주시고 마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해 주는 곳은 없었던 것 같다. "맞아요, 그래서 지금 힘들어요...."라고 내뱉으며, 상태가 계속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한다고 하니 괜찮다고, 시간이 필요한 일인 거 같다고 조언해 주신다. 원래 크게 아픈 뒤엔 나아지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거라며. 없던 증상이 생기거나 심하게 악화가 된 거면 새로운 약이나 처방이 필요하겠지만 '전반적으로' 조금이라도 호전되었다면 그건 회복의 정상 반응이라며.
분명 몸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인지 그 말이 마음의 문을 열고 슥 들어왔다. 비타민 수액은 현재 심장 박동 수를 보니 오히려 몸이 버거워할 수도 있어 물만 놔주시겠다고 한다. 약도 추가 처방은 필요 없을 것 같다며 대신 그저 푹 쉬고 잘 자라고 하신다. 수액실에 들어가니 느낌 상 베테랑 간호사 같은 분이 오신다. 보통 다른 병원에 갈 때면 왼쪽보단 오른쪽이 혈관 잡기가 편하다며 그쪽에 많이 놓아주셨었는데. 이 이야기를 하니 '아, 그래요? 그러면 우선 한 번 왼쪽 보고 혹시 힘들면 말씀드릴게요.' 하신다. 그러면서, 생각보단 놓아도 괜찮겠다 여기셨는지 왼쪽으로 준비해 주신다.
작고 마른 체구에 야윈 팔. 병원에 갈 때면 늘 듣던 말, 아이고 말랐네... 이번에도 혈관을 뚫고 들어오는 주삿바늘과 함께 단골 이야기가 귀에 들어온다. 평소엔 처음 보는 분께 이런 말 나도 잘 안 하는데 그날따라 유독 마음이 힘들었나 보다. "그쵸? 사실 제가 이제 곧 결혼을 앞두고 있거든요. 그래서 운동을 해야 조금이라도 건강해지던지 할 것 같은데... 몸 상태가 이래서, 몇 달째 운동도 못 가고 이러고 있어요."라며 침잠되어 있던 속내를 내비쳤다. "어머, 그러시구나. 아이고. 운동을 해야 활력도 좀 생기고 그러는데..... 아무래도 준비하다 보면 신경 쓸 게 많기도 하고 그래서 그렇나 봐요."라고 해주시는데, 순간 나도 모르던 내 마음을 슥 꺼내 이야기해 주시는 기분이 들었다. 실은 많이 속상했다. 인생에서 한 번뿐일 결혼식이고 신혼여행일 텐데. 11월 중순에 맞았던 독감 주사의 여파가 연말까지 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픈 것 자체만으로도 서러운데 인생에서 가장 예쁘고 싶은 날인 결혼식에 이렇게 마르고 야윈 모습으로 가고 싶진 않았는데. 건강하게 운동해서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드레스를 입고 싶었다. 이제 곧 본식 드레스 고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운동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 최소 몇 달은 꾸준히 지속해야 서서히 체력이 올라갈 텐데 어째서 내 몸은 이렇게 오늘도, 여전히, 천근만근인 건지.
똑똑 떨어지는 링거액을 가만히 누워 응시하다 왜인지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그리고 왜 참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그간 잘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 왔던 감정 둑 언저리의 무언가가 툭, 하고 열린 기분이었다.
최근 상담 선생님으로부터 혹시 횟수를 늘리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었다. 사실 이 얘기야 오래전부터 가끔 나왔던 말이었지만, 10여 년간 상담을 지속해 오며 일주일에 1회 이상을 했던 적은 없었다. 간혹 불가피하게 각자의 상황으로 인해 한 주를 건너뛰게 되면 그 전주로 당기거나 후로 미뤄 주 2회가 됐던 일을 제외하고는. 이따금 이 주제가 나올 때면 경제적 상황 및 함께 사는 부모님에게 횟수가 늘어나는 상황을 알리기 곤란하다는 심적 부담감을 내세워 거절했었다. 혹은 고민만 하다 흐지부지 되거나. 그런데 이젠 알 것 같았다. 이대로 유지하고 싶었던 근원적인 이유는, 실은 의지하기 싫어서였다. 딱 숨 쉴 수 있는 구멍 정도의 마음만큼만 기대어 있으면서 결국엔 대견하게 혼자 일어서고야 마는 걸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얼마 전 김주하 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토크쇼 '데이앤나잇'에 오은영 박사님이 나온 걸 봤다. 두 분이 친밀한 관계였다고 한다. 방송을 본 분은 아시겠지만 김주하 MC는 결혼생활에서 가정폭력과 외도 등의 사유로 10여 년을 살다 이혼하셨다고 한다. 버텨오던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오은영 박사님이 김주하 아나운서에게 오래전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든 혼자 천천히라도 잘 견뎌내 가면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그거 어떤 면에선 나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이에요"라고.
