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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강 Sep 18. 2022

이별 직전의 사랑

이별 직전의 사랑은 냄비를 태우는 것과 같다. 계속해오던 것이니까, 끓일 물이 남아있지 않은데도 켜져 있는 가스레인지는 냄비를 100도 이상의 그 어떤 곳으로 데려간다. 냄비의 바닥은 그을려 검은 자국을 자신의 몸에 새긴다. 뽀얀 수증기를 마구 뿜어내던 냄비 위엔 어느새 시커먼 연기만이 자욱하다.


남자와 여자는 평범한 데이트를 하려고 한다. 횡단보도 반대편에서 마주친 여자는 그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든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남자 친구이기에 둘의 만남은 항상 커다란 반가움에서 시작한다. “나 보고 싶었지?”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죽는 줄 알았어.” 남자가 여자를 힘껏 끌어안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일주일에 한 번밖에 보지 않는 이유는 둘 다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남자는 대학생이고 투자를 한다. 한심한 본인의 투자 성과를 보고 있으면 여가생활을 즐길 기분이 나지 않는다. 종강을 얼마 앞두지 않은 그이지만 기말고사보다 투자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여자는 취업 준비생이면서 인터넷 쇼핑몰 사장이다. 본격적으로 취업하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일을 열심히 하는 중이다. 여자도 새로운 제품 출시가 코 앞이라 시간 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남자는 이런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며칠 전 일주일에 한 번 무조건 보는 것이 부담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대판 싸웠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참아보기로 했다. 남자는 여자를 일주일에 하루 정도 사랑했지만 남자는 매일 밤 그녀와의 통화를 마무리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했다.


둘은 만나자마자 저녁 식사를 할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다른 것을 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에 만났고, 오기 전에도 두 사람은 바빴기 때문에 만나서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했다. 밥은 원래 하루에도 몇 번씩 먹으니까. 만만한 게 밥 먹는 것이었다. 여자가 합정역에 새로 생긴 고깃집에 가자고 제안했다. 남자는 좋다고 말했다. 도착한 고깃집은 카페 분위기가 나는 외벽에 파스텔 톤으로 색을 칠을 했다. 금성 회관이라는 빛나는 금빛 간판이 어두운 거리를 환하게 밝혔다. 내부도 디저트 카페같이 인테리어를 해서 앉아서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들이 우스워 보였다. 남자와 여자는 가장 안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적당한 가격의 커플 세트를 시켰다. 돼지고기 2인분에 찌개, 계란찜이 연이어 나왔다. 와사비와 명이 나물이 같이 딸려 나왔다. 어울리지 않는 인테리어와 다르게 제대로 된 고깃집이었다. 남자는 직원을 불러 쌈채소를 달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채소가 나왔다. 남자는 여자의 앞에 쌈채소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쌈 싸 먹는 거 좋아하잖아.”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여자가 대답했다. “나 쌈 안 싸 먹는데?” 요 며칠 다른 친구들과 자주 고기를 먹었던 탓일까. 남자는 여자 친구가 쌈 채소를 안 먹는다는 사실을 까먹었다. 까먹었다고 하는 게 맞는 걸까. 남자는 여자 친구와 쌈채소가 매치가 되지 않았다. 남자의 기억 속에 여자 친구가 쌈을 안 먹는다고 한 기억이 없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쌈채소를 한 두 개쯤 먹었던 것 같다. “아 미안해 착각했나 봐.” 남자는 머쓱해하며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남자는 여자 친구 앞에 놓여있던 파절이를 본인 쪽으로 가져오면서 말했다. “파절이도 안 먹지? 여기다 둘게.” 남자는 그 상황을 무마하려고 애썼다. 여자는 파절이를 가져가는 남자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나 파절이 좋아하는데?” 여자는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색해진 식사를 마무리하고 금성회관 앞의 다리 4개는 갈 곳을 잃었다. 남자는 평소 둘이 좋아하던 술집에 가자고 제안했지만 여자는 지금 거기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채, 여자는 앞장서서 합정역 앞 술집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서 따라 걸었다. 꽤나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안이 환한 카페를 발견했다. 좀 전의 고깃집보다 덜 카페스러운 분위기의 인테리어에 고풍스러운 영어가 쓰인 간판을 달고 있는 카페였다. 그 간판과 분위기가 맞는 것은 오직 등받이가 화려한 의자뿐이었다. 여자는 그곳에 가자고 했다. 둘 다 가본 적 없는 카페였지만 지금은 장소를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남자는 그러자고 했다. 여자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남자는 유자차를 주문했다. 유자차가 6천8백 원이라니 이런 사기꾼들이 있나 생각했지만 장소와 마찬가지로 가격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았다. 카페 안에 사람은 꽤나 있었지만 둘 주변은 조용했다.


