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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인 Apr 14. 2023

다소 부끄러운 고백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

  4월에 호기롭게 밑미의 리추얼 두 개와 독서모임까지 시작했는데 엄청난 업무 로드와 함께 우울과 무기력의 늪에 빠져버렸다. 너무 막막해서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멍하게 있거나 화장실로 도망가서 웹툰을 봤다. 집에서는 잠만 잤다. 몸도 마음도 엉망인 2주였다. 웹툰과 잠은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서 내가 도망가는 곳이다. 재미있지 않아도 내 불안과 무기력을 잠시라도 잊게 해 주니까..

  웹툰을 볼 시간에 리추얼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는 나를 위한 시간을 허락해주지 않는 그런 이상한 심리가 있다. 죄책감이 든다. 킬링타임을 하며 도망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대놓고 딴짓을 하지는 못하겠다. 수업시간에 깜박 졸 수는 있지만 대놓고 엎드려 자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못했던 것과 같은 심정, 시험기간에 책상정리가 너무 재밌어서 몇 시간이고 하지만 대놓고 놀러 나갈 수는 없는 그런 심정(저만 이런 거 아니죠?ㅎㅎ).

  우울할수록 나를 잘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이렇게 도망만 다니는 무책임한 나를 좋게 대해줄 수가 없다.

  내면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멈추질 않으니 너무 괴로웠다. 다 망한 것 같았고 앞으로 벌어질 최악의 일들이 생각(회사에서 잘리거나 실망한 남편이 이혼을 하자고 하거나 아들에게 최악의 엄마가 되는 것 등) 나고 많은 일들을 벌여둔 3월의 나를 비난하면서 조롱했다.

  ‘경조증일 때 신나서 또 일을 잔뜩 벌려놨네.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할 거면서. 맡은 일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널 위한 시간을 갖겠다고? 욕심도 많다. 끈기도 없고 실천도 못 하면서.’

  그러면 더 무기력해지고 그럴수록 엄두가 나지 않아 일은 손도 대지 못하고 도망 다니고 또 비난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그래도 한 발짝씩 걸어서 겨우 데드라인에 맞춰 일을 마쳤다(완성도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런 무기력이 가장 심했던 때는 대학교 4학년 때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였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서 이별을 통보받은 것 같았고 사회에서도 나를 받아줄 것 같지 않아 졸업이 두려웠다. 중간고사 시험기간이었는데 2주를 칩거했다. 동생과 함께 자취했는데 낮에 학교에 다녀온 척을 하며 내가 어떤 상태인지는 숨겼다. 학교도 안 나오고 연락을 받지 않으니 친구들이 집에 찾아오기도 했었지만 몸이 아프다는 핑계 뒤에 숨었다. 낮에는 암막커튼을 쳐두고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쉴 새 없이 먹으며 미드를 봤다. 하루 이틀은 재밌기도 하고 쉬는 느낌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가 벌레같이 느껴지고 현실적 문제도 발생하고(출결, 성적) 세상은 더욱 나를 받아줄 것 같지 않고 무서워서 더 나갈 수 없었다. 불안해서 계속 먹고 뭔가를 보다가 지쳐서 잠들었다. 누가 보면 무위도식한다고 할 생활을 하지만 마음은 지옥인 그런 상태로 2주를 보내고 ‘이렇게 계속 살면 정말 큰 일 나겠다’ 싶은 생각이 들고서야 집 밖으로 나왔다. 단풍이 예뻤던 가로수의 나뭇잎이 다 떨어진 초겨울의 풍겨이 매우 생경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내가 멈춰있는 동안 자연은 세상은 시간은 성실하게도 흘렀구나 싶어서.

