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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인 Oct 14. 2020

나의 우밍아웃기

‘나 우울해’라고 말하고 나서 일어난 일들..

 또다시 긴 우울의 시간이 지나갔다. 우울한 시기를 혹자는 터널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나에게 우울한 시기란 물속에 잠겨있는 것 같다.


 내가 물로 둘러 쌓여서 주변의 소리도 크게 들리지 않고 느낌과 감각들이 나에게 직접 와 닿지 않고 물을 거쳐 오는 것 같다. 나의 감정도 진폭이 별로 없고 깊은 심해의 느낌 마냥 고요하다. 우울을 이야기할 때 물이나 푸른색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느껴지는 것 같은 각성상태와는 너무도 다른 무딘 상태. 나는 나의 우울한 상태를 매우 싫어했다. 굳이 과거형으로 쓰고 있지만 사실 아직도 좋아하지는 않는다. 우울함을 그냥 그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내게는 너무 먼 당신' 같다.


 우울과 각성의 시기를 반복하며 일 년 반을 씨름하면서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는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지금도 우울의 시기를 살아가는 일이 나는 참 힘들다.      


다 귀찮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이대로 눈 뜨고 싶지 않다.

그냥 죽고 싶다.

생각은 결국 마지막까지 가고야 만다.     


 씻는 것도 귀찮아서 며칠 째 씻지도 않고 누워서 미드나 영화를 재미있어하지도 않으며 보는 나 스스로가 벌레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거울을 봐도 좀비 같은 상태이다..


 그러면 내가 더 싫어져서 우울한 감정은 더욱 증폭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미뤄둔 일들은 점점 무거워지고 나를 더욱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게 만든다.

     

 이런 시기에 나는 사람들을 되도록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솔직히 만나고 싶지 않았다. 연락도 잘 받지 않아서 정말 잠수를 탄다. 다 귀찮고 그냥 집에 혼자 누워만 있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극강의 무기력함.


 그리고 이런 우울한 나의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잘하고 좋은 상태의 내 모습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그래서 내 인스타에는 한 달에 일주일 정도만 신나게 사진이 업로드된다^^). 우울하고 힘든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거고 내 약점을 드러내는 건 불리하다는 생각이 많았다.


 우울한데 우울한 걸 감추고 괜찮은 척하느라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서 사람들 만나는 일을 더욱 피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내가 우울하다’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냥 조금 많이 무기력할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우울하다는 말을 나에게 붙이고 싶지가 않았다.     

   

 대학교 4학년 때 2주가 넘게 칩거했는데 학교 친구들이 기말고사라도 보라며 자취방으로 찾아왔었다. 겨우 추스르고 밖에 나갔는데 나뭇잎이 다 떨어져서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변해있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우울해도 어쩔 수 없이 밖에 나가게 되었고 그렇게 오랫동안 잠수를 타는 일은 불가능해졌다(역시 생업은 위대하다).


 계절 바뀌면 감기처럼 한 번씩 앓던 우울이 너무 자주 찾아오고 나서부터는 이걸 감추는 게 어려워졌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내가 우울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울한 상태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일도 생기고 일도 해야 했다.


 작년에 처음으로 ‘나 우울해. 힘들어.’라고 지인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모임에 나가면 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거나 축하하던 내가 죽상을 하고 앉아서 엉엉 울면서 힘들다고 말하니 친한 친구들은 많이 놀란 반응이었다. ‘네가 이러는 건 처음 봤다며’.


 그리고는 내가 생각했던 예상과는 정반대로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줬다. 그 위로는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깊은 물속에서 올라올 수 있게 하는 동아줄 혹은 내가 물 위로 올라가고 싶어 지게 만드는 따뜻한 빛줄기가 되어줬다.

     

 ‘나 우울해’라는 한 마디. 내 마음의 상태를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일단은 괜찮은 척 연기하지 않아도 되니 훨씬 덜 힘들었다. 그리고 내가 힘든 걸 오픈하자 다른 사람의 아픔도 알게 되면서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우울할 때는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한데 나 혼자만 이렇게 힘든 것 같아서 더 괴롭다).


 사람들의 위로도 정말 따뜻하고 강력했다. 우울할 때는 나 스스로가 싫어지는데 타인의 위로는 ‘이런 나라도 괜찮구나’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면서 스스로를 받아들이게 해 줬다. 그리고 힘든 걸 털어놓자 생각보다 훨씬 후련했다. 이는  ‘벤틸레이션(ventilation)’이라고 상담에서도 사용되는 중요한 기법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환기하는 것을 말한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고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것 같으며 이전의 답답함과 가라앉음은 사라졌다. 물속에서 올라와 숨을 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은 하늘 풍경

 가장 강력한 것은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스스로가 우울한 걸 인정하니 나를 돕는 방법들을 찾고 실행하게 되었다.


 요즘 나는 우울할 때 내가 당장 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일들은 타인의 도움을 받고(청소도우미, 전문 업체 이용, 배달음식 애용 등) 미룰 수 있는 일들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며 부담을 던다. 그리고 세신이나 마사지를 받거나 미용실에서 머리를 한다(그런 손길이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직장 동료들에게 나의 우울함을 털어놓았을 때 업무에서도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했을 때도 살뜰한 보살핌을 받고 우울한 시기를 잘 지나갈 수 있었다.      


 요즘의 나는 우울할 때도 사람들을 만나고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요즘 우울하다’라고 말한다(물론 모든 사람들에게는 아니다. 친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두런 두런 얘기를 나누고 돌아서면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울의 수면이 조금 낮아지고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하면 당장 해야 할 일들을 대신해주거나 육아를 맡아줘서 잠깐이라도 산책하고 올 시간을 만들어준다(남편 그리고 엄마 감사합니다).         

남편이 아기 보는 동안 산책하며 찍은 저녁 풍경

 참 감사하게도 나는 내 우울함을 드러내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정말 가까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앞으로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 내 우울을 밝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경험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다.

“나 지금 우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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