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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sun 리선 Aug 07. 2023

흰머리 소녀의 그림일기

먹물과 친해지기 (14)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건 항상 설레는 일이다.

같은 화실에 다니고 있는 회원 중 나랑 잘 통하고 나이도 같아서 친구 하기로 한 A가 있다.

그 친구의 소개로 오늘부터 매주 월요일은 먹물과 친해지기로 했다.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은 서예를 하신 분이라 그런지 조급함이 없고 여유로우시며 

인자해 보이기 까지 하셨다.

서예와 동양화 캘리그래피 서양화까지 두루 접하신 분이라 더 관심이 갔다.


A와 나, A가 아는 언니분 이렇게 셋이서 오늘 첫 수업을 시작했다.     

붙잡는 법, 종이 사용법, 붓의 느낌과 먹물의 농도 조절하기, 등 등 기본적인 것을 이해하고

가로선 긋기와 세로선 긋기에 들어갔다.

선긋기는 단조로워서 빨리 지겨워짐을 눈치채셨는지 선생님은 바로바로 다음단계로 수업을 진행해 주셨다. 

오늘은 선긋기와 난 치기, 1번, 2번, 3번, 4번 잎 그리기를 연습했다.

살짝 직선인 듯하면서도 사선을 그리며 첫 시작점은 뒤로 갔다가 앞으로 와서 쭈욱 힘 있게 가다가 힘을 빼면서 붓을 들었다가 다시 힘 한번 더 주고 끝으로 가면서 붓끝으로 가늘게 하고 붓을 들고 살짝 앞으로 빼준다.

 

빨리 하고 싶은 마음에, 붓에 먹물을 제대로 입히지 않아서 회색이 나오고 물이 많아서 퍼지고, 먹물을 너무 진하게 하니 또 붓이 빨리 말라버려서 가뭄에 땅이 갈라지듯 선들이 제각각으로 뻗어있다.

내가 봐도 참 가관이다. 

많은 연습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인 줄 뻔히 알면서도 욕심만 앞선다.     


선생님을 뵈니 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옆에 앉아서 어설프게 먹을 갈며 어깨 너머로 서예를 잠시 배운 적이 있었다.

나는 서예보다는 사군자그림이 더 관심이 많았다. 하얀 종이 위에 먹물이 진해졌다가 여려졌다가 퍼지기도 하면서 그 느낌을 살려가며 아버지의 손에 의해 난초가 피어나고, 매화도 피어나고, 국화도 피어났으며 대나무도 쭉쭉 뻗어나가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인내심이 부족했던 나는 얼마 못하고 말았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좀 더 진중하게 배워둘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뭐든지 다 때가 있는지라 어쩌면 지금이 내가 배우기 가장 좋은 때라고 여기며 

억지로 위로해 본다.   

       

오늘 첫 수업인데 잘해봤자 뻔하지 않을까마는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던 손들이라 감각이 있다면서 빨리 습득한다고 칭찬해 주셨다. 칭찬은 역시나 붓도 춤추게 한다.      

수업은 정적이고 긴장감이 있다.

나를 자꾸만 절제하며, 다독이고 가라앉히기에 정말 좋은 수업이다.

획의 굵기와 간격 등 기본 요소를 정확히 이해하고 많은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선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해 집중해서 연습해야겠다.

나의 느낌과 감정을 담아서 표현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꾸준히 잘 배워서 동, 서양의 조화로움을 유화로 잘 엮어봐야겠다.

하루빨리 먹물과 친해져서 자유롭게 그려보고 싶다. 



#글로다짓기 #22일글로다짓기 #최주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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