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7시 글밥 짓기
여러분은 하루 중 가장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시간이 언제인가요?
저는 오후 7시예요.
하루 종일 밖에서 흩어져 있던 마음들이 슬금슬금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
집 안 공기가 조금 달라지고, 부엌에서는 밥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그때 나는 식탁 한쪽에 앉아 노트를 펼친다.
이 시간에 쓰는 글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하다.
잘 쓰려고 애쓰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시간,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글을 쓰는 시간'이 아니라 '글밥을 짓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아침의 글은 머리로 쓰게 되고,
낮의 글은 일처럼 느껴지지만,
오후 7시의 글은 다르다.
하루를 다 살아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잘 견뎌냈다는 증거처럼,
오늘도 무사히 지나왔다는 확인처럼,
거울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바로잡아주지만,
글은 헝클어진 내 마음을 차분히 빗겨준다.
하루 동안 쌓인 말들, 삼킨 감정들, 괜히 서운했던 순간들,
이유 없이 무거웠던 기분들이
문장 사이에서 조금씩 풀려 나간다.
마치 엉킨 실타래를 조심스럽게 푸는 것처럼, 나는 나를 건드러지 않고,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정리한다.
글을 쓴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인생이 갑자기 쉬워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의 온도가 달라진다.
차갑게 굳어 있던 하루가 조금은 말랑해지고, 조금은 숨 쉬기 편해진다.
나는 글을 통해 나를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나를 이해하려고 한다.
왜 힘들었고, 예민했는지, 왜 그 말이 오래 남았는지,
그 이유를 찾다보면 나를 혼내는 대신, 나를 안아주게 된다.
그래서 이 시간의 글에는 멋진 문장도, 대단한 깨달음도 없다.
다만 '그래도 오늘 잘 버텼다'는 작은 확인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 한 줄이 내일을 다시 살아갈 힘이 된다.
나는 오늘도 밥을 짓듯 글을 짓는다.
누군가에게 대접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먹이기 위한 글,
나를 굶기지 않기 위해,
나를 방치하지 않기 위해.
어쩌면 글쓰기의 비밀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인지도 모른다.
잘 쓰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나를 따뜻하게 하겠다는 마음.
그래서 오늘도 오후 7시가 되면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내 마음에 밥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