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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인 Oct 24. 2022

죽고 싶게 힘든 어제와 행복해 죽을 것 같은 오늘

나의 변덕스러운, 뒤죽박죽, 왔다 갔다, 우당탕탕


  어젯밤에는 정말 눈을 딱 감고 다시는 뜨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한 톨의 거짓도 없이 두 마음 모두가 진심이었다. 너무 진심인 이 두 마음의 간극에 어지럽다.


  4월에 단약을 하게 된 이후로 이상하게 불면증이 사라졌었다. 경조증은 나타나지 않았고 평안하지만 우울한 날들이 이어졌다. 어떤 날은 경조증이 다시 나타나길 진심으로 바랐다. 퍼져있는 소의 엉덩이를 후들겨 걷어차서 벌떡 일으켜 세워 밭일을 죽어라 하게 하는 경조증이 제발 오시기를.. 이런 내 마음을 선생님과 상담하며 오롯이 바라보았고 지켜보았다.  

신기하게 경조증은 오지 않았고 무기력도 한층 가벼워져가는 요즘이었다.

  지난 금요일.. 올해 들어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자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 많은 밤에 그랬듯 술을 한 잔 마셨고 세 잔이 되자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경조증이 온 거다. 그분이 드디어 오신 거다.

  잘 자고 있는 아기를 남편에게 부탁하고 새벽 1시에 동네에 사는 동생과 만나서 좋아하는 바에서 위스키를 한 잔 더 마셨다. 두 잔째 주문을 한 그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기가 깼는데 엄마만 찾으며 우는데 달래지지가 않는다고. 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전화 건너편으로 날카롭게 들려왔다. 냅다 뛰었지만 20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아이는 내가 올 때까지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안자마자 울음은 그쳤지만 잔 울음을 30분 넘게 했다. 아이를 안은채 너무 미안해서 나도 눈물이 났다. 내가 아이를 안자마자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간 남편의 태도에서 말할 수 없이 차가운 비난을 보았다.

  아이는 지쳐 누웠지만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3시간을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다. 아이가 완전히 잠든 것을 보고 나도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불가능이었다. 집에 남아있는 한 봉지의 수면제를 먹고 다시 잠을 청해보았지만 30분에 한 번씩 깨고 그렇게 아침이 되었다.

  

  22일 토요일은 집돌이 남편이 몇 년 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3달 전부터 예고했던 날이었고 나는 그 틈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었다. 각자의 지역에서 2-3시간 운전해서 오는 친구와 조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체력은 이미 바닥이었다.  

  아이와 함께 잠시 밖에 나간 사이 한 친구가 비어있는 우리 집에 먼저 도착했다.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오니 친구와 조카가 우릴 반겨주었다. 집은 정말 날것 그대로였고 배고팠던 조카는 식탁 위에 있던 뻥튀기 과자를 먹고 있었다. 널브러진 속옷들만 대충 치우고 피자를 시켰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나는 이미 녹다운 상태였다. 아이 낮잠을 재운다는 핑계로 침대로 갔지만 잠이 들지 않아 눈을 감고 누워만 있었다. 저녁 6시쯤 모든 일행이 다 모였을 때, 철저히 혼자 있고 싶었다. 모두 보내버리고 조용히 가만히 누워있고 싶었다.


  먼 곳에 사는 친구들이 출발하기로 한 9시가 어서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돌아가기를.. 표정관리도 안되고 어떻게 할 줄을 몰라 아이를 핑계로 놀이방에 거의 머물렀다.

  친구들을 황급히 배웅하고 집에서 자고 가기로 한 친구에게 이부자리를 챙겨주고 아이를 재우러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일찍 잠들었지만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밖에서 친구가 뒷정리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가서 얼굴을 마주 보고 웃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했고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힘이 없었다. 그냥 아이를 재우다 잠든 걸로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잠도 오지 않았고 누워서 고문당하고 있었다. 괴로워하다가 겨우 일어나서 친구 방 문을 두드렸다. 친구는 와~ 하며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지만 나는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퀭한 눈으로 너무 피곤해서 자야겠다고 말했다. 친구는 꼬옥 안아주며 어서 자라고 해 주었다. 그 품이 따뜻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수면제는 없었지만 뒤척이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꿈에서 내가 올리지도 않은 결재문서들에서 오류가 있으니 찾아내서 정오표를 만들어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고 너무 힘들게 깜깜이 짓을 하다가 정오표 정오표.. 말하며 깼다. 밝은 아침이었고 머리가 개운했다. 아이도 일어나서 놀이방에 가자고 하는데 좀 더 누워있고 싶어서 핑크퐁 영상을 틀어줬다. 원래 20-30분만 시청하는데 한참을 보여줬다. 이제는 일어나서 움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아이를 안고 방에서 나왔다.


  환기를 시키고 아이의 아침을 준비하는데 새 아침 같았다. 아직 자고 있는 친구가 언제 일어날지 기다려지는 것을 보며 안도했다. 다시 기운이 났구나. 사람이 싫지 않구나.


  친구가 거실로 나오자마자 가서 꼭 안겼다. 어젯밤과 같이 친구는 나를 포옥 안아주었다. 어제 너무 미안했다고 혼자 다 치우느라 힘들지 않았냐고 얼굴을 보며 물었다. 전에 우리 집에서 놀고 치워주지 못하고 갔던 게 너무 미안했다고, 이번에 자고 가니까 꼭 치워야겠다고 다짐하며 내려왔다고 한다. 퀭한 눈을 한 내가 너무 안쓰러웠고 대신 치워줄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너무 고마웠다.


  아이를 엄마에게 잠시 맡기고 친구와 함께 저수지가 보이는 카페로 갔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선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엉엉 울기도 하고 깔깔 웃기도 하면서 살아났다.


  여전히 어지러운 간극이 힘들지만 그래도 지금은 모든 것들이 다 끝이 있고 지나간다는 것을 안다. 죽고 싶은 밤도 지나가고 행복해 죽을 것 같은 시간도 지나간다. 죽지 않고 살아만 있으면 새 아침을 맞이 할 수 있다. 그 믿음이 나를 살게 한다.


  오늘도 잠이 오지 않아 새벽 3시에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이 밤도 지나갈 것이고 아침이 올 것을 안다.


죽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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