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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기 Feb 12. 2017

(진로)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여고생의 실수에서 비롯된 진로

(진로)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이쁘지는 않지만 순수하고 귀여운 여고생이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그녀는 수학여행에서 갈 여비를 구하기 위해서 부업을 해야 했다. 편의점에서 일할까 아니면 모닝콜을 할까? 시간당 버는 수입은 같았지만, 일의 강도면에서는 모닝콜이 훨씬 편했다. 정해진 시간에 남자 고객에게 전화해서 앳된 여자 목소리로 아침을 깨우는 일이다. 


비도 불행(非道不行),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뜻이다. 공자의 <효경(孝經)>에 나오는 말이다. 여고생이 모닝콜 알바를 하는 것은 길이 아닌가? 어떻게 알지? 돈만 벌면 되지, 다칠 것은 없다. 모닝콜과 편의점 일은 같은 일이다. 그럴까?


시간을 훌쩍 넘겨서 5년을 추가해버리자. 소녀는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에 다니기 시작하니까 학비에서부터 생활비가 더 들어가고, 게다가 화장품, 옷 그리고 방학 때 성형수술도 하고 싶어 졌다. 그녀는 지금 오피스텔을 정해서 고객을 직접 받고 있다. 직업이 돼버린 것이다. 모닝콜의 경험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돼버린 것이다. 이성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세계.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게 된 그녀는 이제 다른 일을 하기 힘들어졌다. 


세상에는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 가지 말았어야 할 장소,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있다. 바둑을 둘 때, 두지 말아야 할 위치가 있는데, 그곳에 돌을 내려놓는 순간, 빼도 박도 못하는 정해진 행선지를 따라서 가야 한다. 인생길에서 진로란, 공평하고 무차별적이지 않다. 분명 그 안에는 구조가 있다. 최초의 선택은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손재주가 좋았던 김군은 중학교 졸업 후 집안 사정으로 공장에 나가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자물쇠를 쉽게 따는 신공을 동료들에게 보여주었다. 자물쇠 따는 기술로 간단한 수고비를 받다가, 더 큰 제안을 듣게 되었다. 밤에 남의 사무실에 들어가서 자물쇠를 풀어놓고 오면 한 달치 공장 봉급에 해당하는 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선택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나이 오십이 된 그는 특별한 직업이 없이 전문털이범으로 전과를 쌓으면서 살게 되었다. 


길이 아닌 것을 어떻게 처음부터 알 수 있을까?


그 남자와, 그 여자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불행한 결혼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 사람을 어떻게 첫 데이트에서 알 수 있을까?


이주공사에 2천5백만 원 알선료를 내면, 밴쿠버의 한인 식당에 요리사로 취업시켜주고, 노동비자를 받게 해 주고, 일 년 뒤는 영주권 신청도 도와주겠다는 말을 듣고, 컬리지 유학을 가려던 김 씨는 방향 선회를 해서 한인 식당에 취업했다. 관광비자로 입국해서 일하면 반년 내로 노동비자를 받게 해주겠다던 알선자의 말은 지켜지지 않았고, 본의 아니게 불법체류자가 되고 말았다. 그 사이 선불 천만 원을 이미 날려버렸다. 다시 다른 변호사를 통해서 간신히 노동비자를 취득했지만, 본인의 신분을 악용해서 초과노동, 임금체불을 하는 한인 주인에게 따질 수 없었다. 그의 노동비자는 이직이 금지되어 있었고, 주인이 영주권 신청할 때 재직증명서를 작성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인 눈치를 보면서 살아했던 세월이 3년이 흘렀다. 한국서 대기업에 다니면서 전문직으로 살았던 김씨가 캐나다 와서 3년간 한국어만 사용하는 주방에서 한인들과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면서 그가 가진 캐나다에 대한 소감은 어떠할까? 


김씨가 캐나다 컬리지를 갔더라면, 도착일부터 대학에서 현지일 교수와 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영어도 늘고, 기술도 익혀서 졸업하고 전문직 취업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 씨는 캐나다 도착해서 누구를 만났고, 어디서, 무슨 일을 했던 것인가? 그가 컬리지 유학을 접고, 한인식당 주방일을 잡았을 때, 그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간 것일까? 아니면 영주권이라는 목표를 놓고 모로 가던, 도로 가던 서울만 가면 되는 무차별적인 이정표였을까? 


여고생이 돈이 필요해서 할 수 있는 알바에 불과한 것일까? 돈이라는 목표만 달성하면 수단으로써의 일과, 일로 만나는 사람들, 일하는 장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일까?


가지 말아야 할 길은 알고 있는 것보다 심각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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