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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인 Aug 13. 2023

금을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

  온라인으로 진행하던 인문학 독서모임 '삼천포 클럽'의 후속 모임이 오늘 있었다. 인터넷상으로만 만나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니 신기했다. 근래에 계속 우울했기 때문에 모임에 가지 말까 고민하다가 기운이 좀 올라와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다녀왔다. 결론적으로는 안 갔으면 어쩔뻔했나 싶게 좋았다. 

  자신에게 와닿는 문장이 있는 책을 선물로 가지고 와서 서로 나누었다. 내가 고른 문장이다. 

'내 삶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들, 내가 처리하고 상대해야 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 명료함을 가지는 것.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우리의 태도일 뿐이니까. (...)    결국은 '어떻게 그 태도를 바꿀 것인가' 하는 것.' 

                                                                                                 - 곽정은 <혼자여서 괜찮은 하루> 

  롤링페이퍼에서도 태도에 관한 글을 받았다. 

'삶에는 여러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걸 어떻게 바라보고 소화하는지가 나의 그릇을 키워주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분명 정인님 삶의 일들이 정인님을 더 크게 크게 만들어 줄거라 믿어요. 더 많은 것을 품고, 더 많이 행복할 거예요.' 


* 태도 (네이버 어학사전)

1. 몸의 동작이나 몸을 가누는 모양새

2.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를 대하는 마음가짐. 또는 그 마음가짐이 드러난 자세

3.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에 대해 취하는 입장 

* 마음가짐 (네이버 어학사전)

1. 마음의 자세 


  나는 조울증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었나. 도려내고 싶은 부분, 어떻게든 떨쳐내려고 하는데 거머리처럼 안 떨어지는 끔찍한 것, 이것만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불만이 가득하다. 심지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불만이 가득하다. 내가 선택해서 낳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육아만 아니면 내가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텐데. 육아를 하며 느끼는 행복감도 분명 매일 있지만 그것보다는 잃는 것에 시선을 더 많이 둔 것 같다. 조울증과 육아를 핑계로 상황에 대한 불만만 늘어놓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상황만 탓하며 불만에 가득 차서 살아갈 건가..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현재 나의 상황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질 것인가. 우울은 마음의 감기가 아니라 마음의 골절이라고 어떤 의사가 말했다고 한다. 나는 마음의 금을 어떻게 보듬고 살아갈 것인가. 금 간 곳이 깨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다시 붙을 수 있도록 충분히 쉬어줘야겠지. 금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내가 선물한 책은 박연준 시인의 <고요한 포옹>이었다. 

'끔찍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금 간 것을 계속 살피고 보호하려는 마음을 키우고 싶다. 어렵더라도.' 

'마음의 균열을 끌어안는 몸짓, 슬픔을 사랑으로 보듬는 날들.'

'당신이 오늘 우울하다면 이런 부탁을 하고 싶어요. 작아지세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고 작아져 사소함에 복무하세요. 우울할수록 스스로를 너그러이 봐주세요. 그날 하루 커피 한 잔 마시기, 깨끗이 얼굴 씻기, 공들여 한 끼 챙기기를 해내자고 자신을 설득하세요. 저는 삶이 어려울 때 연기를 합니다. 나는 우아하게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 역을 맡은 배우야. 그러니 창밖을 보자. 세상은 작고, 나는 그보다 더 작다. 설득하죠. (...) 저절로 움직이는 게 어려울 때마다 작은 것들을 연기하다 보면 그게 삶이 되고, 삶은 연기가 되죠. 멀리서 바라보며 재미있는 스토리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 이 삶을, 이 스토리를 거짓이라 말할 수 있나요. 가짜 삶? 아니요. 연두의 노력, 그뿐입니다.'

  금에 대한 박연준 시인의 태도가 좋아서 읽게 된 책이었다. 모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왜 이 책을 가져왔는지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금이 간 내 상태가 싫었다. 새로 태어나 리셋하고 싶고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금 간 곳을 보살피려 하지 않았다. 보호는커녕 방치하고 모질게 굴었다. 그러니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목이랑 허리가 아플 때도 기계처럼 새 목이랑 허리로 교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만 하지 내 몸을 돌보는 노력을 하지 않고 상황을 비관했다. 효율성과 쓸모 있음의 관점에서 보면 아픈 몸은 쓸모없고 교체해야 마땅한 골칫거리이다. 하지만 나는 기계가 아니라 몸을 바꿀 수도 없고 이미 금이 간 내 마음도 교체할 수가 없다. 오늘 모임에서 이 점이 선명해졌다. 상황을 바꿀 수 없으니 내 태도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우선 우울할 때는 한없이 작아져야겠다. 그리고는 사소한 일을 아주 천천히 해나가야지. 연기를 하는 게 가짜라고 느껴져서 하고 싶지 않았는데 박연준 작가님의 책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연두의 노력을 감히 누가 가짜라고 비난하겠나. 금 간 곳을 보살피며 작게 살아야지. 

  경조증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Keep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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