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랍스터, 2015>
저의 집에서는 매 주 작은 영화관이 오픈합니다.
저와 제 가족의 은밀한 곳이죠.
상영시간은 '마음이 내킬 때'이고 팝콘과 콜라 대신 커다란 B사의 아이스크림이 대신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상영 영화도 항상 달라지는군요.
어제는 이 오래되고 은밀한 영화관에서 2015년 칸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상, 더 랍스터가 상영되었습니다.
일단 미친 듯이 기묘하고 회색빛 감도는 영화입니다.
가까운 미래. 모든 사람들은 자신과 꼭 맞는 완벽한 짝을 찾아 살아야 한다. 만약 짝을 찾지 못하거나 다시 싱글로 돌아올 경우 한 호텔에 가서 45일 동안 머물다 자신과 맞는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게 된다.
마치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식으로 이 영화는 흘러갑니다.
커플로 살아가는 것이 혼자 살아가는 것 보다 얼마나 복된 일인지, 호텔에 있는 45일 동안 사람들은 트레이닝받고 또 최선을 다해 동물이 되지 않으려고 나름의 노력을 합니다.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숲으로 도망치기도 하고 또 상대방과 천생연분인 척 위장해 호텔을 벗어나려고도 하지요.
영화에서 주 배경이 된 곳은 의외로 많지 않은데 크게 나누어 보면 완벽한 커플들이 잘 살아가고 있는 The City, 도시 그리고 홀로 살아가는 이들이 다시 커플이 되기 위해 가는 The Hotel, 호텔, 마지막으로 커플이 되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도망쳐 온 The Forrest, 숲. 이 곳에서 주인공과 사람들은 함께 업치락 뒤치락하면서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칩니다.
커플이 되지 못한다면 동물이 되어야 한다니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인지.
일단 외출하면 지천에 깔린 솔로 잡는(?) 경찰들도 조심해야 하고 만약 커플이 되었다 해도 배우자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는 세상.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좀 동 떨어진 듯 한 매우 판타지적인 영화인 것 같군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공감 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커플이 못되어 호텔로 간 사람들은 도착을 하고 사람들 앞에 서서 자신의 매력 발산을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를 가진 사람과 커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서로 비슷한 특징이 있으면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니까요.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호텔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이름으로 부르는 게 아닌, 그 사람의 특징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절름발이, 혀 짧은 남자, 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 등등.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기억해 낼 때 그 사람의 이름이 아닌 그 사람의 특징을 쉽게 기억해 냅니다. 마치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람을 그 사람의 고향으로 칭하거나 외모적인 특징으로 부르는 것과 비슷하겠네요. 굳이 예를 들자면, "너 그때 썸타던 훈남 공대생이랑 잘 됐니?" 정도.
좀 익스트림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영화는 분명히 사회적인 비판을 하고 있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습니다. 어떤 나이가 되면 대학교를 가고, 배우자를 찾고,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낳고. 너무나 당연시된 이 세상의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흔히 말하는 앗싸 (아웃사이더: 무리에서 벗어난 사람)가 되기 십상인데. 영화는 바로 이 부분을 비판하며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근시라는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받고 커플 메이킹 호텔에 오게 된 데이비드라는 남자는 호텔에서 자기랑 맞는 짝을 찾지 못하고 숲으로 도망칩니다. 근데 숲으로 도망치자 또 자신과 너무나 비슷한 완벽한 짝을 만나게 되지요. 하지만 어디를 가나 규칙은 있습니다. 홀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모인 '숲'은 또 그들만의 룰이 있었죠. 근데 데이비드는 또 그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맙니다.
사회의 테두리 안에 '정상적인' 것처럼 행동하되 진실하지 못 한 것, 암묵적인 규칙을 어기고 '비 정상적'인 사람이 되었을 망정 정말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살아는 삶. 이 두 삶 가운데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하고 있나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음침한 영화에도 웃음이 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래 봤자 블래 코미디 정도). 그중에 하나가 바로 호텔 매니저가 호텔에 새로 들어온 남주인공에게 45일이 지난 후 짝을 찾지 못해 변신을 해야 한다면 어떤 동물로 변하고 싶냐고 친절하게(?) 물어보는 장면입니다. 그러자 남자 주인공은 바닷가재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그 이유인즉 바닷가재는 100년 넘게 살고 평생 번식을 하며 자신이 워낙 바다를 좋아하기도 해서라고 하는데. 그의 답을 들은 호텔 매니저는 꽤나 인상적이라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잘한 결정이에요. 대부분 개를 먼저 떠올리죠. 그래서 이 세상에 개들이 바글바글한 거예요."
소소한 영화관에 올려지는 영화들은 모두 작가가 추천하고 싶은 영화들이며 모든 글은 작가의 극히 주관적인 소견임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