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화에 맞지 않는 내 발이 밉다.
지난 5월, 부상 완치 기념으로 구매한 줌플라이 4는 매장에서 처음 신었을 때부터 내 신발임을 알 수 있었다. 신축성 있는 내피 소재로 신발끈을 묶기 전부터 발목 밑 딱 적당한 정도까지 적당한 강도로 내 발 전체를 감싼다. 뒤꿈치 부분에는 도톰하게 메쉬로 감싼 스펀지가 튀어나와 있어 어떤 달리기를 하더라도 뒤꿈치가 신발에서 들리지 않는다. 신발끈은 내 발을 단단하게 고정시키면 길이가 많이 남아서 그 위로 한 번 더 매듭을 지었을 때 풀리지 않으면서 길이도 알맞게 떨어진다. 신발을 벗는 것은 신발끈이 묶인 상태에서도 힐컵 바깥 부분을 손으로 잡고 아래로 밀면 매우 쉽다. 신발을 다시 신을 때에도 발등 위와 발 뒤꿈치 쪽에 달린 고리를 양손의 검지 손가락 두 개를 모두 사용해 신발 입구를 벌리고 발을 넣으면 힐컵이 구겨지는 일 없이 부드럽게 들어가 다시 단단하게 고정된다. 줌플라이 4는 달리기를 다시 시작한 내게 신발 변명을 할 수 없게 만들어 준 나에게 있어서 완벽한 러닝화이다. 그런데 춘천 마라톤을 2 주일 앞둔 10월 중순, 나는 조급해졌다. 내 러닝화 줌플라이 4는 이미 800km 이상을 달려 훈련을 할수록 러닝화가 최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전성기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 신었을 때의 발을 감싸는 느낌은 여전했지만 통통 튀는 그 카본 플레이트의 반발력과 줌 리액트의 쿠션감이 줄어들었다. 21km 이상을 뛰면 내가 러닝화를 신고 뛰는 건지 반스를 신고 뛰는 건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급하게 아웃렛에 가서 새 러닝화를 구매했다. 줌 템포 넥스트% 는 줌플라이 4 때처럼 발에 착 감기는 느낌은 없었다. 신발끈도 두 번 묶기에는 너무 짧았다. 신발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너무 커서 신발을 신고 위에서 내려 봤을 때 8자 모양이 돼서 예쁘지도 않았다. 그런데 1인 1족 판매라는 매혹적인 문구가, 같이 간 사람의 멋있다는 말이, 더 빨라질까 샘이 난다는 그 말이 구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줌 템포 넥스트% 는 시착에서 8km를 달린 후에 다시 신는 일은 없었다. 이후에 유튜브로 열심히 새로운 러닝화를 찾던 와중 아디다스의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3이라는 신발을 알게 되었다. 유튜브 러닝화 리뷰에서 프로 2의 기능을 많이 개선했고, 나이키 경쟁 모델인 알파플라이 2보다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주변의 잘 뛰는 사람들도 많이 신는 모델이라 이번에야말로 내 운명의 러닝화를 찾았구나 싶어 당장 학교 근처의 아디다스 매장에 가서 신어보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신발의 만듦새가 좋지 못했고, 무엇보다 내 평소 신발 사이즈보다 한 치수 작게 신어도 발가락 윗부분과 신발 갑피 사이 공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그렇다고 신발끈을 더 조이자니 갑피가 구겨져 장거리 달리기를 했을 때 발등을 간섭할 것 같았다. 아쉬움에 같은 치수의 다른 색 신발을 여러 번 바꿔 신어보다 결국 구매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연속된 신발 실패에 화가 났다. 마라톤은 다가오고, 신발은 맞지 않으니 짜증이 났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끝판왕 신발인 알파플라이 2를 신어보지도 않고 나이키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매했다. 아디다스의 끝판왕이 나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알파플라이 2가 맞지 않을 리가 없었다.
