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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인 Oct 12. 2020

엄마의 첫 자유명절

33년 만의 해방

2년 전 추석은 삼십 년 넘게 대식구의 명절 음식을 차렸던 엄마의 첫 자유명절이었다.


봉정암에 가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1박 2일 설악산 산행 대장정이 시작됐다. 간단한 음식을 넣은 가방을 메고 발걸음을 뗐다.


기름 냄새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기름에 절여질 정도로 음식을 해내던 그 과업에서 벗어나 오르던 산길. 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가 어떤 심정으로 그 길을 걸었는지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길을 가고 싶었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해탈 고개를 지나 도착한 봉정암은 고요했고 우리는 암자에서 준비해준 미역국을 사발채 들이켰다. 명절에 음식 안 하고 누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으니 더 맛있다고 옅게 웃었던 엄마.


막내로 태어나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하다가 장남과 결혼해 갑자기 맡게 된 ‘맏며느리’ 역할은 엄마에게 참 무거웠을 거다. ‘도리를 다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텨온 삼십여 년. ‘힘들겠다, 못하겠다’는 말도 별로 하지 않고 묵묵히 역할을 수행한 엄마의 가슴에 돌덩이들이 하나둘씩 쌓여왔던 게 성인이 되고 나니 보였다.

산을 오르며 엄마는 ‘아- 시원하다.’라는 말을 많이 하셨다. 엄마 안에 쌓인 돌들 사이로 바람이 통하는 것 같아 나도 덩달아 시원해졌었다.


오래동안 생각나는 엄마의 뒷 모습. 산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봉정암에 서서 먼 산을 바라보던 엄마의 뒷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말없이 산을 바라보던 엄마를 방해하지 않고 한참을 기다렸다. 엄마의 가슴속에 시원한 바람이 통하여 좀 가벼워졌으면 하고 바라었던 것 같다.


이번 추석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이 많을 것 같다. 그 어느 곳이든 한 사람의 희생으로 여러 명이 편한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각자의 집에서 평안한 명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이번 명절은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엄마에게 어서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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