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굿모닝, 달랏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한국에 오자마자 감기에 걸렸다. 감기는 점점 거세지다가 가라앉았다. 방심하는 틈에 지독한 독감이 들어앉았다. 이런 젠장! 진짜 너무 아프다! 너무 아파서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싶을 정도다. 머리는 드릴로 뚫리는 것만 같고 온몸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다. 소화는 안 되고 뭘 먹을 때마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다.
보이지 않는 독감에서 보이는 독감으로 옮겨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중 뭐가 더 지독하냐고 묻는다면 진짜 둘 다 별로다. 둘 다 진짜 엉엉 울고 싶을 정도로 아프단 말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토피가 있다. 만성적인 아토피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어릴 땐 정말 심했다. 정말 심할 땐 피부가 거의 죽은 것처럼 거무죽죽했다. 사춘기 시절엔 이게 너무나도 스트레스라 독하게 치료를 결심했다. 치료의 시작은 거무죽죽한 피부를 바로 뽀얀 피부로 돌리는 것이 아니다. 다시 피부를 붉게 미친듯이 가려운 상태로 올린 후 지속적인 관리로 뽀얀 피부로 돌린다. (참고로 나는 한의원에 다니면서 치료했다) 그 과정을 거쳐야 죽은 것처럼 보이는 피부에서 정상적인 피부로 돌아온다.
마음이란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죽은 것 같은 마음에서 갑자기 한순간에 살 것만 같은 마음이 될 순 없다. 깊이 침전된 온갖 더러운 찌꺼기들이 올라와야 한다. 깊은 슬픔, 절망, 오열할 것만 같은 마음, 낙심, 그리운 마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 스스로에 대한 경멸, 무거운 짐과 구멍 난 마음. 피하고 싶었던 마음들을 직면하는 것은 괴롭지만 직면하고 인정하고 때론 펑펑 울거나 때론 스스로를 설득하고 다독임으로 그 과정을 아프게 지나가야 한다. 지나가야 하는 과정은 지나가야 하니까.
그 과정을 지나온 나 자신을 안아주고 싶다. 수고했다고. 정말 수고했다고. 많이 아팠을 텐데. 많이 괴로웠을 텐데. 토닥토닥, 그렇게 안아주고 싶다. 그렇게 정말 깊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나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다. 더 많은 이들을 푸욱 안아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그런 깊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시작은 도망이었다. 그러나 돌아보니 그것은 쉼이었다. 그것도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으로 경험한 진짜 쉼이었다. 처음 알았다. 인생에 있어서 쉬어가는 것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우린 때로 그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