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
저의 집에서는 매 주 작은 영화관이 오픈합니다.
저와 제 가족의 은밀한 곳이죠.
상영시간은 '마음이 내킬 때'이고 팝콘과 콜라 대신 커다란 B사의 아이스크림이 대신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상영 영화도 항상 달라지는군요.
오늘은 이 오래되고 은밀한 영화관에서 지난해 칸 영화제에 경쟁작으로 출품된,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상영되었습니다.
십 몇 년 전, 아내와 딸들을 두고 집을 떠나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세 자매, 사치, 요시노, 치카는 못 마땅하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러 장례식에 참석한다. 장례식에 참석한 딸들은 아버지가 살아생전 사별한 두 번째 부인에게 딸이 한 명 있었다는 것을 듣고 문득 그 이복동생에게 자신들의 집에 와서 같이 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이 영화, 참 단조롭지만 마음속 깊이 사소한 울림을 주는 영화입니다.
외도를 하고는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와 재혼하겠다고 딸들을 떠난 엄마 덕분에 빨리 성장하게 된 첫째 사치. 남자 보는 눈 없고 술 좋아하는 커리어우먼 요시노. 좀 엉뚱하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막내 치카. 그들에게 갑자기 동생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겨지게 된 이복동생 스즈에게 자매들은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하고 스즈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주위에서는 오지랖이라고, 괜한 일을 한 게 아닐까 대신 걱정해 주지만. 세 자매는 새롭게 생긴 동생이 자랑스럽고 귀엽기만 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지요.
독특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은근히 많은 죽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단, 세 자매와 스즈가 처음으로 만난 곳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이고, 자매와 자매의 어머니가 오랜 시간 후 다시 재회한 곳은 할머니의 추모식입니다. 또 나중에는 자매들이 단골이었던 레스토랑 주인의 장례식도 나오지요.
누군가의 죽음으로 한 곳에 모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인연으로부터 오는 사소한 변화. 그 변화로 인해 주인공들의 일상은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첫째 사치와 네 자매의 막내가 된 스즈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요. 바로 '철 안 든 어른들'로 인해 유년시절을 잃어버린 것과 그들이 벌인 일의 책임감을 떠안으며 살아가는 것 이였습니다.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만들어진 사치의 책임감과 스즈의 죄책감은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아빠가 떠난 후, 집에 못 있겠다고 재혼을 해 나가버린 엄마를 이해 못하고 미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치는 사실 할아버지가 엄마가 태어났을 때 심은 매실나무를 그 누구보다 열심히 가꾸며 보살피는데요. 그건 그녀의 무의식 속에 감춰있던 엄마의 추억에 대한 예의였지요.
스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엄마가 이미 가정이 있던 아빠와 사랑에 빠져 언니들은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에 스즈는 그 누구보다 죄책감을 느끼며 언니들 앞에서 부모님을 추억하는 것을 힘들어하죠.
"나의 존재만으로 힘든 사람이 있을까?"라고 말하며.
하지만 스즈도 차차 언니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잠가놓았던 추억의 문을 열고 언니들 앞에서 편하게 아빠와 엄마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아빠가 종종 잔멸치덮밥을 해줬어"
극 중 사치가 집 마당에 심어져 있는 매실나무를 보며 이런 말을 하지요. "살아있는 것은 모두 손길이 필요해."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어느 것이든 살아있으면 누군가의 정성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알려주는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입니다.
소소한 영화관에 올려지는 영화들은 모두 작가가 추천하고 싶은 영화들이며 모든 글은 작가의 극히 주관적인 소견임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