춘천 마라톤을 10일 남짓 남기고 도착한 신발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이 나이키 놈들은 얼마나 신발에 자신이 있는지 33만 원짜리 신발을 그냥 보통의 주황색 나이키 신발 상자에 무심하게 넣었다. 거기다 같이 준 신발주머니는 그저 흰색에 나이키의 스우시만 들어가 있다. 가격에 비해 상당히 부실한 패키지였지만 오히려 신발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얼마나 신발에 정성을 쏟았으면 이렇게 포장을 대충 했을까 싶었다. 치토스 가루를 잔뜩 묻힌 것 같은 형광 주황색. 신발의 절반을 차지하는 스티로폼 느낌의 줌 X. 과시하듯 드러낸 플라이 카본 플레이트에 포인트가 되는 에어 줌 까지. 괜히 끝판왕 신발이 아니었다. 신발은 마치 롤스로이스나 거대 호화 요트, 혹은 신기술로 무장한 탱크처럼 보였다. 신발을 집에서 처음 신어보았을 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디오스 프로 3처럼 발가락이 뜨지도 않았고 신발끈 길이도 두 번 매듭짓기에 알맞았다. 입구가 워낙 작아 뒤꿈치가 들리는 일도 없었다. 신고 가만히 서있자니 구름 위에 떠있는 느낌이었다. 신고 달릴 생각에 엄청나게 들떴다. 신발만 바꿨을 뿐인데 기가 막히게 내 달리기가 빨라질 것만 같았다. 10일 동안 마라톤을 뛰기에 적합한 상태로 길들이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모자랐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시착은 바로 다음날 연세대학교 대운동장에서 했다. 그날은 강도 낮은 10Km 빌드업 훈련이 있었다. 워밍업을 시작하자 구름 위를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신발끈을 강하게 조이지 않았는데 신발이 발목 앞 쪽을 심하게 간섭했다. 잘못 묶었겠거니 하고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틀리게 묶었을 리 없는 신발끈을 고쳐 맸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10km 빌드업 훈련을 시작했다. 발목 간섭은 사라지지 않았다. 10km를 달리려면 약 1만 번의 발구름을 해야 하는데 한번 한 번이 이렇게 거슬려서야 제대로 훈련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400m 트랙을 25번 돌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하지만 멈춤은 곧 알파플라이를 더 이상 신지 못한다는 뜻이었고, 내가 막무가내 무지성으로 신어보지도 않고 33만 원짜리 맞지도 않는 신발을 산 사람이라는 뜻이었고, 그 신발을 압구정 나이키에서 25만 원에 판매하는 걸 알면서도 빨리 신고 싶은 마음에 주문 취소를 하지 않은 낭비벽 있는 멍청이에다가, 가뜩이나 마음도 안 좋은데 이미 신어버려서 반품도 못해 한참 낮은 가격에 당근에서 판매해야 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목의 아픔을 무시한 채 달렸다. 그런데 3km쯤 지났을 때 왼쪽 발의 아치 한 부분이 뾰족한 것에 찔리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슬리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치 발에 가시라도 박힌 것 마냥 한걸음 한걸음 나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했듯이 멈출 수 없었기에 나는 남은 20여 바퀴를 꾸역꾸역 다 달렸다. 마지막 즈음에는 제발 돌멩이나 신발끈이 신발 안에 들어가 있기를 빌었다. 그것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왼쪽 신발에서는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았다.
뛰고 난 후 며칠간 발목이 아팠고 발에 전체적으로 물집이 잡혔으며 특히 왼쪽 발 아치에 화상을 입은 듯한 상처가 났다. 그럼에도 나는 또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양말 탓을 시작했다. 그날 뛰기 직전 얇은 양말이 달리기 하는데 좋다는 말을 듣고 평소에 신던 두꺼운 운동용 양말이 아니라 얇은 폴리에스테르 양말을 신었던 것이다. 그래그래! 양말만 제대로 된 걸 신으면 다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춘천에서 뛸 하프마라톤에 대비해서 1주일 전에 20km 기록 달리기를 알파플라이를 신고 달렸다. 이번에는 베룽코 오리발가락 양말까지 신었다. 하지만 발목 간섭은 여전했고 아치의 화상 상처 위로 또다시 딱딱한 알파플라이의 깔창이 아치를 찔렀다. 그럼에도 기록은 전 21km 최고 기록과 똑같이 나왔다. 전보다는 나았지만 대회에서 불확실성을 안고 뛸 수는 없었다. 나는 큰 꿈을 안고 집을 나갔다가 세상의 쓴 맛을 보고 다시 돌아온 철부지 아들이 된 심정으로 다시 줌플라이 4를 찾았다. 줌플라이 4는 집 나갔던 아들을 다시 다정하게 받아주는 부모의 따듯함으로 다시 나를 반겨줬다. 다시 신고 달려보니 아직 달리기에 괜찮은 듯 보였으며 발을 감는 신축성 있는 내피는 역시나 사랑스러운 안도감을 주었다.
줌플라이 4로 춘천 마라톤에서 하프 최고 기록을 세우고, 2 주 후에 있었던 JTBC 마라톤도 전 기록인 4시간 26분에서 3시간 24분으로 1시간 이상 기록을 단축했다. 물론 이제는 더 이상 신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웃솔 뒤꿈치 바깥쪽은 이미 많이 갈려서 바닥에 두었을 때 약간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10km만 뛰어도 쿠션감을 느끼기 어렵다. 줌플라이 4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에게 계속 달릴 용기를 주었다. 나는 더 나아질 것 없는 환경에서 무리한 환상을 쫓았다.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서 내 달리기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내 발이 신발에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혹은 신발이 내 발에 맞춰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래도 친구가 알려줬다. 알파플라이를 신기에는 아직 네가 부족한 것이라고. 10km를 40분 이하로 가볍게 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가 되어야 신는 신발이라고. 나는 그 말에서 내가 미련하고 멍청하기만 하지 않을 수 있는 희망을 얻었다. 다시 알파플라이를 신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훗날 내 달리기가 더 빨라진다면 이 친구와 다시 한번 뛸 수 있을 것이다. 내 발은 구름 위를 뛰는 기분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늘 그랬듯, 열심히 달리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