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정인 May 21. 2023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기

신경정신과 진료 이야기

  꿈에서 만난 중년의 여자가 한 말을 선생님에게 하다가 눈물이 흘렀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나는 사실 너덜너덜해. 아무것도 할 힘이 없어.”  

  번아웃이 온 이후로 2년. 휴직도 하고 성취를 향한 푸시를 전혀 하지 않고 쉬고 있다. 이제 이쯤이면 회복할 때도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내 안에 너덜너덜할 만큼 지친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막막해서 슬펐다.

  ‘이 정도로 쉬게 해 줬으면 그만 일어날 때도 되지 않았어? 응석 좀 그만 부리고 똑바로 해. 힘들다고 이해받는 것도 지겨워. 이제 일어나서 해야 될 일들을 해’

  내 안의 엄격한 자아가 하는 말들이다. 좀 쉬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쉬게 해 줬는데 복직도 다가오는데 여전히 지쳐있는 스스로가 너무 못마땅한 요즘이다. 널브러져 있다가 그런 나를 미워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무기력해지고 다시 널브러지는 악순환 중이다. 이런 상황이 너무 답답하다고 말하니 선생님이 대답했다.


  “정인씨 첫 기억이 떠오르네요. 육교 위에서 힘들다는 정인씨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던 순간이요. 지금 자신에게 똑같이 대하고 있네요.”


  성장은 재촉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장에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나는 행동으로만 나를 쉬게 했을 뿐 속으로는 재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다려주는 동안 견고한 일상을 살아야겠다. 나를 미워할 선택을 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면서 기다리기. 내가 나를 몰아치고 엄하게 대하는 태도가 내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기보다 잘하라고 다그치고 있다. 나의 아픔을 아이에게 똑같이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품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버스를 놓치더라도 육교 위에서 잠시 쉬어가며 아이의 아픔을 돌봐주는 것이 필요한 지금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울증이 힘든 나의 이유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