  그 뒤로는 취직을 하면서 그렇게 길게 칩거하는 일은 없었다(밥벌이는 소중하니까). 하지만 간혹 찾아오는 무기력한 날에는 아프다는 핑계로 연차를 썼다. 연차를 이틀을 낼 수는 없으니 몸을 이끌고 억지로 출근을 하면 그래도 환기가 되니까 또 지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양극성장애를 겪으며 우울증의 증상도 심해지고 기간이 길어지면서 하루 연차로는 어림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출근해서 인터넷 기사보고 월급 루팡하는 것을 꿈꾼 적도 있었는데 우울증 시기의 나는 루팡 그 자체다. 출근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게 있다가 데드라인이 오늘까지인 일만 겨우 해나고 퇴근하면 정말 너무너무 괴롭다. 내일은 좀 더 해보자고 다짐하며 잠들지만 아침에는 눈을 뜨고 싶지 않다. 한 시간 단위로도 휴가를 쓸 수가 있어서 최대한 누워있다가 10시에 출근하면서 아이 핑계를 대는 내 스스로가 쓰레기 같다. 보통 10시에 상담이 많은데 상담은 그래도 내담자와의 만남이니 최선을 다 해서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11시에 메일 확인한다며 30분을 보내고 화장실에 가서 20분 넘게 웹툰을 보다 나오면 점심시간이다. 교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평소에는 산책을 하지만) 컴컴한 상담실에 들어가서 30분을 자거나 웹툰을 보며 오후에는 일을 꼭 하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오후에도 막막하긴 마찬가지. 오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마음은 더 무겁다.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또 화장실에 가서 웹툰을 보다가 ‘이제 진짜 그만하자. 일 하자! 하면 된다!’ 하면서 자리에 와서 앉아도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시작조차 못 한다. 하나를 시작해도 변수가 생기거나 걸림돌이 생기면 그걸 해결하지 못하고 또 넘어진다. 그렇게 계속 도망가다가 넘어지다가 퇴근 시간이 얼마 안 남은 4시쯤에야 꾸역꾸역 데드라인인 일을 겨우 한다. 정말.. 글을 쓰면서도 그 심정이 느껴져서 괴롭다. ‘그렇게 괴로우면 하면 되잖아!!’ 이렇게 생각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그냥 하는 게 안 된다! 왜 안되는지 한번 적어봐야겠다.

- 업무가 쌓일수록 기한도 촉박해지므로 부담이 더욱 많아지니까 압도되어서 손도 못 데게 된다. -> 도망

- 다양한 일 중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할지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우울하고 자기 비난이 심한 상태라 스스로를 믿지 못하니까 결정을 못 하겠다. -> 도망

- 어렵지만 급하지 않은 일, 쉽지만 급한 일, 어려운데 급한 일, 쉽고 급하지 않은 일 등이 다 섞여서 엉켜있다. 특히 어려운데 급한 일은 보스몹이라 이 일만 생각하면 망하는 결과는 너무 당연해서 사직서를 내야하나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 도망

- 이미 늦은 시점이라 지금 타 부서에 전화해서 요청하는 게 민망하다(늦었다고 생각한 지금이 가장 빠른 때인데!!). 그러니 그냥 요청하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지 하면서 일이 더 엉키고 부담이 가중된다. -> 도망

- 모두가 이런 나에게 실망할 거라 생각하니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어서 혼자 끙끙대며 일은 떠안고 있다. 기한이 촉박해질수록 동료에게 일을 부탁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 도망


  적어보니 도망으로 끝나는 내 행동이 이해가 된다.  글을 쓰면 객관화가 된다는 것이 정말이다. 생각으로 할 때는 빙빙 돌다가 결국 자책으로 끝난다.


요즘이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의 이런 상태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1.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

  괴로운 심정을 공감해 주시면서도 가야 할 옳은 방향을 말해주신다.

  초기기억 속 3살짜리 아이가 내면에 있어서 힘든 상황이 올 때마다 누군가가 구원해 주기를 바라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떼쓰며 도망가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3살이면 그래도 되지만 성인인 지금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내면의 어린 자아를 달래가면서 현실의 일은 감당해야 한다. 한 발짝씩이라도 옳은 방향으로 걸어가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변화하고 나아질 수 있다. 100% 확신한다. 내가 살아보고 경험한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성취가 바로 보이지 않더라도 꾸준히 걸어가면 달라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다. 경조증 상태에나 가능한 성취를 하려다 안되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는데 그건 흑백논리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1이라도 하는 게 낫다. 0.001이라도 일단 시작해서 부담을 줄이고 천천히 조금씩 오랫동안 하면 된다. 한번 시작하면 리듬이 생기고 익숙해져서 또 빨라진다. 처음 배워나가는 사람처럼 자신에게 친절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줘라.


2. 상담선생님

  명상과 상담을 전공한 스님으로 신체에 각인된 불안과 부담이 크기 때문에 신경계의 문제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님을 알려주시고 내면의 존재(진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엄마가 쏟아낸 불안에 중독되어 있다. 망한다는 생각의 근원을 찾아가 보니 무책임하게 술만 마시고 가산을 탕진한 외할아버지의 인생이 있었다. 그런 외할아버지를 증오하며 의무와 책임을 다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살아온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내사되어서 스스로에게 가혹하게 군다. 어떤 상황에서든 책임만 강조하고 자신은 고려하지 않는다. 비난하는 목소리가 올라올 때마다 존재의 목소리룰 키워줘야 한다.

