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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강 Sep 04. 2022

오랜 친구에게

아침 운동을 끝내고 짐을 꾸린다. 11시에는 출발하려고 했는데 블로그에 포스트 할 글을 쓰다 보니 11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간에 자동차 키를 챙겼다. 오랜만에 잡은 운전대는 어색했다. 어김없이 깜빡이도 안 키고 끼어드는 운전자 덕에 금세 예전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차가 오랫동안 서있기만 해서 그런지 Auto Hold가 켜졌다. RPM이 2000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신호 대기 후 출발할 때마다 엔진이 헛돈다. 언덕을 오를 때마다 힘이 달려서 뒤로 밀리지 않을까 식은땀이 흐른다. 서울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북악산을 가로지르는 길은 2000 RPM 제한으로 가기에는 벅차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덕을 다 오른 후 엑셀레이터 페달에서 브레이크 페달로 발을 옮긴 후 내리막을 천천히 내려오면서 노래도 안 틀고 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핸드폰을 바꿨기 때문에 블루투스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기어를 P에 맞추어야 한다.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에 타이어와 노면의 마찰음을 생생하게 들으며 친구 집으로 향한다.


12년 전만 해도 어느 때나 용문시장 초입에 있던 사이버 팰리스 PC방에 가면 볼 수 있던 친구인데, 이제는 1박 2일 여행을 가기 위해서 3개월 전부터 약속을 잡아야 했다. 서로 대학생이고, 친구는 일까지 하다 보니 이제는 학기 중에는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결국엔 6개월에 한 번 꼴로 보는 사이가 됐다. 친구 집에 들어간다. 시장 옆 작고 좁은 빌라에 살던 친구인데, 살기 좋은 아파트에 살며 번듯한 직장에 다니면서 가족까지 부양한다. 커다란 창 밖으로는 한 여름의 녹색이 가득하다.


한때 가장 친한 친구였고, 지금도 친한 친구   명이다.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할  있는 친구가 없다.  친구가 어색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어색함은 그곳에 적게나마 있었다. 그것을 나와 친구는 감지했다. 하지만 굳이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색함은  사라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마주치지 않고 근황을 묻다 보니 배달 음식이 도착했다. 나는 볶음밥에 탕수육까지 야무지게 흡입했지만 친구는 짜장면에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너무 불었단다. 배고플  음식을  먹을 돈이 없어서 시장과 마트의 시식 코너를 전전하던 우리가 떠올랐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친구와 함께 차에 타고 목적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드라이브 스루에 가서 마실 것을 사자고 했다. 단 한 번도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처음 경험하는 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에 주저했다. 하지만 나 역시 목이 말랐기에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에 갔다. 친구는 자몽 허니 블랙 티를 주문했고,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직원 분이 마이크 너머로 목소리를 크게 내달라고 요청해서 조금 기가 죽었다. 그래도 음료를 줄 때는 끝까지 웃는 얼굴로 응대해 주셨다. 포천까지 갈 길이 멀다. 평소에 잘 마시지 않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약속은 3개월 전에 잡아두고 숙소 예약은 여행 전전날에 카톡으로 정했다. 누가 봐도 더 바쁜 건 직장인 + 대학생인 내 친구인데, 친구가 갈 곳을 찾고 숙소까지 예약해줬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 둘이서 1박 2일 여행을 가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군필 남자 둘이 가는 것이니 시설이나 조건을 따질 것이 적었다. 둘 다 그저 머리만 바닥에 댈 수 있으면 어디라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렇게 친구가 처음으로 알아본 글램핑 장으로 가기로 했다.


친구가 애플 카플레이를 차에 연결해서 내비게이션을 틀어줬다. 나도 아이폰을 쓰면서도 한 번도 카플레이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네이버 지도는 잘 작동했다. 친구가 노래를 틀었다. 멜론을 참 오랜만에 봤는데, 멜론에서 나올 법한 최신 한국 가요가 흘러나왔다. 자동차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한국 가수들의 목소리가 참 낯설었다. 음악만 달라졌을 뿐인데 공간 자체가 바뀐 기분이 들었다. 친구 취향은 여전하구나 느꼈다. PC방에서 장재인이 슈퍼스타 K에서 부른 ‘가로수 그늘 아래에 서면'만 무한 재생으로 틀던 친구다. 서정적인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계속 듣다 보니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연애 중인 친구는 나더러 연애를 안 하냐고 물었다. 나는 평소 말버릇대로 쉬운 게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는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네가 맞을 거라고 했다. 이제는 연락을 평소에 한번 안 하지만 괜히 인생의 절반 이상을 친구로 지낸 것이 아니다.


운전할 기회가 없던, 더구나 산속에서 운전할 기회는 더더욱 없던 나는 동두천에서 소요산 둘레를 너머너머 들어가는 자연에 넋을 잃었다. 어느새 Auto Hold는 풀렸다. 가볍게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시원하게 산 길을 헤쳐가는 어머니의 차가 다시 좋아졌다. 내 시야는 A필러에 가려진 대자연과 높은 하늘로 가득 찼다. 1.5차선 도로에서 가끔 맞은편에 오는 차를 피해 주느라 아슬아슬 가장자리를 지나면서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운전하면서 기분이 좋았던 흔치 않은 시간이었다. 장롱 면허인 내 친구는 이런 좁은 길에서는 운전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안 하고 싶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그 산골짜기에도 사람이 제법 있었다. 1.5차선 산길 구석에 차를 세워둔 사람들은 뭘 하는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캠핑장에 들어가서 차를 대고, 사무실을 찾았다. 중년을 지난 아저씨가 종이에 직접 기록되어 있는 예약자들 이름을 펜으로 지워가며 체크인을 받고 있었다. 필요한 돈을 입금하면 다른 사람한테 알림이 가고, 그 사람은 아저씨에게 입금 사실을 알려준다. 아저씨는 그걸 확인하고 카라반 번호를 배정해준다. 나는 여러 가지로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름의 고민과 노력의 결과겠거니 했다.


카라반은 캠핑장 가장 구석에 위치한 곳으로 배정받았다. 카라반 문은 철문과 방충망 2중으로 되어있었다. 방충망은 손잡이 쪽에 구멍이 뚫려 비닐로 덧대어져 있었다. 카라반에 들어서자 여름철 장마를 지낸 후 뜨거운 태양에 쪄지고 방치된 창고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코를 찔렀다. 나는 들어서자마자 창문을 모두 열고 환기를 시켰다.


바베큐 그릴에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구워 먹는다. 마트에서 산 양송이도 거꾸로 뒤집어 구워 버섯 물을 만든다. 술잔이 오고 간다. 친하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 친하지만 서로 같이 아는 사람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오고 간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불 앞에 앉으니 날 것의 뜨거움이 정강이에 고스란히 닿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지나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친구가 초등학생 때 줬던 생일 편지가 떠오른다. 나의 게임 실력을 인정해주는 내용이었다. 진지하게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바뀌는 것을 체감한다. 또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느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밤하늘에 별을 수놓았다. 나의 눈에 들어오는 별들은 점점 더 멀어져 이제는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과거에 머무르는 나는 아직도 그들이 같이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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