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프리랜서 2.

프리랜서에게 없는 것.

by 노래하는이자까야


10년 전, 우연히 시작하게 된 방송작가 생활. 사실 당시 무슨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방송판에 그다지 큰 꿈은 없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막내작가로 일을 시작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고, 글 쓰는 것 자체도 어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저냥 시작을 하게 됐다.

하지만 막내작가를 시작하고 처음에는 정말 쉽지 않았다.

인생 난이도가 두 단계 정도는 어려워진 느낌이랄까.


딱히 예능 방송이나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다양한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여행 다큐멘터리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10년 차 이상의 메인작가 한 명과 막내작가 한 명이 한 팀으로 이뤄져서 일을 한다.

이 말인즉슨, 막내작가가 대부분의 잡일을 한다는 뜻이 된다.

메인작가의 스타일에 따라 당연히 나의 업무부터 배우는 것, 쉬는 시간, 먹는 시간 하다못해 잠자는 시간까지 달라진다.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했던 글이 하나 있었는데, 그 글의 제목은 ‘방송작가에게 없는 것’이었다.

1-3년 차 작가에겐 돈이 없다. 먹고 죽을래도 돈이 없다.

4-6년 차 작가에겐 시간이 없다. 물이 한창 올라 여기저기 쓰일 때라 먹고 죽을래도 시간이 없다.

7-8년 차 작가에겐 싸가지가 없다. 이때는 선배도 없고 후배도 없고 내가 제일 잘 나간다 생각할 때.

10년 차 작가에겐 감이 없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식의 글이었다. 10년 차 작가가 된 지금, 대부분은 맞는 얘기라 생각이 든다.

다만 주목해야 하는 점은 지금도 여전히 돈과 시간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저말 대로라면 10년이 넘은 작가에게 ‘돈, 시간, 싸가지, 감’이 생기느냐? 역시나 아니라는 것.


첫 막내시절은 지금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ㅎㅎㅎ)

싸가지를 제외한 돈과 시간, 감이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무의 상태랄까.. 그나마 밤을 새도 사지가 멀쩡한 20대였기 때문에 체력으로 버틴 게 아닐까.


당시 나는 아침 9-10시쯤 출근 후, 퇴근시간은 보통 10시 이후이고 그나마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새벽 퇴근이었다.

당연히 주말은 없었던 것 같고, 격주 정도로 쉬었을까..

회사는 집에서 다리 하나 건너 있던 번화가 위치였는데 하필이면 새벽에 택시가 잘 안 잡히는 곳이라

몇 번이나 그 다리를 밤 열두 시가 넘은 시간에 걸어서 넘고는 했다.

그렇게 일을 하고 받는 월급은 100만 원 정도.


당시 팀에서 막내작가가 하는 일은 정말 다양했다. 처음에 면접을 볼 때 영어 소통 가능자 우대 내용이 있었다.

나는 해외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었고 외국인과 기본적인 소통이 가능했을 때였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하는 업무는 그 정도 강도가 아니었다.

일주일 안에 영어로 된 여행책 한 권을 번역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촬영 갈 지역이 유명한 여행지가 아니라 당시에는 영어서적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일은 업무시간 외에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당시 위에서 시키면 뭐든지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영어 번역 공부를 하는 친구까지 동원해 그 책을 워드 파일 몇십 장으로 번역을 해서 갔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업무였지만, 그때는 그냥 닥치고 해야 하는 일이었을 뿐.


그 외에 기본적으로 하는 일은 여행할 지역 영어 자료를 찾는 것, 이 정도는 구글 번역과 단어 해석을 통해서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다.

현지 코디와 촬영 현장 섭외를 조율하는 일. 촬영할 지역이 시차가 11시간 차이나는 곳이라 밤 10시 이후에만 통화가 가능했다.

촬영할 연예인 섭외 전화 및 섭외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 그때는 연예인 매니저들과 통화 한 번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영어 외 언어 번역가를 섭외하고 그 사람에게 번역 내용을 정리해서 보내는 일 등이 있었고

여기에 방송 후반 작업이 추가됐다.


지금 정리해보면 별거 아닌 일들에 왜 그렇게 밤을 새우고 잠을 못 자야 했나 싶기도 한데,

그건 순전히 함께 일하던 사람들의 스타일 때문인 것 같다.


밤을 새울 정도로 매일 일을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혼이 났고, 혼이 난 후에는 또 밤새 일하는 시스템이었고,

내 위에 계셨던 메인작가님은 막내작가들을 ‘무슨무슨 년’이라고 불렀다.

이후로 지금까지도 그렇게 막내들을 대하는 작가는 더 없었기 때문에 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운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에는 정작 억울하거나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냥 내가 못났구나 싶기도 했다.

부족했던 부분이야 당연히 있었겠지만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던 건 그 당시엔

일할 시간, 밥 먹을 시간, 잠잘 시간, 씻을 시간도 항상 부족하고 늘 시간에 쫓겼기 때문에 ‘생존’ 외에는 사고 자체가 불가능했다.

지금에서야 후배들과 일을 할 나이가 되고 나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사회초년생이었던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한 거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계속 작가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어느 정도 첫 팀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일했던 팀에서 워낙 욕을 많이 먹고, 인권유린(?)에 가까운 일들을 겪으면서 인생 참 쉽지 않다는 걸 제대로 배웠고,

다른 선배들과 일을 하면서는 가끔 일한 만큼 칭찬을 받기도 하고, 그나마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지도…


모든 일은 지나고 나면 기억 속에서 미화가 된다고 하던가.

어찌 됐던 그때 그 팀에서 첫 직업을 갖게 되고 방송작가라는 직업에 발을 디뎠으니, 지금도 사람 구실 하며 밥벌이하며 살아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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