그러게. 나도 그랬나. 왜 그렇게 혼자 버티고 싶었던 걸까. 다시 일어설 힘을 기르기 위해 타인에게 기대는 건 위험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토록 이유 없이 길게 몸이 아픈 건 나의 내면적 한계를 인정하고 이젠 그만 도움을 받으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통증 사이를 비집고 기어이 자꾸만 올라온다. 살고 싶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구하듯 마음도 이젠 부디 제발 제대로 좀 손을 뻗어 보라고.
얼마 전 선생님에게 "의지한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했었다. 난 공감에 대한 결핍이 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충격적인 사건 이후, 그리고 그와 연결된 또 다른 일들로 인해 스스로가 지니고 있던 감정의 일부를 해리시키고 외면하며 부정하고 축소해 왔었기 때문이다. 마음은 마치 풍선 같아서 한쪽이 지속적으로 눌리면 다른 쪽에 결국 압력이 쏠리며 터진다. 이 사실을 모른 채 그저 그런대로 잘 살고 있는 줄 알고 있다가도 애꿎은 상황에 폭발해 버리는 일을 자주 겪곤 했다. 가까운 연인과도 이 지점에서 가장 많이 부딪혔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마주하게 됐던 현실은 상대는 내가 아니라는 사실 뿐이었다. 나는 이 사람이 내가 주저앉아있을 때 옆에서 동일하게 아파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이길 원했다. 하지만 살아온 삶도, 선천적인 기질과 후천적인 성격도 나와 다른 그가 내 오랜 갈증을 해소해 줄 리는 만무했다.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부모에게조차 불가한 일을 몇십 년간 다른 삶을 살아온 그에게 요구하니 이루어질 턱이 있나.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만도 몇 년의 세월이 걸렸었다. 어떤 걸 밀어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드러내지 않고 사는 법을 배워갔다. 이후 사람 사이의 경계가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는, 선이 없길 바라면서도 어느 정도는 유지한 채로 상담도 연애도 지속해 왔다.
그런데 며칠 전, 그날도 도무지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인해 아빠 차를 타고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이동 중 불현듯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탁, 하고 스쳤다. 얼마 전 상담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어차피 아픈 건 오롯이 다 내 몫이라 외롭다고. 누군가 대신 통증을 겪어줄 수도, 일부를 덜어갈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냐고. 그런데 그날 부모님과 함께 병원을 가던 길에는 왜였을까. 그 아픈 와중에 문득 "그래도 옆에 있잖아." 하는 온기가 피어올랐다.
삶에 제대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어쩌면 꽤나 숨통이 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오래도록 구멍 난 마음이 메워질 수 없었던 건 의지와 의존을 혼동해서였을까. 타인이 해줄 수 있는 건 오로지 곁에 있어 주는 건데, 나와 동일한 존재가 되길 바라거나 그보다 앞선 위치에 있길 원했기에 정처 없이 헤매었던 걸까.
그렇다면 이젠 그만 손을 뻗어 도움을 구해볼까.
그래도 되는 걸까?
혹시, 강하지 못한 내 모습에 실망하면 어쩌지. 뿌리치고 도망가진 않으려나. 만일 곁을 내어준다 해도 무너져 주저앉은 처참한 나를 보고선 금세 버리고 떠나고 싶어 하면 어쩌지.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두렵다. 누군가에겐 쉬운 이 말 한마디가 내게는 마치 오래도록 생을 걸고 사수해 왔던 나만의 금기를 깨부수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 단순해 보이는 한 단어는 꿋꿋이 버텨왔던 스스로에게 '그 삶은 결국 혼자 견딜 수 없는 거였어'라고 선언하는 것이자 끝끝내 한계에 부딪힌 나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일이다. 무너져있던 수많은 '나'들을 초대하여 기꺼이 타인과 함께 바라보겠다는 결심이다.
아직은 감히 용기가 나질 않는다. 다음 상담에선, 과연 내뱉을 수 있을까.
"저 좀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수없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끝내 제대로 삼키지도 뱉어내지도 못했던 그 한 문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