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짐의 단상
157/34
순식간에 4kg이 빠졌다. 성인이 된 후 최저 몸무게다. 한 번 호되게 아프고 나니 회복은 더디고. 결혼식은 다가온다. 애먼 발을 동동 굴러봤자 얼마 나가지도 않는 체중이 갑자기 늘어날 리는 없을 테니 그저 끼니나 굶지 않으려 해 본다.
며칠 전엔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위에서 피가 흐른다고 한다. 식도염 증세도 있고. 사진을 몇 장 보여주시면서 한두 달 정도 약을 복용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이후에도 완치는 없고 재발될 수도 있단다.
커피를 마음껏 마셔본 게 언제였더라. 그 애정하던 카페를 기분 좋은 온도로 찾는 날이 드물어졌다.
체중이 너무 적게 나가다 보니 식욕 촉진제도 같이 처방해 주셨다. 먹고는 있는데, 양이 늘어나는 건 잘 모르겠고 전에 비해 허기가 미세하게 더 자주 느껴지는 것 같긴 하다.
피는 정작 위에서 난다고 하는데. 왜인진 모르겠지만 몸에 쌓인 에너지가 결국 터져 나와 눈물을 흘리는 듯하다. 얼마 전 상담에서 아직 언어화되지 못한 고통이 몸에 꽤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것 같다는 이야길 했었는데. 피눈물로 아픈 마음을 호소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억울하다. 내 삶의 자리를 폐허로 만들고 떠난 그들은 이 고통에 대해 먼지만큼이라도 알까. 이 수렁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모르겠다. 어떤 날엔 빠져나와 뚜벅뚜벅 제 갈길을 가고 있는 듯싶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다시 구덩이 안이다. 하긴, 그래서 트라우마인가. 아무리 애를 써도 이내 같은 곳으로 자꾸만 돌아오게 되는 것. 결국엔 그토록 무너진 과거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법을 어떻게든 익혀 나가야만 하는 것.
이미 벌어진 일. 없던 양 칠 수는 없고, 그저 흉측한 상처와 더불어 숨 쉴 수밖엔 없는데. 맺힌 마음이 풀리지가 않는다. "너 때문에"라는 말이 좀처럼 입을 떠나지 않는다. 그 일들만, 그 인간들만 없었다면 지금쯤 난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이미 불행을 동반한 인생이 하도 익숙해 상상조차 잘 되지 않는데. 현재보다 삶의 깊이는 얕아졌을지언정 조금은 더 해맑게 행복했을 수도 있으려나.
언어화되지 못한 고통은 몸을 통해 소리친다.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야, 소리가 말이 될까.
갑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