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례는 주임 신부님 (‘24.12.26(목)
새벽 4시의 알람이 울리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은 거 같다. 하지만 다시 잠들기엔 적당치 않은 시각이다. 그렇다면 일어나 준비를 하자. 매일 미사 책과 전례 교본을 들여다본다. 성탄일이 지난 첫 미사. 매시간 날마다 의미 있지 않은 미사는 없지만, 오늘 새벽은 새롭다. 스테파니아 사제의 첫 순교 축일이다. 가만히 외워본다. 의외로 느낌이 괜찮다. 오늘은 전 과정을 녹음해 보자. 미사가 끝나고 전송하자.
’늘 행복하거라’로 맺으시던 메시지에서 돌아가신 선생님을 본다. 부부는 닮는다던가? 한결같이 변함없던 선생님의 메시지를 사모님에게서 본다.
대세라고 했을 때 나는 감동이었다. 그날 부음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나는 발인이 언제인지를 물었다, 나흘 장. 내일 아침이라 했다. 곧바로 세 시간 거리의 KTX 티켓을 끊었고 같이 갈 사람을 물색했다. 다행히 민지는 금요일 퇴근 전이었고 ‘언니 병원도 동행할 수 있어요’라며 흔쾌했다.
빈소는 기차역에서 많이 먼 곳이었으나 다행히 차편이 마련된 셈이다.
‘아마도 너를 보고 가실라고 나흘장을 하나보다’며 많이 좋아하셨다. 빈소에서 선생님은 ‘요셉‘이셨다. 사모님은 대세과정을 상세히 알려주셨다. 두 분은 평소에 종교활동을 하지 않으셨고 세례를 받을 마음을 가지지 않으신 걸 알고 궁금증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네가 가끔 새벽미사 때 녹음본을 보내주지 않았니? 아마도 그 덕분인가 보다 ‘
뛸 듯이 기뻤다. 너무나 좋았다. 내가 선생님께 받은 은혜를 다 갚은 기분이었다.
어떤 종교 서적에서도 아니고, 신앙 회합의 자리에서도 아니고, 예배당도 고적한 기도처도 아니고…. 너덜너덜 헤어진 이 삶 가운데서 우리는 하느님을 본다.
여고 때 국어선생님. 어려운 여건이던 나를 눈여겨보시고 공무원시험을 권하셨다. 모든 국어시험도 그 어느 문제지에서도 볼 수 없는 50문항. 난 한 두 문제를 놓치고도 애석해하며 나름 열심이었다. 그 결과 공시생의 국어점수는 늘 넘쳤고 졸업반 때 무난히 합격했다. 선생님은 오래도록 서울에 오실 때마다 연락을 하셔서 서울 사무관 제자와 차를 나누셨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오래도록 배움의 길을 걸었다.
홀로 남으신, 그 후로 정식 과정을 거쳐 세례를 받으신, 그러면서 선생님을 추억하시는 사모님께 녹음본을 보내드려야지.
오늘, 신부님의 강론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작성돼 있다. 무심히 읽어 내려가신다. 가다가 꼭 와 닿는 구절이 있다. 아마도 편지는 잘 쓰실 거로 생각한다. 가끔은 강론이 서간체로 작성될 때가 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게도 강론의 효과는 극대 된다. 그리고 특유의 어미 처리에서 신부님과 정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