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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인 Oct 02. 2021

많이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그대로인 것 같은 날

오늘의 단상

  9개월 만에 다시 글을 쓰면서 다짐한 것은 부족해도 솔직하게 쓰기, 타인의 반응이나 평가보다는 나에게 집중해서 쓰기였다. 그런데 글을 올리고 라이킷 알람이 하나하나 올 때마다 너무 들떴다. 처음 댓글도 받아보고 흥분해서 답글도 달고 너무 친근하게 써서 그분이 놀라신 건 아닌가 염려도 했다. 


  작은 들뜸에서 시작한 생각은 계속 질주했다. 작년에 도전 실패한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에 이번에는 응모할 수 있을 것 같고 어쩌면 당선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봤다. 그러다가 작가로 등단하여 강의 섭외가 쇄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격려를 주는 스스로를 상상하며 들뜨게 되는 것이다. 겨우 2편의 글을 써놓고서 이런 엄청난 일들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것은 경조증 증상 때문이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틀이 지난 지금은 더 이상 울리지 않는 라이킷 알람 때문에 내 글이 쓸모없게 느껴진다. 브런치 북을 완성하지 못할 것 같고 겨우 완성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글이 될 것 같다. 고양되었던 기분의 높이만큼 추락은 아프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워진다. 


  오늘 아침에 왜 우울한지 생각하다가 이런 마음의 오르락 내리락을 발견했다. 양극성 장애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리 유쾌한 친구는 아니지만 함께 동행하며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오늘은 예전의 엉망인 상태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럴 때면 그동안의 노력이 다 소용없게 느껴지며 힘이 쭉 빠져버리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은 내 마음이 약해져 있는 틈을 귀신같이 알아내고 파고들어 이내 마음을 장악해버린다.


  평소였으면 우울해하며 며칠을 보내다 글쓰기를 포기했을 수도 있고 경조증 시기에나 다시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다른 선택지로 가보기로 했다. 지금 나의 상태 그대로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하고 지금 쓰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오늘은 그냥 우울에 빠지지 않고 마음을 관찰해서 오르락 내리락을 발견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마음(혹은 감정)을 관찰하려면 그것에 빠지지 않고 볼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하다. 내 마음속의 그런 공간이 조금은 생겨난 것이 아닐까?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주 조금은 달라져 있었다.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가만가만 되뇌어본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잊지 말자. 솔직한 나의 이야기를 타인의 평가에 관계없이 기록하자. 부족해도 괜찮다. 멈추지 않으면 아주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온전한 나이면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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