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19세기 컬렉션 [전시]

[Review] 화려함에서 현실을

by 소네클로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평일 저녁, 퇴근 후 발걸음을 미술관으로 옮겼다.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전시장은 한산했고, 관람객 몇 명만이 고요히 작품 앞에 서 있었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 나는 온전히 그림과 단둘이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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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회화와 드로잉을 선보였다. 왕족과 귀족의 화려한 초상부터, 서민의 일상, 그리고 깊은 슬픔이 배어 있는 장면까지, 한 도시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품은 전시였다.


찬란한 표정 뒤의 이야기



전시장 초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화려한 색채와 의상을 갖춘 초상화들이었다. 부드럽게 번지는 금빛과 깊은 남색, 정교하게 묘사된 보석과 비단은 한눈에 권력과 부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 화려한 표정 속에서도 어딘가 단단하게 굳은 눈빛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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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품위를 지켜야 하는 이들의 표정은 미묘하게 경직돼 있었고, 웃음조차 ‘그려진’ 것처럼 보였다. 화가들은 피사체의 사회적 지위와 성격을 모두 전달하려는 듯, 단순한 외형 묘사에 그치지 않고 눈매, 입술, 자세에 각별한 신경을 쏟았다. 그 덕분에, 관객은 그림 속 인물이 살아온 환경과 시대의 공기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신흥 사회의 일상, 방 안의 공기



전시를 거닐다 보면, 나폴리가 단지 역사와 풍광의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계층과 생활 양식이 생겨나던 ‘신흥 사회’의 무대였음을 느낄 수 있다. 그 변화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이 아르만도 스파디니의 〈소녀와 고양이〉였다. 피렌체 출신인 그는 20세기 초 이탈리아 예술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가진 작가였는데, 이 작품에서는 중산층 가정의 이상적인 일상을 한 폭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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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머리를 리본으로 묶은 소녀가 고양이를 품에 안고 앉아 있는 모습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는 새롭게 형성된 계층이 추구하던 가치와 분위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반려동물과의 교감, 단정한 옷차림, 편안한 실내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 시대가 꿈꾸던 안정과 품위를 상징했다.



감정을 기록하는 화가, 조아키노 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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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시에서 가장 깊게 마음을 건드린 순간은 조아키노 토마의 작품들이었다. 〈쌍둥이〉, 〈죽어가는 아들〉을 비롯한 그의 그림은 과장된 포즈나 미화된 표정을 거부한다. 대신, 있는 그대로의 순간과 그 안의 감정을 담아냈다. 병든 아이를 지켜보는 가족의 표정은 절망과 체념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고, 쌍둥이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 장면들은 비극을 드러내면서도, 결코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조작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토마의 강점은 ‘감정의 사실성’에 있었다. 그는 비극적인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이 만들어낸 공기와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겼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의 방향, 벽의 질감, 방 안의 색조가 모두 그 감정을 완성하는 요소였다. 그림 앞에서 나는 숨을 고르게 하며 오래 서 있었다. 나폴리의 찬란한 햇살과 활기찬 골목 뒤에는, 이렇게 무겁고 조용한 순간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이 잊히지 않았다. 그 공존이야말로, 이 도시를 진짜로 ‘살아 있는 곳’으로 만드는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폴리를 거닐다》는 한 도시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었다. 화려한 궁정과 부유층의 초상, 그늘진 골목과 서민의 일상, 웃음과 눈물이 한데 어우러진, 입체적인 나폴리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유럽 회화에 대해 가지고 있던 ‘호화롭고 장식적인 세계’라는 선입견을 이 전시에서 완전히 내려놓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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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현실적인 아이들의 표정, 고양이를 안은 소녀의 온기, 비에 젖은 거리의 공기 같은 장면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전시장을 나서며,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말이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빛과 그림자 모두를 품은 도시를 경험한 이만이 할 수 있는 깊은 고백임을 이해하게 됐다.


[Review] 화려함에서 현실을 -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19세기 컬렉션: 나폴리를 거닐다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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