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건물을 보고 "정신병원"을 연상한 아이들
개인적으로 지역 공립학교를 꽤 여러 곳 방문해 본 편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거의 매년 지역의 다른 학교에 가서 오케스트라 경연대회와 리딩올림픽등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공립학교 건물들은 어떤 특징이 있었나 하고 생각해 봤다.
미국학교들의 학교건축 면에서 공통점이라면
첫째, 초등학교는 규모가 작고 단층 건물이 많다.
둘째, 중고등학교는 큰 학교가 많다. 여러 초등학교가 합쳐져서 하나의 중고등학교로 모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활동을 위한 공간도 많이 필요하다. 체육관도 큰 것 하나에 작은 것 여러 개가 있으며 고등학교마다 대부분 풋볼을 위한 스터디움과 다른 운동을 위한 작은 필드가 여러 개 있다.
셋째, 건물 자체는 하나여도 건축은 학교마다 전혀 다른 형태("wing"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이며 건물 높이는 보통 2-3층 이상 높게 짓지는 않는 듯하다.
넷째, 건물은 하나의 빌딩이지만 건물 안 정원(courtyard)이 있는 곳이 많다. 대학교나 사립학교처럼 건물이 여러 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곳은 공립학교에는 드물었다.
다섯째, 미국학교 정문(출입문) 앞쪽은 주로 주차장이나 차도가 가깝다. 운동장은 주로 학교 건물 뒤쪽에 있다. 교문은 없다.
아들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학교를 좋아했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건물이 너무 오래되고 낡아 어려운 점이 많았다. 에어컨이 잘 작동하지 않는 교실이 많아서 선풍기를 배치했고 겨울에는 히터가 잘 작동하지 않아 추웠다. 한데 이런 열악한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받아들이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때 일이다.
그날도 지역 고등학교 학생들 중 각학교의 오케스트라 반을 대표하는 학생 몇 명씩을 초대해 지역합동 연주회를 하는 날이었다. 학생들은 오전에 각자의 학교에 모여서 인솔자 선생님과 함께 당일 행사가 있는 학교로 스쿨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하루 종일 다른 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연습을 한 후 저녁에 학부모들 앞에서 연주회를 가진다. 학부모들은 저녁에 발표회 시간에 가서 공연을 보고 각자 자녀들을 데리고 귀가한다.
아들이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는데 학교가 있을만한 동네를 벗어나고 있었다. 주소가 틀린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겼다. 허허벌판에 구불구불 접어든 길이 해가 져서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15-20분쯤 지나 앞이 안 보이는 안갯속에 불빛이 나타났다. 그리고 학교 건물 앞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도착하지 않았다면 다른 차들과 같은 방향으로 오느라 그런 무서움을 느끼는 상황은 아니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해가 진 후에도 학교에 있을 일이 있으면 무서울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내 아이를 이 학교에 보내는 것도 아닌데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었다.
건물로 들어섰다. 새 건물이고 규모가 엄청났다.
요즘은 이렇게 학교를 짓는 것이 실용적인 디자인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중앙에 넓은 홀웨이를 기준으로 왼쪽, 오른쪽으로 나뉘어 공간이 구분되어 있었다. 식당도 너무 넓어 불편했다. 물론 건물전체를 투어 한 건 아니었지만 너무 넓고 길어서 복도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규모가 컸다.
특별한 행사라고 사진을 주문하는 부스가 복도에 크게 자리하고 있으니 더더욱 학교 같은 분위기가 없었다.
단체로 기념사진을 먼저 찍고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이 끝나면 순식간에 떠난다. 모두 서둘러 자리를 뜬다. 각자 부모님들과 귀가할 시간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 학교 건물이 새것이고 참 좋더구나. 한데 해가 지면 무서울 것 같아... 그리고 외딴곳에 너무 뚝 떨어져 있어서 그렇게 느꼈겠지만, 꼭 옐로버스(스쿨버스)에 실려 감옥으로 들어오는 것이 연상되었다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인가?
아들: 내 친구들은 "정신병원" 같다고 했는데...
미술치료, 음악치료, 물리치료 등에 필요한 훌륭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니 오히려 "정신병원"에 가깝지...
엄마: 미국애들도 학교건물을 그런 식으로 얘기하기도 하는구나...
그럼 너희들이 생각하는 학교 건축은 어떤 것이 좋은 것 같은데...?
아들: 건축보다는 어떤 위치에 학교가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 주거지 지역에서 너무 먼 곳은 안 좋은 것 같아. 아침에 학생들이 걸어서 등교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곳이 있었다니... 최악이야. 시설이 좋다고 부러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어. 너무 커서 그런지 오히려 상용건물 느낌이고 정이 안 들게 디자인 됐어.
건물이 낡았어도 우리 학교가 좋아... 걸어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는 동네에 자리 잡은 우리 학교가 좋은 학교란 것에 모두 동의했어. 그리고 우리 학교에는 좋은 선생님들이 많아....
건물은 고생스러워도 참아야지 뭐...
학교가 아무리 훌륭해 보이는 건물로 학생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도 '수용'과 '통제'라는 역할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수용과 통제의 역할이 너무 큰 탓에 우리는 학교 건물에 갇히는 것이 '감옥' 같다는 느낌도 떠올리고 '정신병원'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아닐까. 학교도 사람이 가장 중요한 곳이라는 사실을 되새겨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