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글
가장 완전한 채식을 의미하는 ‘비건‘이라는 단어는 고기는 물론, 우유, 치즈와 같이 동물에서 추출한 재료까지 엄격하게 금하는 식단 법을 말한다. 대부분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확고한 비건 식단을 생각하기란 어렵다. 비건을 하게 되면 생각해왔던 것보다 못 먹게 되는 음식이 훨씬 많다. 예를 들면, 빵류와 대부분의 국수류조차 반죽에 우유와 달걀이 들어갈 경우 먹을 수 없는 메뉴가 된다.
나는 평소 고기반찬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딱히 유별나게 채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 최근 업무상 접할 일이 생겨 몇 개의 채식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사실 누구든 SNS: 나 인터넷 기사로 몇 번은 접해봤을 내용이다. 어쩌면 대부분 알고 있으면서도 왠지 모를 불편함 때문에 외면해온 내용이다.
내가 최근 ‘비건‘ 생활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건 재작년쯤 겨울옷을 사러 한 쇼핑몰에 갔을 때였다. 나는 현재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데 그 사랑스러운 고양이는 마블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캐릭터인 ‘로켓라쿤‘을 닮아서 이름을 ‘로쿤’이라 지었다. 벌써 나와 함께 산 지 3년이고 다른 반려가정도 그렇듯 나에게는 반려동물 이상의 존재이다. 여하튼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비건 생활과는 크게 상관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그날 나는 겨울을 앞두고 좋은 코트나 한 벌 살까 해서 아웃렛에 갔었다. 알파카, 앙고라 같은 소재로 만든 여러 종류의 코트를 입었다 벗었다 하며 옷을 고르고 있었는데 직원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코트 말고 패딩도 예쁜 게 많아요. 이건 백 퍼센트 라쿤 털이 들어 있는 패딩이에요.”
우리 집 고양이랑 꼭 닮은 그 귀여운 라쿤의 털로 백 퍼센트 채운 패딩이라니, 순간 팔 털이 서고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어 별 대답을 못 하고 매장에서 나왔다. 오랜만에 비싼 코트를 사려고 마음먹고 향한 아웃렛이었지만, 저가 브랜드에서 십만 원을 조금 넘기는 저렴한 코트를 집어 들고 금세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산 코트는 지난겨울 내내 잘 입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아크릴이나 폴리에스테르 같은 저렴한 소재의 코트였을 것이다.
사실 그 이후에도 내가 동물 소재가 들어간 옷을 사지 않았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 롱패딩이 유행해서 저렴한 가격에 파는 오리털 소재의 스포츠 브랜드 롱패딩을 구입했고, 이 외에도 나도 모르게 구입한 동물 털 소재 옷이 있을 것 같다. 옷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내가 쓰는 화장품은 아마도 동물실험을 거쳐 판매된 제품이 많을 것이고 내가 먹는 감기약까지 동물 실험을 거친 것이니, 나는 아마 동물에게 빚을 지지 않고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사실상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입는 것, 쓰는 것, 먹는 것조차 동물 없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화장품 같은 공산품을 당장 사용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그나마 내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오늘 식단을 바꾸는 것이었다. 나는 먼저 지난 일주일 간 내가 먹은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닭발, 쌀국수, 치킨커리, 참치김밥, 짜파게티 (…???????)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일주일 내내 먹은 식단 중 고기가 포함되지 않은 식단은 전무했다. 하다못해 라면에도 건더기 수프가 들어가니 간단히 때운 한 끼에도 고기가 들어간 것이다.
(사실 엊그제 저녁으로 국물 닭발을 먹은 게 떠오르곤 이 글을 그만 쓸까 생각했다. 채식과 너무나 먼 메뉴가 아닌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채식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우선 채식에도 종류가 있었다. 통칭해서 ‘vegetarianism’이라 불리는 채식주의는 세부적으로 여덟 단계 정도로 구분할 수 있었는데,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가장 엄격한 식단인 ‘비건‘
유제품까지 섭취하는 ‘락토’
달걀, 우유, 꿀 등 동물에게 추출된 음식까지 섭취하는 ‘락토오보‘
해산물까지 섭취하는 ‘페스코’
닭 등 가금류까지 섭취하는 ‘폴로‘ 등이 있다.
다음 할 일은 집에 있는 식재료를 확인하는 것. 당장 찌개에 넣으려고 사둔 차돌박이가 있었고 그 외에는 냉동만두, 소시지, 냉동새우, 캔참치, 각종 라면. 육류를 안 좋아하지만 육류가 들어간 가공식품은 생각보다 많았다. 여기에 소스류를 따져보면 먹을 수 없는 것들은 더 많다. 찌개용 육수팩, 다시다, 굴소스, 치킨스톡, 멸치액젓…
여기까지 알게 된 뒤에 나는 이제 뭘 먹고살아야 하는 건지 막막해졌다. 아마 이 글을 읽게 된 누군가도 비슷한 기분이 아닐까 싶다.
며칠에 걸친 고민을 하고 나서도 당장 고기를 끊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건 어려웠다.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냈다. 치즈, 우유 등 유제품과 달걀은 나의 주식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걸 안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고민 끝에 결정한 것들.
나 혼자 식사를 할 때는 락토오보 식단
지인을 만날 때 육류 섭취 금지 & 페스코 식단 허용
단체 회식, 모임에서 육류가 안 들어간 메뉴를 시킬 것
이미 산 식재료는 지인에게 양보할 것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저 정도의 결정에도 못 먹게 된 메뉴는 많았다. 제일 아쉬운 것은 쌀국수와 순댓국 등 해장음식 그리고 내 사랑 곱창...
(사실 지금까지도 한 달에 한 번만 곱창은 허용하면 안 될까 나 자신에게 묻고 있다. 일단 되는 데까지 버텨보기로.)
하지만 이 결정을 통해 나를 가끔 만나는 지인들도 잠깐 그 순간에 동참한다면, 그리고 그 지인의 지인들까지 어느 한순간이라도 동참한다면, 감히 아주 미세한 변화라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오만한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체질이나 선호하는 음식 때문에 하기 힘든 일이란 것을 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누군가는 이 사실을 자각하게 된 오늘 하루라도 혼자만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