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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인 Dec 05. 2023

100 아니면 0 아닌가요?

100 아니면 0, 흑 아니면 백인 세상에서 탈출하기

흑백논리: 흑백논리는 모든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려 하는 편중된 사고방식을 뜻한다. 모든 것을 흑과 백, 선과 악, 득과 실, 아군과 적군, 옳고 그름 등의 양 극단으로 나누어 놓고,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고 간주하는 식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흑백논리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막상 흑백논리의 뜻을 찾아보니 내 이야기 같지가 않다. 그만큼 무의식의 영역에서 너무 당연하게 흑백논리에 젖어 있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오늘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많은 통찰을 얻었기에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내현적 자기애 내담자의 보고서를 쓰면서 작은 실수라도 두려워 회피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렇게 쓰기 힘들던 보고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칭찬받고 싶고 잘 못한 부분을 지적받고 싶지 않으니까 보고서를 작성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실수하면 안 돼. 잘못하면 안 돼. 칭찬받아야 해.'라는 생각이 너무 강해 무언갈 하기가 아주 힘들다.  <나는 왜 자꾸 내 탓을 할까>의 저자 허규형 의사 선생님의 북콘서트를 듣는데 나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이야기를 만났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100점은 아니고 80 정도 하는 거고 아무리 망해도 0점이 아니라 40-50점 받는다고 생각하면 불안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이런 맥락의 말이었다. 나는 엄청 완벽하게 준비해서 100점을 받고 싶었기에 계속 미루고 회피하다가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면 다 망해서 0점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며 좌절했었다. 100점을 받으려고 하면 일이 너무 무겁고 부담이 커져서 미루게 되고 시간이 촉박해서 급하게 완성하면 '시간이 부족해서 그렇지, 다음에 급하게 하지 않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거야'라며 나를 달랬다. 사실 시간을 많이 들여서 하더라도 잘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계속 미뤄왔던 것도 있다. 

  나는 왜 이렇게  100점에 매달리는 것일까? 초등학교 2학년 때 올백을 받은 적이 있다. 빨간 색연필로 크고 굵게 적혀있던 100점짜리 시험지 여러 장. 엄마는 너무너무 좋아하셨고 반 아이들을 거의 다 초대해서 성대한 파티를 열어주셨다. 엄마가 손수 차려주신 맛있는 간식들, 친구들의 축하, 활짝 웃던 엄마, 단 하나의 걱정도 없이 행복하기만 했던 그 순간의 장면이 그림처럼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날은 나에게 완벽했다. 90점을 받아가도 잘했다는 말보다는 틀린 문제를 실수로 틀렸는지 몰라서 틀렸는지를 확인하던 엄마에게 마음껏 원 없이 칭찬받은 날이었다. 완벽한 100점.

  사실 100점은 실력뿐만 아니라 운도 어느 정도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내가 아무리 공부해도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안 되니까, 그리고 찍어서 맞추는 정답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날의 강력했던 올백의 기억은 나에게 100점에 대한 집착을 안겨줬다. 95점을 받으려고 하는 것과 100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의 마음의 부담 차이는 5점이 아니라 천지차이다. 완벽이라는 것은 정말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면 안 되는 것이니까 그 생각만으로 이미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부담감에 짓눌려버린다. 

  나에게 경조증과 우울증도 100점과 0점이다. 나는 경조증일 때를 일도 잘하고 관계도 잘하고 즐겁고 에너지 가득한 100점이라고 생각하고 우울증은 일도 관계도 잘 못 하고 에너지도 없는 0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경조증으로 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막상 주변의 사람들은 경조증 없이 그렇다고 무기력하지도 않고 조금 낮은 에너지 상태인 요즘의 나를 보며 편안하고 안정되어 보이고 좋다고 말한다. 일도 관계도 내 기준과 생각 속에서 0점인 것이지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음을 요즘 계속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우울하면 '어차피 망한 거 아무것도 안 할 거다!' 이런 마음에 계속 미루다가 경조증 시기에 몰아서 하고는 했었는데 경조증이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으니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 우울하고 무기력해도 조금이라도 일을 해서 일상을 살아가는데 이게 참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무기력해도 할 일을 하면서 일상을 유지해 나가는 것.  할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이니 기운이 나고 일상을 잘 영위했다는 뿌듯함에 활력이 생기고 하루를 잘 살았다는 느낌을 가지기에 덜 불안하다. 

  유독 뿌듯함이 큰 날에는 기분이 좋아서 다시 잠이 안 올 때가 있다. 이때 자지 않고 밤을 새우면 경조증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안다. 예전에는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일부러 수면제를 먹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다. 하지만 요즘은 12시가 지나면 수면제를 먹고 잠을 청한다. 다음 날 아침, 기운 없고 계속 더 자고 싶은 기분을 느끼면 씁쓸하다. 몸에서 활기가 돌고 에너지 넘치는 어제의 밤이 그립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조증은 불꽃놀이 같은 것임을 안다. 그런 좋은 시기는 아주 잠깐일 뿐이고 그 뒤는 몸이 안 따라주어서 일상생활이 모두 엉망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경조증을 100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지금은 그런데 또 무의식 중에 습관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알아차리고 돌아오면 된다. 무의식 중에 행하던 것을 알아차리고 멈추고 나에게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이 상담의 목적이고 이를 통해 사람은 변하게 된다. 이렇게 통찰과 자각을 많이 한 상담 회기를 정리하고 글로 써두는 것은 다음에 다시 읽어보고 자각을 하기 위해서이다. 습관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를 예전으로 자주 아주 빨리 돌려놓으니까. 

  나는 관계에서도 0과 100이었던 것 같다. 정말 단절되거나 아니면 한 마음이라고 느끼거나. 그러니 작은 거절에도 민감했고 소외감도 많이 느꼈다. 관계, 일, 자기 개념, 정서 등 많은 부분에서 흑백논리가 심했음을 오늘 알아차렸다. 

  0과 100만 있는 세상이 아닌 15도 있고 73도 있고 다양한 숫자가 가득한 세상에 살고 싶다. 흑과 백만 있는 세상 말고 다양한 색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싶다.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존중하듯이 나의 다양한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싶다. 분절이 아닌 연결과 연속성의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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