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섭식장애입니다. (7)

실은, 보호받고 싶었거든요.

by 리솜

얼마 전 어딘가에서 '야위어가는 나를 방치했다'는 문장을 읽었다. 언제부터 마른 몸이었더라. 분명 나름 우량아로 태어나 유치원 때까지만 해도 오동통한 체형이었다. 초등학생 고학년쯤부터 점점 살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이후로 쭉 저체중이 됐다. 엄마는 자신도 똑같이 그랬었다며 유전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럼에도 엄마보다 늘 훨씬 체중 미달이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좋게 말하면 '쇼핑몰 모델 같다', 안 좋게 비유하면 '젓가락 같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내 체형을 칭했다. 살집이 있는 사람에겐 함부로 몸을 평하지 않으면서 마른 사람에겐 쉬이 말을 던지는구나 싶은 불쾌감은 평생을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어쩌면 나는 꽤 오랫동안 빼빼 마르길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야윈 몸은 때로 아파 보이고, 약한 대상으로서 보호가 필요해 보이니까. 무엇보다 이성적 매력이 반감되는 효과도 있다. 건강해 보이는 여성의 몸은 성적 끌림과 직결되고 그럼 자칫 또 누군가에게 성범죄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비합리적 두려움이 마음 깊은 곳에 긴 시간 자리해 왔던 것 같다. 트라우마가 삶을 뿌리째 쥐고 흔들던 시기엔 라인이 드러나지 않는 무채색 계열의 어두운 옷만 주로 입고 다녔다. 그러면 내 존재가 조금이라도 눈에 덜 띌까 싶어서. 세상에서 나의 크기를 줄이고 지울수록 범죄 대상이 될 확률도 그에 비례해 작아지길 바랐었나 보다.


주변의 걱정을 쉽게 받을 수 있으면서도 이성적 매력을 자발적으로 반감시켜 성인 여성으로서 인식되기보단 보호가 필요했던 그날의 어린 소녀로 여겨질 수 있는 방식이 내겐 '마른 몸'이었다. 해리 현상으로 인해 감각이 분리되어 차마 도움을 요청할 수 없던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구조 신호는 보내야 했을 터. 사실 나는 그날 이후로 전혀 괜찮지 않다고, 그러니 좀 봐 달라는 요구를 작아져가는 몸으로 표현해 왔던 건 아니었을까.


약의 도움으로 살이 조금씩 붙고 있는 요즘. 제법 몸이 볼만해지는 데다 체력도 함께 올라가는 게 느껴져 낯선 행복감이 들면서도 두려움과 저항감이 한편 올라온다. 외적으로 약해 보이면 주위에서는 '아이고, 이렇게 말라서 어떻게 하냐.'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주곤 했다. 어쩌면 그 말에 중독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존재하기만 해도, 안쓰러워 지켜줘야 할 것만 같은 어린아이의 위치에 머무를 수 있었으니까. 살이 찌길 허용한다는 건 내게 있어 스스로를 지킬 힘이 생기는 것과 연결된다. 동시에 이제까지 받아왔던 주변의 관심과 도움으로부터 독립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도 있다.


얼마 전 상담에서는 "오랜 시간 몸에 축적되어 온 이야기가 풀려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수척하고 야윈 몸 뒤에 숨어야만 안전했던 나의 서사들이 이제야 조금씩 들리려 한다. 그 희미한 곁에, 가만히 앉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