남자는 화난 여자를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짜증이 났다. 잘못한 것은 본인이 맞지만 그렇게까지 큰 잘못인가 싶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가 실수를 하기 전부터 남자의 말에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뭐 때문에 그래.” 여자가 정적을 깨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남자는 정확한 의미를 다시 물었다. 여자는 2년이나 사귄 남자 친구가 본인이 쌈채소를 먹는지 안 먹는지, 파절이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자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여자가 하는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어도 50번은 먹었을 것이다. 어떻게 당연히 쌈채소를 싫어하는지 모를 수가 있지? 남자는 생각했다. 그렇게 상대방을 이해하면서도 남자는 여자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는 좀처럼 운을 떼지 않았다. 바로 옆 테이블에 50대는 가볍게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 3 명이 앉았다. 앉자마자 아주머니들은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오늘 다녀온 절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이도 있어 보이는데 친구들끼리 산에도 다니고 대단하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어머니에게도 이런 친구들이 있었으면 했다.


유자차는 너무 달았지만 딱히 할 게 없던 남자는 벌써 유자차를 반 이상 마셨다. 눈앞에 보이는 차를 마시는 일 외에는 할 일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는 답답했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남자가 원망스러웠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때 남자가 운을 뗐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어.”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똑바로 남자를 쳐다보고 있다. 계속 말하라는 뜻이었다. 남자는 여자의 눈물이 신경 쓰였다. 분명 저 눈물은 뜨겁겠지. 실제로 뜨거운 눈물이 있다. 여자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다. 남자는 카운터에서 냅킨을 가져와 여자에게 건넸다. 옆 테이블의 아주머니들이 급격하게 조용해졌다.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게 무슨 말이야?”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는데, 만나면 물론 좋지만 혼자 있을 때는 자꾸 안 좋은 생각이 들어.” 남자는 안 좋은 생각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여자가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 여자가 바람을 피웠으면 좋겠다 따위의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남자는 여자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면 그 누구보다 슬퍼하겠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 기뻐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떡하자고.

우리 헤어지자.



여자는 마음 놓고 울기 시작했다. 온 카페가 조용해졌다. 옆 테이블의 아주머니들은 신경을 안 쓰는 척 본인들의 대화 주제를 계속 이어갔지만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남자와 여자를 의식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는 잠깐 시간을 갖자는 것도 아니고 바로 헤어지자는 남자가 너무하다고 말했다. 남자는 너무한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게 자신의 마지막 양심이라고 덫붙이기까지 했다. 여자는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았다. 여자는 며칠 전에 맞춘 나무 커플링을 빼서 남자에게 처리하라고 맡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놈의 커플링. 남자는 생각했다. 커플링을 맞추고 바로 다음 약속에서 커플링을 하지 않고 나와 곤경에 처했던 그였다. 남자는 잠시 동안 앉아있다가 여자를 따라 나갔다. 남자와 여자는 카페를 떠났지만 손님들의 입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이별의 당사자가 아닌데 이별을 목격하는 일은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남자는 몰래 여자 뒤를 따라갔다. 여자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그녀에게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진 사람인지 알았기 때문에, 여자가 집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여자는 합정역 8차선 길 한복판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남자는 메세나 폴리스 계단 어두운 곳에서 서성이며 그 모습을 바라본다. 남자가 집으로 향한 것은 여자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여자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탄 이후이다. 정확히 그녀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본인은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 이후로 남자와 여자는 한번 더 만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 만남은 사망한 사람에 대한 사망 신고 절차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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