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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 유범상의 ‘정의를 찾는 소녀’를 읽고

by 제니아

방송대 유범상의 ‘정의를 찾는 소녀’를 읽고

“어쩌면 우수 장학일까?” 대상자는 상대평가라서 아직은 알 수 없다는 답변이다.

이번 학기의 인상 깊은 이수 과목은 <후배 시민론>이다. 선배시민론과 대비되는 용어로 어린이 아이 청소년 등의 보호와 양육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의 의미인 후배시민론의 용어가 좋았다. 특히 그 과목의 필독 도서로 안내하신 우화 형식의 <정의를 찾는 소녀>라는 책을 접하게 되면서 나는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

어느 가을날, 오즈마을 동물들은 수확한 곡식을 나누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들판에 모인다. 호기심 많은 여덟 살짜리 다람쥐 소녀 새미는 나무 위에서 이 회의를 지켜보는데 이윽고 곡식 나누는 방법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고 오즈마을 동물들은 각자의 정의를 이야기한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나누어야 한다는 능력에 따른 분배, 수확하는 데 기여한 만큼 가져가야 한다는 기여도에 따른 분배,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맞게 필요한 만큼 가져가야 한다는 필요에 따른 분배, 공평하게 모두 똑같이 나눠야 한다는 평등한 분배의 의견들에서 새미는 동물들의 주장에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지 고민하다가 정의의 여신인 미카엘라를 찾아간다. 미카엘라는 편견이 생길 것을 염려하여 눈가리개를 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새미는 열두 개의 마을을 방문하며 각각의 마을이 정의를 해석하는 방식을 경험한다.

수많은 정의 중에서 진정한 정의는 어떤 것일까? 결국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8살 소녀는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되어 돌아온다. 그러면서 그는 무지개 소년을 읊조린다.


새미가 방문한 나라별 정의의 개념과 특성은

1). 이상마을-코뿔소 마을 : 다수결을 정의로 보는 마을

새미의 첫 여행지는 코뿔소 마을이다. 코뿔소 마을은 이상마을로 플라톤의 이상주의를 대표하는 마을이다. 이상마을은 계급에 의해 통치되는 사회로 생산자는 절제를, 수호자는 용기를, 통치자는 지혜를 가치로 추구한다. 그렇게 해서 마을별로 각자의 계급에 맞는 활동을 수행할 때 정의라고 느낀다. 하지만 코뿔소의 이상마을에서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계급이 있다고 본다. 새미는 정해진 계급으로 살아가야 하는 코뿔소 마을에 실망하여 다음 마을로 떠난다.


2). 윤리 마을-너구리 마을 : 약자를 보호하는 것을 정의로 보는 마을

새미의 두 번째 여행지는 너구리 마을이다. 벤담의‘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에 기반한다. 이곳에서는 다수의 행복과 선을 추구한다. 이 점에서 소수의 의견과 행복은 전반적인 다수의 행복을 고려할 때 무시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수결의 원칙은 몇 가지 맹점이 있다. 첫째 소수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 둘째,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결정은 다수결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전문적 영역의 내용은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심의 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새미는 너구리의 윤리 마을이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행복을 위해 무시되는 점에 실망하며 세 번째 마을로 떠난다.


3). 자유마를-하이에나, 여우 마을 : 결과의 공정성을 정의로 보는 마을

새미가 세 번째로 찾은 자유마을은 하이에크의 자유주의를 정의로 삼는다. 정당한 경쟁을 거친 결과라면 불평등도 공정하다고 믿는다. 정당하게 벌어들인 돈으로 혜택을 누리는 것에 대해 별로 문제로 삼지 않는다. 즉 백화점의 VIP 고객, 비행기 일등석, 워터파크 프리패스에 관한 논쟁이다. 무엇보다 후배 시민에게 민감한 기여입학제는 정의로운가?

돈에 따른 혜택과 차별이 정의롭다는 하이에나 마을에서 새미는 기회의 평등이 고려되지 않는 불평등에 실망하고 네 번째 마을로 여행을 떠난다.


