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요 Nov 13. 2018

Y의 결혼

무엇을 선택하든 결국엔 괜찮지 않을까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사실 못했다는 것 보다는 안썼다는게 맞는 표현일듯 하다.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을때는 매번 잠을 자지 못했고 신경이 곤두서있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한참 불면증에 시달렸을때는 차라리 글을 쓰지 못해도 좋고 그림을 그리지 못해도 좋으니 다른 사람들 처럼 잠 오면 자고 먹고 싶을때 먹는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신을 믿지도 않지만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에게 그렇게도 간절히 기도를 했더랬다. 하지만 인간은 아이러니한 동물인게 그렇게 평범하게 생활을 하다보니 또 한쪽 구석이 심심했나 보다. 마음 한 쪽에서는 글을 써야한다고 다시 시작해봐야 한다고 활자들이 하나씩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저번 주 주말에는 부산을 다녀왔다. 가족만큼 아끼는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오랫만에 가는 부산행은 설레었고 퇴근 후 바로 도착 한 부산역 개표구를 봤을때는 차원의 문으로 순간이동을 한 기분이었다. 내가 이 직전까지 서울에서 일했던거 맞지? 계속해서 되물었다. 감기 기운 때문에 몽롱한 상태였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나 보다. 바로 지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이동했고 이동하는 내내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부산의 지하철은 서울보다 좁았고 익숙한 사투리가 들려왔다. 그래. 내가 20대 초반에 살던곳은 이런 분위기였지. 


D언니는 내가 생각했던곳 보다 더 좋은 공간을 내주었고 나는 서울에서 지내는 자취방과는 비교도 못할 멋진 곳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다음 날의 결혼식 때문일까 낯선 환경 때문일까 생각이 많은 나 때문일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따스했던 공간에서 잠을 푹 자지는 못했다. 여섯시 부터 일어나 씻고 준비를 마치고 D언니와 카레를 먹었다. 부산이라서 카레에도 해산물이 듬뿍 들어가 있었다. "해산물 들어간거 괜찮아?" 나는 이래뵈도 포항에서 자랐기에 해산물은 익숙했다. "응 다 좋아" 

저질 체력에 예민한 우리는 이후 약속은 피곤해서 잡지 못했고 반나절도 안되는 만남이 아쉬운 마음에 아침을 먹으면서 이때까지 쌓아뒀던 이야기들을 후룩후룩 뱉어냈다. 


친구Y의 결혼식은 정신 없었다. 학교 친구였기에 덕분에 과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흡사 동창회에 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들 뭐 하고 지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느라 기차표를 계속해서 환불하고 다시 예매하고를 반복했다. 내 책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오랫만에 책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다시 글을 써봐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제대로 인사를 하고 대화할 시간도 생겨서 좋았다.


친구Y는 아름다웠다. 사실 모든 것들이 그렇지만 특히나 겉보기에 화려한 것들은 속이 썩어들어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와 Y는 알고 있다. 다른 친구도 알고있다. 우리는 알고있었다. 이 결혼식을 준비하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고 얼마나 많은 상처와 눈물과 행복과 고통의 범벅이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고 한단계의 성숙한 지점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Y가 멋져보였고 자랑스럽고 부러웠다. 그가 이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어떤 노력을 들였고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 모든걸 감안 하고서도 부러웠다.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추상적인 신기루 같은 것이 Y에게는 손에 잡히는 실질적인 무언가였으니까. Y의 결혼을 축복했고 오랫만에 만난 동창들과의 만남이 감사했지만 혼자 돌아오는 길 그리고 혼자 남겨진 방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많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싱숭생숭하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지금 내 나이 또래의 이십대 후반과 삼십대 초반 사이의 여자들이 느끼는 그 감정 이었다. 나중에 나만 남겨지는 건 아니겠지. 말로 뱉어내면 기정사실이 되어 버릴까 무서운 그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든 결국 우리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것도 알고있다. 어찌됐든 시간은 흐를것이고 어떻게든 계속해서 살아낼거니까. 

심란할때마다 새로운 계획을 짜는걸 좋아하는 나는 혼자 살더라도 아니 어차피 혼자 살거면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고양이 두마리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갑작스럽게 가까운 미래 계획을 변경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이고 또 언제 바뀌게 될지 모르는 계획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부산행은 그래도 성공적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오해와 사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