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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빛과 실'을 읽고

by 제니아

한강 '빛과 실'을 읽고


마당에 한 평 남짓한 화단을 들이고 지난 3년 동안, 사계절 그곳의 변화를 겪으며 시간이 간다고 했다. 과실 나무가 아닌 청단풍 정도는 괜찮을거라는 정원사의 조언대로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거울로 모아 반사해

북향의 화단 나무에 비춰준다. 하루 중 쓰기를 중지하며 15분마다 거울의 각도를 옮겨주고 사흘마다 거울의 위치를 바꿔준다. 더는 포집할 햇빛이 없어질 오후 세 시경까지. 온종일 계속하며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경험한다. 북향의 화단을 꾸미고 거을의 힘을 빌어 나무들의 생장을 보면서 그 거울에 비친 빛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우주로 연결된 우리를 본다. 햇빛이 비치는 정원이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무지근하다고 했다.

“햇빛을 오래 바라봤어.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8살 때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 그동안의 습작을 정리해 낡은 구두 상자에 보관한 삐뚤빼뚤한 시.

그때의 여덟 살 소녀를 그녀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 문장 중 몇 개는 많은 시간을 지나 지금의 자신과 맥을 같이 한다고.

작가 개인적 삶의 상당한 시간과 맞바꿔 탄생한 장편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한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수 있는 그 시간이 좋다고. <채식주의자>와,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으로 이어지고, <흰>에서 그녀는 산자보다는 죽은 자를 가까이 하는 시간을 그린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의 근원적 물음.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살리는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열두 살 어린 소녀가 발견한 그 사진첩을 본 이후 천형처럼 가슴에 아픔을 간직해오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포기를 반복하는 사이 박용준의 글을 보고 벼락처럼 글의 향방을 알게 되었다는 그녀.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 부를 때, 광주는 더는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 명사가 된다는 것.

2014년 봄, 이 책의 출간 후 작가는 그와 독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같은 해 6월에 바다 무덤의 꿈을 꾼다. <소년이 온다.>와 결을 같이하는 이야기.

인선의 어머니 정심, 오래 놓지 못하고 작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들.


산문집이 출간되었습니다. 더는 새벽에 일어나 초를 켜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구덩이를 느끼려고 책상 아래 모로 눕지 않아도 되고, 이 소설에서 풀려날 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지나 이제는 또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반가운 믿음을 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 수상소감 이외에 변변한 인터뷰 하나 남기지 않았던 한강 작가의 얘기를 <빛과 실>에서 온전히 듣습니다.

여덟 살 주산학원 앞 비 오는 날 오후, 길게 늘어선 아이들의 긴 행렬에서 수많은 일인칭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 문학을 써 온 모든 시간 동안 이 경이의 순간을 되풀이해 경험하고 있다는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잔잔한 감동을 봅니다.


<소년이 온다.> 와 <작별하지 않는다.>에 관한 작가의 고백은 압도적인 고통입니다.

허락된다면 '다음 소설은 생명을 말하는 것들을 써야 하지 않을까.' 를 고백하는 그녀.

<작별하지 않는다> 후 삼 년이 지난 지금 <빛과 실>로 인해 나는 그녀의 후속작을 감지하고 브런치의 소감문 연재 글을 열어둡니다. 다음 출간 소식이 올 때 가장 이른 시간에 예약구매를 할 것입니다.


'오십 년 늙은 그가 이십 년 늙은 코트를 입고 겨울 볕 아래로 걸어가는.'그녀를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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