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으로 전해지는 것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망원동으로 이사를 왔다. 4평 남짓 조그마한 옥탑방이다. 빨간 벽돌로 쌓인 정사각형 구조의 집인데, 좋게 말하면 작은 창고 같고 나쁘게 말하면 큰 개집 같다. 이삿짐을 정리하고, 나만의 생활 규칙을 정해 가고 있을 때 즈음 추석이 찾아왔다. 어머니가 바쁘셔서 이번 추석에는 집에 혼자 있기로 했다.
추석 당일 아침에 현관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주먹으로 현관을 치는 듯했지만 소리는 크지 않았다. 급하게 바지를 챙겨 입고 현관을 열자 아래층 주인집 아주머니가 서 계셨다. 조그만 신발장은 금세 상쾌한 가을 아침 공기로 가득 채워졌다. 아주머니는 추석에 집에 혼자 있는 것 같아서 전을 주러 오셨다고 했다. 커다란 접시에 전이 한가득 올려져 있고, 그 위로 랩을 덮어놨다. 뜨거운 전 때문에 랩 안에는 물방울이 잔뜩 맺혔다. 어머니께 이 일을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며칠 후에 망원에 들리시면서 수박 두 통을 사서 주인집에 드렸다.
2학기가 끝나고 여유로운 1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수강신청을 잘못해서 듣기 싫은 과목들이 너무 많았다. 한 과목은 기말시험을 안 봤고, 다른 과목은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학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또 다른 과목은 너무 듣기 싫어서 출튀(출석하고 튀기)를 밥 먹듯이 했다. F를 받은 과목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학기가 끝나니 너무 행복했다. 돌아오는 봄에 학교를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종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휴학을 결심했다.
아침마다 파자마 바지를 입고 옥탑 옥상 철제 의자에 앉아 햇빛을 쬐는 것이 아침 루틴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철제 테이블 위에 물을 조금 받아둔 종이컵을 재떨이 삼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벽 뒤에 가려져서 밖에 있는 나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덜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버리고 현관 쪽으로 향했다. 성격 급한 주인집 할머니가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지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한 손에는 전이 가득한 접시를 들고 계셨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맞이했다. 할머니는 머쓱하셨는지 전만 빠르게 전해주시고 다시 내려가셨다. 다 먹고 접시를 돌려달라는 말은 잊지 않으셨다. 나는 문뜩 내가 집에 없을 때 몇 번이나 집에 사람들이 오갔을까 궁금해졌다. 평소에 문을 잠그지 않은 것은 나였기 때문에 할 말은 없었다.
하루는 새벽에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왔다. 옥상 가장 어두운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져서 간담이 서늘해졌다. 주인집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옥상 구석에서 키가 비슷한 다른 빌라들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저씨의 술톤 피부가 달빛 아래서 더욱 빨갛고 어둡게 보였다. 둘은 간단히 목례만 하고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덜 어두운 쪽 옥상 모서리로 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며칠 전부터 아래층 현관문 앞에 빈 소주병 양이 많아졌다. 항상 옥탑 밖에 따로 있는 다용도실에서 자전거를 꺼내 어깨에 짊어지고 계단을 내려갔는데, 바쁜 아침에 자전거를 들고 소주병을 피해 내려가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주인집 아저씨는 근처 수학 학원 원장이었다. 운전은 어떻게 해서 출근을 하시는지 아침에 마주칠 때면 항상 벌건 얼굴로 머쓱하게 웃으며 인사하셨다.
늦은 열대야에 문을 열고 방충망만 쳐둔 채로 자는 일이 빈번했다. 에어컨을 켜기에는 바깥 기온이 낮고, 문을 닫기에는 너무 습하고 더웠다. 주인집 빈 소주병이 늘어날수록 아랫집에서는 큰 소리가 자주 오갔다. 아주머니가 큰 목소리로 ‘이젠 못 참겠어'라고 하시거나, 더 격양된 목소리로 ‘다 죽자는 거야' 따위의 말을 하시는 게 자주 들렸다. 그런 일이 있는 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계단에 걸려있던 화분 중 몇 개가 깨친 채로 계단을 나뒹굴었다. 화분의 파편과 흩뿌려진 흙, 널브러진 소주병은 더욱 계단을 내려가기 힘들게 만들었다. 며칠 뒤에 있던 그 해 추석에는 전을 먹지 못했다. 그 이후로 전을 먹은 것은 추석이 한참 지난 나중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