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니아 Dec 23. 2024

마이크를 당겼어야 했어.

마이크를 당겼어야 했어.  

   

그래도 난 한 군데도 틀린 곳은 없다.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맑은 목소리였으나 마이크를 당겼어야 했다. 

어젯밤에 들여다본 핸드폰에서 내일 새벽 기온은 영하 10도 정도일 거라 했다. 다행히 눈 소식은 없었다. 등산화를 신고 검은 구두를 따로 손에 들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마이크는 당겼어야 했다. 

독서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 분심의 요인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처음 시작 부분에서 내 소리가 내게 들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단지 켜짐 상태만 확인하고 정상 속도를 이어갔다. 집에 돌아와 녹음본을 켜는 순간 목소리가 작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일주일에 두 번 맡은 전례를 마치면 복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래서이다. 

    

처음 전례단에 들었을 때 전례단의 간부인 듯한 선배는 단체 문자를 통해 지적사항을 전달했었다. 온 단원들이 들여다보는 지적사항에 대해 나는 심하게 가슴앓이를 했다. ’나 아닐 거야‘ 도 한두 번이지 늘 ’내가 아닐까’하는 자격지심과 함께였다.  

    

어느 날 큰맘 먹고 신부님께 면담을 청했다. 그만 두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물었다. 신부님의 말씀 ‘글자만 깨치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잘하고 못하고는 없다.’라고. 

그 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은 판관기 말씀의 단의 삼손과 루카 복음의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관한 말씀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나이 든 여자에게 찾아 든 성령.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평생을 걸쳐 기뻐하게 될 분의 탄생은 얼마나 신비한가. 

   

신부님의 강론을 두어 걸음 되는 거리에서 눈을 반짝이며 듣는다. 신부님은 나를 알아보실까. 난 신부님과 얘기를 해 본 적이 없다. 수줍음, 나서지 않음. 하지만 강론을 듣는 나는 크게 눈에 띌 것이다. 열심인 까닭이다. 그뿐만 아니라 신부님도 마찬가지이고.  

    

얼마 전 필사를 마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신부님께 자랑하고 싶다. A4 괘지에 양면으로 적어내려 금박으로 엮은 나만의 성경전서를 자랑하고 싶다. 그 작업을 위해 3년의 세월이 필요했고 파카 만년필 세 개가 필요했던 것도 자랑하고 싶다. 지금 오른쪽 어깨가 좋지 않은 것도 어쩌면 그때 욕심을 내서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다.      

무속인과 가까이하는 게 아니고 본인은 성경 구약을 모두 외운다는 어떤 여자분처럼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겸손하게 자랑하고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 다 밝지 않은 아침이 나를 기다린다. 10년째 이 새벽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이맘때, 이맘때의 동녘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잠시 후 사위가 빛에 공평히 자리를 내 줄 것이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