4). 평등마을-허스키 마을 : 개인의 자유를 정의로 보는 마을

허스키 마을은 사적 소유가 존재하지 않는 마을이다. 능력에 따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물건을 가져다 쓰는 허스키는 평등마을이다. 스머프 빌리지와 같은 허스키 마을의 원칙은 공동생산, 공동분배이다. 여기에서 먼저 생산수단의 공유화가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새미는 정의를 찾기 위해 이상마을, 윤리 마을, 자유 마을, 평등마을의 4개 마을과 주변 마을을 여행했지만, 정의에는 단 하나의 정답이 없으며, 정의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으며 상황과 공동체의 가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각 개인이 스스로 동료들과 토론을 통해‘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찾아가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는 특징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책에서 다람쥐 소녀 새미가 방문한 열두 개의 마을은 각기 다른 정의관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하나도 완벽하지 않다. 다수결, 평등, 능력주의, 약자 보호 등 각 마을이 주장하는 정의에는 장점도 있지만 동시에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이를 보며‘절대적인 정의는 존재하지 않으며,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정의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정의의 문제라고는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지극히 당연했던 기존의 개념들에 대해 심사숙고한다. 즉 그동안 유념하지 않았던 화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 게을러서 빈곤한 것이 아니라 빈곤해서 게을러지는 것이라는 논지에 대하여

- 차등의 원칙, 기본소득의 찬성, 돈에 따른 차별이 정의인가. 놀이공원 프리패스의 문제는?

- 마을들 사이의 불평등과 불법이주, 외부추방정책과 그 원인에 관하여

- 경제성장과 자연환경 악화와 그 비용 분담에 관하여

- 보이지않는손, 빈익빈 부익부, 유토피아 사회, 공산주의에 대하여 연대와 평등문제

- 사재기, 가부장제 사회-엄마의 가사노동은 누가 보상해야 하는가. 아빠인가, 회사인가,국가인가

- 최대다수의최대행복 – 무조건 결과만을 중시하는 것도 정의인가?

- 선의의 거짓말-아들의 교통사고를 시한부 엄마에게 알려야 하는가?

여기에서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해보자면,

-엄마의 가사노동은 누가 보상해야 하는가?. 아빠인가, 회사인가, 국가인가

‘엄마의 가사노동’에 보상이라니? 백번 양보하여 아빠 정도이겠지? 아니다. 아빠가 회사에서 유고를 당하거나 장애를 당하면 회사에서 이 가정에 사회보장보험의 차원에서 보상해야 하지 않을까. 이 경우 국가는 회사를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재원은? 정부는 이런 사회적 부담을 위해 대의적인 공통의견을 결집해야 한다.

-기여입학제는 정당한가?

기여입학제는 학교에 기부금을 낸 학생에게 입학을 허가하는 제도인데 나는 과거에 흑백논리를 내세워 ‘부자에게?’라고 했었다. 생각해보니 그 기부금은 그 학과의 선순환 기능을 담당할 것이고 이것은 소득의 분배 작용을 담당할 것이다. ‘돈에 따른 차별이 정의인가’의 문제는 있을 수 있겠다. 놀이공원의 프리패스처럼.


오랜만의 중간과제가 반갑다. 모든 사회정의는 내가 ‘생각하는가. 생각 당하는가.’를 고민해야 하고 기존의 내 생각에 대해 ‘아니지 않을까?’하고 합리적 의문을 품어야만 우리 학과 학생다운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수업이다.

이상의 의미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전부터 이미 정해진 정의에 대해 생각의 변화를 갖고 맞다 틀리다가 아닌 기존과 다르게, 합리적 의심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의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조정해야 하는 문제이다. <정의를 찾는 소녀>는 독자가 직접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책이다. 함께 토론하며 자기 목소리를 내는, 주입식을 반대하고 논쟁을 통해 토론하는, 시민교육의 놀이로서 답을 찾고 성장해가는 방식을 제시하는 좋은 지침서를 발견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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