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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인 Jul 15. 2022

죽은 고래 말고 살아있는 새우가 될래

못나도 부족해도 생명력 넘치게!

  이번 주 내내 게슈탈트 집단상담에 참여하고 있다. 20명이 함께 하루 8시간씩 5일 동안 정해진 주제 없이 지금-여기에서 일어나는 것을 주제로 치열한 상호작용을 한다. 집단 리더에게 들이받기도 하고 처음 본 사이인데 마음에 안 든다며 말하기도 하고 펑펑 울었다가 박장대소했다가 하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다. 차가워 보이던 중년의 여성이 관심받으니까 너무 좋은데 부끄럽고 그래도 좋다며 아이 같은 얼굴로 말하는 마법이 일어나는 곳.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건드려지는 나의 주제들을 만나고 공감하고 서로 연결되면서 집단의 응집력이 생겨난다. '이곳은 안전하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평소라면 표현하지 않을 감정과 욕구를 드러내고 자신이 예상했던 반응과 다른 실제 경험을 하면서 미해결 과제들을 해결해 나간다. 

  이전의 집단에서 살아나는 경험을 했던지라 이번 집단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와중에도 고민 끝에 집단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화면에 보이는 사람들이 거의 다 마음에 안 들었다. 저 사람은 계속 웃어서 싫고 저 사람은 머리가 마음에 안 들고 저 사람은 배경화면이 마음에 안 들고 저 사람은 계속 움직이는 게 싫고.. 싫은 감정은 계속 올라오는데 사람들이 애쓰면서 하나씩 이야기하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시작하는 게 꼴 보기 싫고 와닿지 않았다. 싫은 감정을 모른 척하고 포장된 말로 집단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이 상황이 불편하다고 말하고 난 뒤 얼른 그 말을 이어받아 나의 불편함을 말했다. 다들 조금씩 연결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저 말이 진심일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혼자 반동분자가 된 기분이 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싫은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아 용기를 끌어모아 말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이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아뿔싸! 불안정한 인터넷 상태로 인해 내 말이 중간중간 다 끊겨서 사람들이 거의 듣지 못해서 피드백 없이 오전 장이 끝나버렸다.

  그 뒤로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것 같다는 나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혼자 위축되어 집단에 잘 참여하지 못했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있어도 내가 말하면 아까는 싫다고 말하더니 안 받아들여지니까 집단에 끼고 싶어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채 이틀이 흘렀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고 '공격적인 타인-못난 나'라는 틀에 갇혀있었다. 그러다가 한 집단원이 내가 마음이 쓰인다며 손을 내밀어 주었고 나는 그 손을 덥석 잡고 나와 엉엉 울면서 말했다. 누군가가 불러주길 너무 간절히 바랐다고.. 다들 나를 싫어할 거라는 생각에 갇혀서 계속 위축되어 있었다고.. 나도 싫고 남도 싫고 다 싫고 눈을 뜨고 싶지 않다고. 사람들과 공감하고 연결되는 것이 좋아서 상담사가 되었는데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는데 이것도 다 싫다고.. 솔직한 나의 마음을 말했다. 

  집단원들의 피드백은 역시나 나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절대 말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누구는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라는 말이 귀엽다는 사람이 두 명이나 됐었고 다 싫다고 말하는 그 공격성도 에너지라서 부럽다는 사람, 내가 처음 말하고 난 뒤 그 내용이 너무 궁금했고 더 듣고 싶었고 계속 눈이 갔다는 사람, 같은 아픔을 겪었지만 그냥 꾹 누르고 갑옷을 두른 채로 살았는데 그러지 않고 표현해서 좋다는 사람 등.. 그렇게 나의 걱정과는 다른 현실을 경험하면서 현재로 돌아왔고 존재로 피어나는 경험을 했다. 내 세계에 갇혀 있지 않고 현재로 돌아오니 사람들의 말도 너무 잘 들리고 마음이 느껴지고 신체 감각도 살아났다.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집단에 참여할 수 있었다. 

  네 번째 날이었던 오늘은 집단 리더가 상담 시연을 계속하고 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잘 모르는 내용이라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예전 같았으면 잘 못 따라가는 것을 자책하면서 괴로워지다가 결국 상대가 잘 못 가르치고 있다고 화를 내다가 미워했을 것 같은데 오늘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생각을 붙잡지 않고 지금-여기로 돌아오려고 했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호기심을 가지고 들어보려고 하니 훨씬 가벼운 마음이 되면서 체력적으로도 덜 힘들었다. 이 이야기를 하니까 집단 리더가 죽은 고래와 산 새우 이야기를 해주셨다. 커다란 죽은 고래가 둥둥 떠내려 오는데 그 옆에 작은 새우가 살아서 뽈뽈 헤엄쳐간다고. 콘텐츠에 갇히면 출구가 없고 죽게 되는데 현재에 집중하면 작아도 힘 있게 살아간다고. 살아있는 작은 새우의 생명력과 죽은 고래는 비교가 불가하다고. 

  나는 멋진 이상향이 있었고 그 그림처럼 되려고 무지 애를 썼지만 너무 높은 기준이었기 때문에 닿을 수 없어 좌절을 반복했고 결국 생명력이 꺼지는 번아웃을 경험했다. 그런 내게 작은 새우의 뽈뽈거리는 생명력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고래가 되려다가 죽지 말고 한 없이 작은 새우 그 자체로 그냥 너른 바다를 탐험하며 살아가면 되는 거구나.' 마음이 참 가벼워지면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집단의 마지막 날인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하며 이만 새우잠이라도 자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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