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섭식장애입니다. (8)

무결한 피해자가 되지 못해서

by 리솜

며칠째 화가 온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날따라 늘 타던 지하철이 아닌 버스가 끌렸다. 괜스레 차창 밖을 보고 싶어져서. 멍하니 응시하며 가다 보니, 성추행 기억이 떠오르는 장소가 시야에 나타난다. 아, 맞다. 버스로는 이곳을 거쳐야 집에 갈 수 있었지. 잊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영 거북함에 그쪽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시선을 거두지도 못했을 터. 그런데 이번엔 전과 달리 울화가 느닷없이 치밀어 올라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아마도 그때의 그 남자는 기껏해야 서른 초중반쯤 되지 않았을까. 당시 나는 스무 살 초반. 처음 제대로 해본 아르바이트였다. 어딜 가도 보기 쉬운 프랜차이즈 빵집 겸 카페. 만약 개인 매장에서 알바를 했었다면 혹여 그날 이후 PTSD가 조금은 덜 했을 수도 있었으려나. 여하간, 시간이 흘러 이제와 생각해 보니 현재 내 나이보다 어렸던 듯한 그 새끼는 아무래도 찌질한 사회 부적응자 제빵사에 불과했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는 나름 매장의 점장이란 자리에 있긴 했다지만, 얼마나 정서적으로 미숙한 데다 주위에 들쑤실 여자가 없었으면 이제 막 성인이 된 아이를 꼬드겨 만질 더러운 계획을 세웠을까.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난 여느 날엔 자신도 지나가는 길이라며 차로 우리 동네를 두어 번 데려다주며 좋은 어른처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일하다 힘든 부분은 없는지, 학교 생활은 어렵지 않은지. 혹시 알바 중 버거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 도와줄 테니 말해달라고도 했다. 가끔은 다 같이 일 마치고 회식도 가니 나중에 밥 한 끼 하자고도 하고.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던 나는 어른들과 이런 방식의 대화를 나누는 게 익숙했고, 그 또한 교회에서 만났던 사람들처럼 선한 분일 거라 믿었다.


스무 살 초반의 여성은 소녀와 어른의 경계에 놓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신체적으론 다 성장한 것처럼 보여도, 정작 세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는 그저 내 앞에서 '친절한 사장' 역할을 연기하며 자신의 음침한 욕구를 풀기 위한 저열하고 비루한 밑작업을 공들여 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 당일, 이상한 점이 느껴지긴 했다. 알바가 끝나고 옷을 정리하던 순간. 그 사장이란 인간은 마치 주위에 나와 밥 먹는 걸 숨기려는 듯 급한 일정이 생긴 것처럼 따로 움직였다. 먼저 나간 그에게 '매장 앞 ㅇㅇ에서 보자'는 연락이 왔고, 왜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지 않으시지? 희한하네.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지만. 이미 그를 '좋은 어른'으로 여기고 있던 순수한 나는 그저 '아. 다른 사람들은 아직 근무 시간이 남아 있어서 나랑 식사하러 간다고 굳이 알리시기가 좀 마음이 쓰이시나 보다. 배려하시는 건가?'라고 인식했다.


...... 할 말이 없다. 그만큼 나는 해사하게 맑았다. 그러니, 그 허술함에 속아 넘어갔겠지. 그 새낀 그걸 아마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속내를 숨기며 나에게 다가왔던 것일 테고.


그를 믿은 나를 오래도록 원망했다.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려웠다. 지금이야 성범죄에 대해 가해자가 잘못했다는 명확한 인식이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피해자에게 일부 책임을 돌리는 사회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조심했어야지.'라는 꼬리표가 낙인처럼 찍혔고 이따금은 '평소 행실이 안 좋았거나 먼저 유혹했으니 당했겠지.' 라며 피해자를 역으로 가해자를 도발한 꽃뱀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집 분위기만 해도 그랬다. 섬마을 성폭행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어느 날. 아빠는 뉴스를 보며 '그러게 왜 저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 라며 범죄를 계획한 가해자들을 욕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먼저 화살을 돌렸다. 그리고 그 화살은, 의도치 않게 내 마음에 못처럼 박혀버렸다.


그와 식사하던 날 반주를 했다. 물론 그도 나도 정신은 멀쩡했다. 원체 나는 술을 잘하지 못해 반 잔도 채 마시지 않은 상태로 그저 예의 상 입만 댔고, 그 또한 두어 잔 마신 게 전부였다. 그러나. 음주 상태에서 성폭력을 저지르면 심신 미약으로 감형해 주던 시절. 그 시기엔 그랬다. 만약 주위에 알리고 신고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제가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어요'라고 우긴다면? 온전한 상태였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까. 머릿속 기억 외엔 아무런 증거가 없는데. 그렇게, '함께 술을 마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우리 부모님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왜인지 떳떳해질 수 없었다. 엄마 아빠는 여전히 내가 그때 아르바이트를 왜 갑자기 그만둔 건지, 모르신다.


난 이미 사람들이 원하는 '무결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그와 식당에 걸어가 식사했으며 술을 삼켰다. 이후 그와 보낸 시간들에서도, 그가 강압적으로 나를 제압하거나 어딘가로 끌고 들어간 장면이 CCTV에 남은 건 없었다. 눈에 보이는 상해를 입지도 않았다.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내 기억'. 이 하나뿐이었다. 주위에서 지지와 응원을 받을 확신도, 고소해서 이길 확률도 없을 거라는 걸 그 어린 나이에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 분노와 억울함은 고스란히 내 안으로 들어왔다.


자주 토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먹는 게 두려워진 것도. 원래도 적게 나갔던 체중은 그 뒤로 제대로 늘어난 적이 없다. 잦은 몸살감기와 두통, 위염, 그리고 식도염. 심해져 가는 생리통. 풀리지 못한 한은 증상들로 나타나다 이내 '나는 원래 몸이 약해'라는 정체성 안에 스스로를 거듭 가두며 계속해서 숨게 만들었다.


상담을 받으며 신체화 증상의 종류는 점차 줄어들어 갔지만, 생존을 위해 고착화된 식습관이 변하긴 아직 쉽지 않은 탓인지 위염과 식도염은 여전하다.


너무 오래 아팠다. 몸에 묵은 통증들이 언어화되어 훌훌 풀려났으면 좋겠다. 그리곤 어렸던 그 소녀를 꼭 한껏 안아주고 싶다. 그동안 안에서 잘 버텨줘서 고마웠다고. 많이 외로웠었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