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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인 Jul 20. 2023

오직 지금-여기뿐

게슈탈트 하일렌에서의 경험

  3번째 참여한 게슈탈트 상담 지도자 과정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나는 평안하다. 이전의 경험들도 모두 좋았었는데 그것을 붙잡고 놓고 싶지 않아서 다시 힘들어졌지만 이번에는 좋은 것을 붙잡으려 하지 않으니 평안함이 든다. 잘 쓰고 싶어서 결국에는 소감문을 쓰지 못했던 지난 집단과는 다르게 이렇게 소감문을 쓰고 있지만 순간순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올라와 머뭇거리는 나를 알아차린다. 

  게슈탈트 치료와 영성치료가 함께 접목되어 지금-여기에서의 알아차림이 훨씬 더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지금-여기의 현존이 이번 집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글로만 알던 존재와 현존을 여러 번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존재로 있는 시간(틈)이 정말 짧았다면 그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경험을 하였다. 

  계속되는 조울증 증상과 자기 비난으로 인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5년이었다. 내가 해볼 수 있는 모든 노력들을 하고 있지만 증상이 사라지지 않았고 그래서 많은 좌절을 했다. 그런 내게 조울증이 아니라 고통체 때문이라고 말해주신 분도 구가달님이었다. 그 뒤로 영성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존재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구가달님이 하시는 말이 거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철학, 성경, 불경 이야기들이 한 귀로 들어와 다른 귀로 나가는 정도였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다 흘러내려가는 것 같지만 콩나물이 자라듯 나도 조금씩 존재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는지 이번에는 구가달님의 설명이 좀 더 잘 들렸다. 

  개인시연을 계속 지원했지만 가위바위보도 사다리 타기도 모두 다 져서 하루 종일 못 나가게 된 것도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느라 내 욕구를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던 평소와는 다르게 집단에서는 계속 표현했고 그래도 괜찮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많은 응원을 받고 다음날 개인시연 가위바위보애서 이겼을 때 좋아서 팔짝팔짝 뛰고 집단원들과 하이파이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그렇게 좋아하면서 개인 시연을 시작했지만 다시 비난하는 목소리가 올라와 힘들었다. '장에서도 많이 이야기했으면서 이렇게 또 하고 싶냐. 뻔뻔하다.' 그러자 불안하고 몸이 작아지고 숨도 잘 쉬지 않게 되었다. 구가달님은 그 변화를 알아차리게 해 주시고는 내 눈을 바라보고 영성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구가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점점 지금-여기로 돌아올 수 있었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사라졌다. 이 과정을 내사되어 있는 비난하는 프로그램 대신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이렇듯 순간순간 깨어남의 경험을 이번 집단에서는 참 많이 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조별 시간에 이곳님의 상담자를 하면서 강력한 자책의 목소리에 붙잡혀 눈물이 터지자 수습이 되자 않았다. 결국 영님이 상담을 마무리하면서 정말 멋진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 만남에는 나의 역할도 컸다고 모든 조원이 말해주었지만 한번 시작된 자책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조원들과 산책도 했지만 작아진 나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저녁 장과 뒤풀이 장에서 얼어붙은 채로 있다가 잠을 푹 자고 나서야 내가 어제 자책에 빠져 현실과는 접촉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이번 집단이 끝나기 전에 자책에 빠지면 내가 어떻게 되는지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네 생각이 네가 아니다. 

 네 감정이 네가 아니다. 

 네 행동이 네가 아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도 이 말들을 계속 되뇌고 있다. 현실의 일들로 정신없이 습관처럼 흘러가려고 할 때, 지금-여기에 닻을 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주문 같다. 온몸의 감각과 마음을 활짝 열고 있으니 감사할 것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내가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의 문을 닫을 때는 아무것도 내게 닿을 수가 없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여기 현존하는 것뿐임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었다. 

 함께 웃고 울던 집단원들과 구가달님과 햇빛미소님과 영님의 얼굴이 한 명씩 떠오른다. 살뜰한 보살핌을 주셨던 사모님과 여사님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마음으로 느끼며 든든한 기분이 든다. 모두 감사합니다. 다시 하일렌에서 보기 전까지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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