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13)
나를 무척이나 따르던 S가 있었다.
나보다 10년이나 어렸던 그녀가 한창 젊고 이뻤을 때 미국으로 가더니
그곳 현지 남자랑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했다.
가끔 그녀랑 안부인사나 하다가 서로 연락하는 간극이 넓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소식이 끊겨버렸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실감 났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한국에서 유방암 수술받고 친정에서 지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좀 더 건강한 모습으로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오랜만에 만나서 보게 된 그녀의 얼굴은 많이 상해있었다.
늘 긍정적이고 활발한 모습은 여전했지만, 그 뒷면에는 쓸쓸하고 외로운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아파서 이겠거니 하고 가볍게 넘겼다.
이상한 건 그녀가 미국에 집이 있고 가족들이 있을 텐데, 갈 생각을 안 하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암도 회복되고 있다고 했는데 말이다.
한국에 온 지 햇수로 3년이 넘었다고 했다.
나중에서야 속사정을 알고 보니, 유방암에 걸린 것도 남편의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결국 이혼하고 아이들과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혼하고 난 후에도 남편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아이아빠를 내세우며 남편행세를 했단다.
여자의 인생은 한 남자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딸려있나 보다.
그래서 옛말에 여자팔자는 두레박팔자라고 했던가
요즈음이야 여자든 남자든 서로 잘 만나야 하겠지만 말이다.
아이들도 다 커서 엄마손이 필요할 때는 지났기에,
한국에 사는 게 자기는 훨씬 편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보기에도 건강해 보이고 무엇보다 한국생활이 행복하다 하니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2년도 채 못 채우고, 유방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어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기를 여러 번이었다
이 친구의 문제점은 암환자임을 망각한 채 음식을 가리지 않고 패스트푸드를 아무 생각 없이 막 먹어댔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라 해도 그게 더 스트레스라며 자기가 먹고 싶은 건 꼭 먹어야 했다.
결국에는 암이 여기저기 온몸에 퍼져버려서 응급실로 실려가고 말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며, 엄마에게 살고 싶다고 살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그녀의 엄마가 눈물 한 방울 없이 너무나 태연하게 말하길래 장례식에 함께 갔던 친구들과 나는
의아하기만 했다. 속으로 (엄마 맞아? ) 하며..... 우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환청이 들리는 듯
눈물이 주르륵 흘렀는데 말이다.ㅠㅠ
알고 보니, 그녀의 엄마는 새엄마였었다.
말 못 할 응어리를 참 많이 안고 갔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본다.
너무 오래도록 살기를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빨리 떠나고 싶지도 않다.
자연스레 세월에 나를 맡기며 아름답게 나이 들어
내 주변인들에게만은 피해 주지 않을 정도로만 살다가
편하게 조용히 떠나고 싶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건강해야겠지.
비워내고
버리고
가벼워져야만
비로소 날아갈 수 있듯이
가벼워지자
제 할 일 다 하고 아름답게 물들어가며 마지막 순간엔
춤추듯이 떨어져 가는 저 낙엽처럼 말이다.
내가 춤추며 날아갈 수 있게 잔잔한 바람이 불어준다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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