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의일들입니다.
어제 그렇게 기세 등등하게 나는 숙일 필요가 없다고 글을 썼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이 걱정이 되었고 단둘이 차 안에 있는 시간이 아마 지옥 같을 거라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오늘은 무슨 말을 또 할까. 나는 사과 같은 건 듣고 싶지 않은데. 그냥 아무 말 없이 아무 언급 없이 일만 하고 싶다. 사적인 교류 없이 공적으로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인 일만 하고 싶다.
하지만 상대는 말을 하겠지. 말을 또 걸겠지. 그럼 난 그냥 뒤 칸으로 가서 노래를 듣고 있어야겠다.
나한테 뭐라고 하면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리에 떠돌았다. 그리고 계속 이렇게 1년 동안 일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그만두고 쉬었다가 새로 일을 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당연히 피해자가 숨고 피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피해자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껄끄러운 것도 껄끄러운 거지만 상대가 다른 마음을 먹고 내가 또 피해를 보면 그 문제는 타인이 책임질 수 없다. 나는 2차 피해를 당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미 나는 몇 번이고 참았으니 2차가 아닌 3차 4차 피해겠다.
내가 하루에 다른 일들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고 책임져야 하는 것들도 많은데 그거 하나 때문에 아침마다 온 신경을 곤두 세우는 에너지 소모를 할 순 없다.
그리고 이건 아침뿐만이 아니라 그 아침을 걱정하는 그날 저녁 밤 그리고 내가 걱정하는 모든 시간이 나에게는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다. 그건 두 번째 피해라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시 마주한 아침에 서로 불편함이 있었고 나는 상대의 개미 똥만도 못한 변명을 들어야 했고 그에 따른 부담감과 공포를 느꼈다. 그때도 차 안엔 나와 그 사람 둘 뿐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나에게는 따로 사과가 없었다. 이후 나는 대표님과 면담을 했고 우리에겐 당신의 안전이 최우선이고 내가 우선이라고 지켜줄 테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하셨다. 물론 기업의 이미지를 우선시해서 사회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지만 그것만 해도 이게 어딘가 싶었다. 내가 여초 집단에 속해있고 그리고 이런 문제가 예민할 수밖에 없는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게 천만다행이다 느꼈다. 어쨌든 감사했다.
그분에게 제대로 경고 조치를 취했고 해고하실 의향도 있으셨다. 사실 해고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나 이후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날 수 있으니 해고가 적합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일단 내가 맡은 파트는 변경되었고 내일부터 나는 그분을 마주할 일이 전혀 없어졌다.
사실 어제도 글을 쓰고 올릴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올리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했던 이유는 이렇게 주변 사람들도 쉽게 성희롱을 당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심지어 권력관계의 구도가 전혀 없는 위치에 있어도 너무나도 쉽게 당한다. 나는 만약 내 상사가 이렇게 행동했더라면 과연 말 한마디 벙끗할 수 있었을까 싶다. 성희롱당한 게 뭐 자랑이라고 올리겠냐마는 공유를 하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저도 그런 일을 겪었다며 공감하고 응원과 염려의 마음을 전달해 주셨다.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고 아무리 최근에 미투 운동이니 꼴 페미가 설친다 뭐니 해도 여전히 성희롱은 세상에 만연 하는구나를 느꼈다.
하는 쪽의 사람들의 개선 의지가 전혀 없고 본인들은 느끼지 못하니 뭐 당연한 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나도 상대를 대할 때 여자든 남자든 좀 더 조심성 있게 대해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뭐든 상대적이니 나의 농담이나 행동 언행에도 상처 받고 기분 나쁠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제도적인 개선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참지 않는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느껴야 하고 본인이 인지하고 느끼지 못한다면 머리로 라도 공부해 배워야 한다. 세상이 우리가 아닌 그들에게 더 분명한 잣대로 불편함을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