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정인 May 21. 2023

우울증이 힘든 나의 이유들

  5월 2일부터 축 가라앉은 기분으로 무기력 속에 잠겨있다가 요 며칠 조금 올라왔다. 우울할 때 글을 쓰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글을 써본 적이 거의 없다. 우울한 감정을 바라보고 어떤 생각들로 인해 우울해지는지 탐색해 볼 필요가 있는데 너무 싫으니까 피하고만 싶어서 드라마나 웹툰을 보거나 자면서 회피한다. 기운이 조금 난 지금이라도 지난 20일가량의 내 상태를 글로 쓰면서 객관화해보고 싶다.  

  아팠던 몸도 많이 회복되었고 근로자의 날에 남편도 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관 데이트를 나갔었다. 오랜만에 오붓하게 점심을 먹으며 남편의 중립적인 반응을 나는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 이유는 어린 시절에 경험한 부모님의 반응 때문이라는 말을 하니까 남편이 물었다. 

"자기는 어머니가 진심으로 사과하면 용서가 될 것 같아?" 

남편의 이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고 바로 든 생각은 '아, 내가 또 했던 얘기를 반복해서 남편이 듣기 싫었구나. 잘못했네.'였다.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방어적으로 바뀌면서 횡설수설하게 되었고 함께하는 시간 동안 남편 눈치를 계속 살피게 되었고 집으로 돌아오자 힘이 쭈욱 빠져버렸다. 

  다음 날 겨우 출근하고 수, 목요일은 연차를 내고 집에서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서 드라마를 보다가 졸리면 자고 다시 드라마를 보는 것을 하루 종일 했다.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화장실에 가지도 않았다. 우울해지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서 '혼자 집에서 누워있고 싶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이것만 간절히 원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실천을 해도 우울함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그런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자책을 하면서 더 우울해질 뿐이다. 그런데도 어렸을 때부터 힘들거나 아플 때 자리 펴고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습관화가 되어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햇빛 보며 걷기, 밥 잘 챙겨 먹기, 청결 유지하기 등 우울증을 완화하는데 좋은 행동을 하더라도 기분이 바로 반전되는 것은 아니므로 효과가 없다고 느껴진다. 산책을 하는 순간에 기분이 좋은 순간이 분명히 있긴 하지만 산책을 다녀왔다고 해서 우울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소용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좋았던 순간순간이 모여서 조금씩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할 텐데 벼락치기 스타일인 나에게는 '조금씩 꾸준히'가 참 어렵다. 경험해보지 않은 길이라서 결과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다.  

  힘들어서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그동안 무리했다는 뜻일 텐데 마음 편하게 쉬지 못하고 자꾸 자책을 하니까 쉬어도 회복이 더디다. '이 정도 쉬었으면 충분한 거 아니야? 언제까지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래? 힘들어도 할 건 해야지.' 이런 비난의 목소리가 24시간 내 속에서 메아리치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쉴 수가 없다. 이 목소리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세월을 거치면서 더 강력해졌다. 엄마는 떨어져 있는 시간이 있으니 피할 수 있는 구멍이 있었는데 내 안의 감독관은 항상 나와 함께하기 때문에 피할 곳이 없다. 

  우울한 모습의 내가 너무 싫기 때문에 오히려 더 처벌적으로 대한다. 평소에 좋아하는 것(산책,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시간 보내기, 독서, 글쓰기, 음악 감상, 마음이 통하는 이와의 대화 등)을 해도 좋은 것도 못 느끼니까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경조증일 때는 좋은 감각이 100만큼 느껴진다면 우울증일 때는 0.001만큼 느껴지니까 해도 소용없다고 느낀다. 약속도 다 취소하고 밥도 챙겨 먹지 않는다. 힘들고 지친 나를 따뜻한 아랫목으로 데려와 푹신한 이불도 깔아주고 밥도 챙겨줘야 할 텐데, 오히려 골방에 가둬버리고 '회복되기 전에는 나올 생각도 마!' 호통친다. 그러니 더 심연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내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보듬어줄 생각을 안 한다. '내가 이렇게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구나' 라며 이해해 줘야 보살핌으로 이어질 텐데 우울한 내가 싫으니까 자세히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해받기 어려운 행동은 있을 수 있지만 그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알게 되면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상황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우울해서 하게 되는 행동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부정적인 생각이 자동적으로 계속 올라와서 주의를 다른 곳에 돌리기가 어렵다. 의지로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라 단약 한 지 3개월 만에 다시 약을 복용하기로 했다. 

  우울해서 기운이 없는데 수행에 대한 기준은 계속 높아서 손도 못 대는 경우가 많다. 상황을 고려해서 펑크가 나지 않을 정도만이라도 완성하는 것이 필요한데 흑백논리로 인해 '완벽하게 할 거 아니면 하지도 마. 이 따위 완성도로 할 바엔 안 하는 게 낫지' 이런 생각들이 들어서 업무는 계속 쌓이고 그만큼 자책과 부담이 많아져서 더 힘든 상황이 된다.  


우울할 때 힘든 이유를 정리해 보면...

1. '조금씩, 꾸준히'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2.  내부 감독관이 비난하는 목소리가 너무 강해서 쉬어도 회복이 잘 안 된다. 

3.  우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싫어하면서 스스로를 방치한다. 

4.  우울한 내가 싫어서 처벌적으로 대한다.    

5.  나를 진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6. 부정적 사고가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7. 수행기준이 높고 흑백논리가 강해서 일을 미루기만 하다가 부담이 더욱 가중된다. 


  분노를 억압하면 무기력해지고 회피하면 경조증으로 간다고 상담선생님이 말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엄청난 분노 밑에 엄청난 불안이 있다고 하셨다. 내 안에 있는 분노와 불안을 온전히 마주하고 흘려보내야 된다는데 지금도 힘든데 그것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말씀드리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셨다. 


  내가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나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는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를 보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만큼 좌절도 많았다.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부분이 많았으므로. 나의 강점은 무엇이고 남들이 뭐라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 더 이상 남탓하고 싶지 않다.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인생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므로 나를 위한 선택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려면 나를 잘 알아야겠지. 나의 가치관, 신념,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장점과 단점 등. 우선 나 자신에게부터 솔직해야겠다. 나를 속이지 말자. 호기심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가 보자.       

작가의 이전글 다소 부끄러운 고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