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소 Feb 22. 2016

아버지라는 이름의 존재

<에브리바디 올라잇, 2010>

저의 집에서는 매 주 작은 영화관이 오픈합니다.

저와 제 가족의 은밀한 곳이죠.

상영시간은 '마음이 내킬 때'이고 팝콘과 콜라 대신 커다란 B사의 아이스크림이 대신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상영 영화도 항상 달라지는군요.

오늘은 이 오래되고 은밀한 영화관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에브리바디 올라잇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한, 'The Kids Are All Right"이 상영되었습니다.




keyword #1 <레즈비언, 두 아이들, 그리고 정자 제공자>


정자 제공자와 엄마들의 첫 만남.


가끔씩 어떤 영화들은 굉장히 비 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보통 SF영화나 공룡이 나오는 영화를 볼 때 종종 느끼는데, 우주나 로봇 하나 나오지 않고도 강 건너 불구경하는 느낌을 가져다주는 영화들이 있지요. 줄리안 무어와 아네트 베닝 주연의 영화 에브리바디 올라잇도 바로 그런 영화 중 하나입니다.


특별한 듯 특별하지 않은 두 명의 레즈비언 엄마들, 의사인 닉과 조경 디자이너 줄스의 슬하에서 자란 첫째 딸 조니와 호기심 많은 아들 레이저. 그들의 삶은 아버지만 없을 뿐 여느 가정 못지않은 화목함과 안정감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어느 날, 친구와 친구 아버지가 갖는 유대감을 보며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 일명 정자 제공자 (엄마들은 같은 정자 제공자 사이에 각각 아이들을 한 명씩 낳았다)에 대해 궁금해진 레이저는 18살이 된 조니에게 부탁해 정자 제공자인 폴을 찾게 됩니다.


아이들의 정자 제공자 폴은 다행히(?)도 젊고 매력 있는 레스토랑 주인이었는데요. 워낙 쿨한 성격 덕분인지 자신을 찾는다는 아이들의 전화를 받고도 흔쾌히 수락을 하며 아이들과 만남을 가집니다.



keyword #2 <가정>


엄마들이 말한다. "자기전에 안아주고 가!"


모든 것은 과하지 않았을 때가 딱 좋을 텐데요.


아이들과 또 아이들의 엄마들과의 만남을 가진 후, 폴은 조경 디자인을 한다는 줄스에게 자신의 정원을 가꾸어 주길 부탁하고. 닉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줄스는 폴의 정원을 가꾸어 주기로 합니다. 그리고는 줄스와 폴의 한 여름밤의 불장난이 시작되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과 줄스를 향한 폴의 애틋함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줄스의 외도를 눈치챈 닉의 실망도 커져만 갑니다.


만약 누군가를 아버지, 생물학 적 아버지, 정자 제공자. 이렇게 세 분류로 가족과 유대감을 갖는 순서를 나누어 본다면. 아버지 > 생물학 적 아버지 > 정자 제공자 이런 식으로 분류가 되어지겠지요. 남 주인공 폴을 여기서 한 분류에 넣어 본다면, 그는 누가 뭐래도 정자 제공자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사람일 것입니다.


극 중에서 폴은 점점 아이들과 그 가정에 애착을 갖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애착이 곧 가정의 불화를 가져오고 당연히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았던 아이들은 폴에게 뒤 돌아 서는데요.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정자 제공자가 그 존재 하나만으로 가족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요?


극 중 아들 레이저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그냥 누구나 그럴 듯, 그 나이에 겪는 흔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것뿐이고 그래서 자신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하며 궁금했던  것뿐이죠. 갑자기 폴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잠잠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죠. 그렇기에 가정 안에서 생기는 끈끈한 유대감은 그 무엇보다 특별하고 소중합니다. 유대감 하나 없이 단지 피가 섞였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가족의 일원이라고 불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가정이라는 곳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남은 가족들의 행복을 깨뜨릴 만큼 중요한 건지, 닉과 아이들이 느끼기에 폴은 청정한 개울가에 들어와 흙탕물을 일으키고 간 미꾸라지 일 뿐이니까요.



keyword #3 <What about Paul?>


대학교에 입학한 조니의 이사를 돕는 가족들.


이 영화는 사실 Youtube에도 올라와 있는데 그 영상에 이런 댓글이  달려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What about Paul?"


엔딩에서 폴이 아이들과 줄스에게 외면당하고 쓸쓸하게 끝나버렸다고 "그럼 폴은?"하고 어느 누가 질문한 것이었는데요. 이 질문에는 닉의 대사가 대신 대답해 줄 것 같군요.


영화의 끝무렵, 닉이 폴과 줄스의 외도를 눈치채고 그녀의 가정은 매일같이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얼마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조니가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되는데요. 가족끼리 꽤 화목하게 마지막 만찬을 즐기던 중 폴이 찾아옵니다.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고 전하기 위해 온 것이죠. 그런데 당연히 그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중 제일 화가 난 닉이 이런 말을 합니다.


"여기까지 오다니, 배짱 한번 두둑하군. 당신이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 줄 알아? 뭐 하나 알려주지 이 사람아. 이건 네 가정이 아니야. 이건 내 가정이야. 그렇게 가족을 만들고 싶으면, 나가서 하나 만들어!"






소소한 영화관에 올려지는 영화들은 모두 작가가 추천하고 싶은 영화들이며 모든 글은 작가의 극히 주관적인 소견임을 말씀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은 그 형태가 변해도 온전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