‘너 또 게으름 피우지. 그러다 망해’ ->

‘나 조금 쉬었다가 할 거야. 걱정 마. 이런다고 안 망해’

신체를 잘 돌보아야 한다.


3. 직장 선임 선생님

  나와 비슷한 성격이고 상담경력 20  선배로서 역할(doing) 하며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being) 살아가는 것을 실천하고 계시고 응원해 주신다. 실제업무를 이야기할  있는 소중한 선생님. 끙끙대다가 도저히 방법을 모르겠어서 여쭤보면 혼자서 센터장 역할부터 근장학생 역할까지  하려고 하니까 당연히 힘든  아니겠냐며 언제 이렇게 혼자 지고 있었냐고 하시며 일을 새로 분배해 주신다.

  불안해서 야근하고 속으로 울면서 일하고 잠깐 칭찬받았던 옛날보다 지금이 좋지 않나. 선생님이 일을 잘해서 좋은 게 아니다. 선생님 존재 자체가 주는 힘이 있다. 선생님이 출근한 날과 없는 날은 센터 분위기가 다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스스로는 생각하지만 우울한 와중에도 사람들 챙기고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다. 어마어마한 일을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모른다. 예전과 비교해서 지금 하는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청 애써서 꼼꼼하고 완벽하게 일하던 그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감독이 영화 다 찍어두고 자기는 한 게 없다고 말하는 꼴이다. 원래 감독은 화면에 안 나온다.

예전보다 박수받는 장면은 줄었지만 원래 책임지는 자리에 올라갈수록 박수받는 일은 줄고 전체를 관장하고 진행시켜서 다른 사람 박수받게 하는 일을 하는 거다. 불안하겠지만 지금을 느껴봐라. 존재가 피어날 수 있는 여백과 시간이 필요하다.


4. 남편

  다 망했다고 징징거리면 결국에는 잘하면서 또 그러냐며 위로해 준다.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 사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안심시켜 주고 들썩이는 내 옆에서 중심을 잡고 일상을 살아간다. 그의 일상력이 나에게는 구심점이 되어준다.


5. 원가족(엄마, 아빠, 동생들)

  다 못하겠다고 힘들다고 하면 지금 힘든 게 당연하고 지금까지도 잘해왔고 또 잘할 거라고 응원해 준다. 내 행복만 생각하라고 말해준다. (물론 엄마 아빠는 가시 돋친 말을 하실 때도 많다).


6. 친구들

  얼마나 더 큰 사람이 되려고 이렇게 힘들어하냐고 위로해 준다.

  충분히 잘해왔고 지금 시기가 아이도 어리고 일도 하느라 힘든  당연하다.  애면 삐뚤어지고 싶어도 부모가 사는  보면 그러기 힘들다고. 정말 대단하다고.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괜찮고 하이하면 하이한 대로 재밌고! 힘든  이야기  하고 친구들 얘기 들어주기만  때는 빚지는  같고 미안했는데 이렇게 이야기해 주니 의지가 되는 친구인  같아서 기쁘고 나만 힘든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니까 위로가 된다. 우리  괜찮다! 그냥 건강하게 살자! 나이 들면 자식들 독립시키고 남편도 떠나면 코하우징해서 같이 재밌게 살자.


  이렇게 적어보니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우울할 때는 모든 게 다 싫어서 핸드폰에 연락 오는 것도 싫고 누가 말 거는 것도 싫은데 결국은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다음 주까지 마감할 큰일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내일이 휴가여서 그런지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어떤 기록이든 남기고 싶어서 4월 중 처음으로 글을 썼다. 간단히만 남기고 자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너무 솔직하게 써버렸다. 지난 2주의 생활이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또 솔직하게 쓴 글을 지우지 않고 남기는 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기록해두고 싶은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나를 너무 게으르고 나약하고 우울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겁도 난다. 하지만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집중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없어지고 주체성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용기를 내기로 했다. 나의 이런 마음과 생각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부분으로 연결이 될지 궁금하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너무 대놓고 관심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 같아 쑥스럽다.. 그런데 뭐.. 이게 나지. 한 없이 우울해 물속에 가라앉았다가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하늘 끝까지 날아오를 것처럼 고양되었다가 추락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이런 나를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늘 궁금해하고 직접 물어보기도 하다가 타인의 시선보다는 나 자신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또 하는.. 그런 사람. (하핫)


댓글이 하나도 달리지 않더라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계속 글을 쓰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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