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가한 오후

오후 7시 글밥 짓기

by Lee sun 리선


뭘 쓰지?

무얼 써야 할까?


세월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지나간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리저리 나뭇잎들을 흔들어 놓듯이 내 마음을 휘젓고 사라진다.

길고 가느다란 구름이 얼음처럼 파란 하늘 위에 달라붙어있다.

하늘은 덧없이 눈이 아플 정도로 쳐다볼 수 없고 먼지 섞인 바람은 내 목을 조여 온다.

잠시 쉬기로 했던 브런치 글쓰기가 길고도 깊은 겨울잠을 자버리고 말았다.

이제 슬슬 다시 기지개를 켜고, 글밥을 짓기 위해 군불을 지펴야겠다.

하얀 백지위에서 내 눈은 갈길을 잃은 채 잠시 멍하니 모니트만 바라본다.

갑지가 막막해진다





물끄러미 화면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다가, 문득 창밖의 햇살에 눈이 간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은 한참 전 그리던 퐁시리처럼 고요하고도 멍하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건 언제나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다.

아무것도 쓰지 못할까 봐, 혹은 쓰고 나서 그 글들이 나를 실망시킬까 봐. 걱정부터 앞선다

그런데 어쩌면 이 막막함이 바로 창작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림을 그릴 때도 늘 그랬다. 새하얀 캔버스를 마주하고 처음 붓을 들기까지의 그 두근거림, 방향을 잃은 듯한 생각,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어떤 색감, 혹은 아주 어릴 적 기억 하나가 살포시 올라와 실마리가 되어 흐름이 시작되었다.

글도 마찬가지젰지. 내 안의 오래된 기억이나, 오늘의 하늘처럼 파란 어떤 감정 하나를 꺼내어 천천히 그 윤곽을 더듬어보자. 예를 들어보자면 어제 지하철 안에서 마주친 누군가의 표정, 어릴 적 엄마가 해주시던 따뜻한 말 한마디, 혹은 내가 잊고 지냈던 나만의 습관 같은 것들.

기억은 생각보다 성실하다. 내가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하나 둘 고개를 내밀고 들어온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펜을 든다. 퐁시리가 친구들을 만났듯, 나도 잊고 있던 단어들과 다시 인사를 나눈다. 문장 하나하나가 몸을 풀 듯 조심스럽게 늘어지고, 조금씩 그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바람은 여전히 분다. 세월은 여전히 빠르다. 그러나 나는 그 흐름을 따라가며, 내 마음의 바람을 글로 그려보려 한다. 오늘의 막막함조차도 언젠가 돌아보면 따뜻한 시작이었다고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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