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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강재 Jun 23. 2016

용기


난 올해 쓸 용기를 다 썼다.

정확히 2016년 4월에 다썼다.

남은 올해 6개월은 자숙의 기간이다.




그래서

더는

남자한테 찝쩍 거릴 용기도

선배한테 버럭 개길 용기도

테스트도 안해본 화장품을 턱하니 지를

용기가 없다.

다 써버렸다.


내년에 다시 할거다.

남자한테 찝쩍거리고

선배한테 소리치고

화장품도 사야지.


그래서 저번 주말

패러글라이딩을 타러간 건

그냥 용기 없이 간 거다.

용기 없이 타고 보니

하나도 안 무서웠다.

좀 시원할 뿐이었다.








내 목숨을 맡은 강사는

나에게 안전모를 직접 씌워주고

버클도 채워줬다.

앞머리를 넘기라고 시키고는

국방색 뽀빠이 옷을 입히고는

친절하게

옷이 기니까

두번 접으라고도 말했다.




두번 접기 귀찮아서 못들은 척하니

접을 때까지 반복해서 말했다.

난 사회화가 잘 된 사람이라

얌전히 두번 차곡차곡 접었다.



서울 어디 사냐길래

잠실 산다니 고등학교 어디나왔냐고 물었다.

본인은 내가 모르는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공부를 못해서 꿇었다고도 했다.

어쩐지 일진의 냄새가 풍겼다.

혼자 왔냐고도 했다.

'네...

혼자 왔구요....'


멀미 많이 하냐길래

그냥 참겠다고 했다.



질문을 이것저것 많이 받았다.

그러더니

우린 남한강을 향해 뜁니다. 뛰어요!

라고

소리치고 안전교육도 없이

뜀박질을 시켰다.

사망시 책임 못짐 동의 각서도 안 썼다.

헛소문이었나 보다.


내가 아는 건

고프레 카메라 봉을

어떻게 잡아야 무겁지 않은가, 뿐이었다

-이십오센티 간격으로 넓게 잡으면 된다-


아래는 가파른 절벽이었다.

그래도

설마 이 사람이 생판 모르는 나랑 같이

죽고 싶진 않겠지.

뛰었다.


뛰어도 뛰어도

패러글라이딩에 바람에

-부력이라고 했던 것 같다-

뒤에서 날 잡아당기는게 많아

걸음이 나가지 않았다.

90%는 강사님이 뛰고

나는 5%정도 뛴것 같다.

남은 5%는 바람이다.

어느 순간 한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허공을 동동 굴렀다.



하늘위에서 내가 뱉은 말은

'선생님, 선생님, 제 귀에서

소리가 들려요

삑삑삑삑삑 소리가'


선생님이 들고 있는 기압체크기 소리라고 했다.

우리 둘은 더 말은 하지 않았다.


12분 비행을 했다고 한다.

오래한 거라고 했다.

꿀바람이라고 했다.


내 목숨을 살려준 강사는

또 직접 안전모도 벗겨주고

버클도 벗겨주고

패러글라이딩 날개를 차곡차곡 접어

-명칭, 나도 알고 싶다-

이불처럼 돌돌말아

프로답게 트럭에 실었다.


우리가 착륙한

-착륙말고 다른 프로급 명칭이 있을텐데-

곳으로 트럭을 끌고 온

또 다른 강사는

내몸에 달려있던

끈- 같은 것들-과

지팡이-같은 것들-을

챙겼다.

간만에 남자남자한 사람들을

흐뭇하게 보노라니

트럭에 타라고 했다.


...


트럭을 타고 제자리로 돌아오니

강사님이 어디가냐고,

장미터널이 볼만하다고 했다.

구인사는 늦었고

멀리가면 다 끝날시간이라고.


뭐 볼거냐 묻길래

대충 보겠다고 했다.

뭐 먹을거냐 길래

대충 먹겠다고 했다.

참 친절한 강사님.



명함을 받았다.

전화하라고 했다.

관광할때 물어보라고 했다.

모르는게 있어도 전화하라고 했다.

전화하라고.

다른 사람에겐 주지 않는 듯 했다.


전화는 하지 않았다.

올해 쓸 용기는 다 썼으니까.



후배에게 말하니 원래 다 주는 거라고 했다.

죽고 싶냐고 하니

선배 아직 살아있네 라고 말을 바꿨다.


그 다음날엔

혼자 묵밥을 먹었다.

저 산이 소백산 줄기인가.

혼자 평상에 앉아 산을 보면서 먹는

묵밥은 꿀맛이었다.






아, 행복하다

느끼는데

회사동기가 행글라이더 타다가 추락해서

나무에 세시간 동안 걸려있다가

구조된 사건 기사를 카톡 링크로 보내왔다.

내가 타던 그 시간대 사고였다.

꿀 바람이라더니.


나는 용기가 더 남지 않았으니

내 주변 사람들은 용기 내서

타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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