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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인 Jul 04. 2023

우울할 때 꺼내보아요

나만을 위한 우울 처방전

  오늘 상담한 내용을 기록하여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시간도 결국에는 끝이 난다. 최소한의 해야 할 것만 하면서 기다리면 다시 올라온다. 어김없이. 그걸 믿자. 극심한 우울을 2주 보내고 나서 지난주에는 20분만 집중해서 일하고 다시 한참을 쉬고 다시 20분만 하면서 미뤄놨던 결과보고서들을 거의 다 끝냈다. 그랬더니 점점 더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일이 밀리면 더 부담감이 커지고 그러면 더 무기력해지므로 아주 조금이라도 0.000001만이라도 하자. 그리고 예전보다 훨씬 힘을 빼고 일을 하는데도 타 부서 선생님(평소에는 사적인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사무적인 분인데 어제가 마지막 출근일이었다)이 나와 함께 일하는 동안 고마웠다고 했다. 친절하고 자료도 깔끔하고 제일 빨리 준다고 해서 놀랐다. 힘 더 빼고 일해도 되겠구나!! 완벽하게 하지 않더라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관계 패턴으로 대인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내가 상대방의 고민을 들어주고 보살펴줘서 나에게 의지하게 하는 관계를 많이 만들어왔다. 그러다 그게 버거우면 관계를 단절하고 그런 나를 배신자라고 생각했다. 타인과 시간을 함께 보낼 때 내가 어떤지는 잘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이 지금 기분이 어떤지를 엄청 살핀다. 관계는 쌍방이니까 내가 좋으면 상대방도 좋을 텐데.. 관계에서 나를 소외시키지 말기.    


  나는 힘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눈치를 살피고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어렵고 비난받을 까봐 너무 겁을 먹고 있다. 정답을 찾으려고 하거나 무난한 결정을 내린다. 그러니 내 색깔과 힘을 모를 수밖에..  남의 눈치를 계속 살피다 보니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엄마에게 의존해야 살 수 있었으니 현실적으로 유용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 이러한 방식은 내 삶을 아주 크게 제약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최예지 작가님처럼 자신만의 색깔과 속도로 살아가려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나의 삶을 살아가야겠지.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자. 그리고 책임을 지자.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내 주체성을 잃고 싶지 않다. 


  반듯한 외면과 어리고 보살핌 받고 싶은 내면의 차이가 너무 크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을 오랫동안 했지만 사실 내 안에는 두렵고 불안해서 벌벌 떠는 어린아이가 있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간절히 바라는. 그 아이를 이제는 돌봐줘야지. 오랜 시간 외면해 왔다. 직면하면 내가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서. 이제 더 이상 무너질 것도 없으니.. 그 누구보다 우선으로 잘 돌봐줄 거다. 하기 싫다고 하면 안 하고 놀고 싶다고 하면 놀고 쉬고 싶다고 하면 편하게 쉬어야지. 


  우울하다는 생각에 빠지지 말고 현재와 감각 집중하자. 날 보며 웃는 아들의 미소, 까르르 웃음소리, 초록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 고소한 커피 향, 부드러운 빵의 촉감, 나의 호흡 등. 생각에서 빠져나와 현재에 집중하면 우울함도 잊게 된다. 아주 잠시라도. 그 공백이 점점 더 길어질 수 있겠지. 명상이나 산책을 하면 당장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아도 환기가 되니까 꼭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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