孤身隻影碧山中 | 고신척영벽산중
연희의 아들 수연은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을 전전하다 자원해서 해병대에 다녀온 뒤 여자를 만나서 곧바로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 즉 연희의 손자 이름은 연준.
그리고 나서 1년여가 흐른 뒤 수연은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며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늦게 수연은 술이 약간 취한 채 집에 들어왔다.
“야, 신가 그 새× 돈 좀 있다고 좀 나아 보이냐? 응? 그놈이 그렇게 좋아?”
수연은 쪽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방에는 들어가지 않고 불 켜진 부엌을 향해 소리 질렀다.
방 옆에 붙어 있는 부엌에서 쨍그랑하고 그릇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살림까지 부수는구나. 그래, 다 깨뜨려라! 죄다 깨버려!”
“수연아, 그만하고 들어가!”
연희가 손자 연준을 포대기로 업은 채 작은 방에서 뛰쳐나왔다.
“제발, 수연아, 제발 그만해라. 그만해.”
수연은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노려보다가 웬일인지 거기에서 멈추고 방으로 들어갔다.
연희는 의아하기도 했지만 어떻든 다행이다 싶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등에 업은 손자를 손으로 토닥토닥하고 달래면서 부엌으로 다시 들어갔다. 등에 업은 손자는 아들 수연이 소리칠 때부터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연희는 아들에게 하는 것인지 손자에게 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좁은 부엌 안을 서성였다. 아들이 며느리에게 행패를 부릴 때마다 연희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착하고 얌전해서 말도 별로 없는 며느리. 이름은 정미다.
수연이 군에서 제대하고 여기저기 떠돌다 어디서 만났는지 어느 날 정미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때는 몰랐는데 두어 달이 지나면서 정미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연희는 정미에게는 힘든 일을 조금도 시키지 않고 자신이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때마다 정미는 달려나와서 시어머니를 말리며 자신이 하겠다고 말을 했다.
“괜찮아. 몸이나 잘 추슬러.”
아리아리하게 가는 몸에 얼굴이 창백한 정미는 입덧도 심하게 하고 조금만 무리를 하면 머리가 어찔어찔하다며 그 자리에 주저앉곤 했다.
연희는 정미가 부모형제 없이 떠돌다 아들 수연을 만난 것을 알고는 며느리를 극진히도 아꼈다. 정미가 힘들어하는 것을 볼 때마다 연희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며칠 뒤 해가 지기도 전에 수연이 집에 돌아왔다. 웬만해서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수연은 들어오는 순간부터 다른 때와는 완연히 달랐다. 아무리 행패를 부리는 날이라도 찌그러진 양철로 된 대문을 발로 차고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야, 이리 나와! 나오란 말야!”
어디에서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수연은 시뻘겋다 못해 푸른 기가 도는 얼굴로 집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는 곧바로 부엌 옆의 큰방으로 가서 방문을 벌컥 열었다.
방 안에서 하청받아 온 봉제인형을 꿰매고 있던 아내 정미는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고 방 한쪽 구석으로 몸을 피하고 있는 중이었다.
“너 오늘 죽는 날이다.”
수연은 구두도 벗지 않은 채 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부엌에서 연준을 업고 저녁을 준비하던 연희는 깜짝 놀라 달려나왔다.
“아니, 얘, 얘야…….”
그러나 수연은 어머니 쪽은 돌아다보지도 않고 방구석으로 피하는 아내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 기세에 놀라 정미가 몸을 웅크린다.
그러나 수연은 곧장 정미 쪽으로 가서 발로 힘껏 걷어찼다.
비명소리.
정미가 배를 움켜쥐고 뒹군다.
그러나 수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 발로 찼다.
그리고 또다시 발길질.
비명. 비명.
다시 발길질.
자지러지는 정미.
연희는 울음을 터뜨리는 손자를 업은 채 방으로 뒤쫓아 들어가서 아들의 몸을 붙잡았다.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연이 또다시 정미를 발로 찼다.
정미가 배를 끌어안으며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소리 지른다. 평소 전혀 대꾸하지 않고 울기만 하던 그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차라리 죽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친다. 이제는 지긋지긋하다며 대들었다.
“이게 대들어? 뭘 잘했다고!”
“죽여, 죽여! 죽이라고!”
“이걸 그냥…….”
수연은 주먹을 치켜들었다. 정미가 얼굴을 가린다.
연희가 수연의 허리를 끌어안고 잡아당겼다. 그러나 수연이 어머니의 손을 풀고 뒤로 밀쳤다.
꽈당탕!
연희가 뒤로 쓰러지면서 봉제인형 부품 속으로 나동그라졌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
“어머니한테 왜 그러는 거야? 애도 안 보여? 애 죽일 거야? 차라리 나를 죽이란 말야! 죽여! 죽이라고!”
“너……, 너 정말 죽인다!”
수연은 뒤돌아서서 바닥에 떨어진 기다란 가위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정미에게 다가간다.
“안 돼! 수연아! 안 돼! 그러면 안 돼…….”
“그래, 죽여라, 죽여, 이 악당아!”
수연은 가위를 치켜들었다.
연희는 엉금엉금 기어서 아들에게 갔다. 다리를 붙들었다.
수연은 다리를 흔들더니 어머니를 뒤로 발로 찼다. 다시 나가떨어지는 연희. 숨넘어가듯이 울어대는 아기.
“내 아기……. 이 악당아, 애기 죽는단 말야!”
“너나 죽어랏!”
수연은 치켜들었던 기다란 가위를 내리꽂았다. 정미의 가녀린 어깨를 향해.
정미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어깨에 꽂힌 가위 주변으로 시뻘건 피가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한다.
연희는 소스라치게 우는 아기를 업은 채 엉금엉금 기어서 정미에게 다가갔다.
정미는 한 손으로 어깨를 짚은 채 말도 잘 나오지 않는지 입만 벌린 채 헉헉거리고 있었다. 숨이 거칠었다. 얼굴색이 시퍼렇게 변해 가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얘야, 얘야, 숨 좀 쉬어! 숨 쉬어!”
연희는 뒤돌아보았다. 아들에게 정미를 병원에 데려가라고 하려고.
그러나 수연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방에서 뛰쳐나가 버렸다.
연희는 기다시피 밖에 나가 소리를 질렀다.
“수연아, 수연아, 정미……, 정미가 죽어! 죽는단 말야!”
하지만 수연은 자기가 발로 차서 덜렁덜렁 떨어져 나갈 듯한 양철 대문을 우악스럽게 붙잡고 밀어젖히면서 집 밖으로 달려나갔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연희는 옆집에다 대고 소리질렀다. 필사적으로.
그 소리에 옆집 사는 총각이 달려왔다.
연희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방 안을 손으로 가리켰다.
총각이 안으로 들어가서 정미를 업고 나와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정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리고 수연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고, 물론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세월이 20여 년 흐른 뒤, 행방불명된 수연의 아들 연준은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처럼 자원해서 군대에 다녀왔다.
연준은 그 뒤 조그만 회사에 다니다 모험을 해보자 하고 일찌감치 의류도매상을 차려 독립했는데 이것이 제법 커져서 조그마한 회사가 되었다. 공장은 없이 동남아 업체에 하청을 주어 물품을 공급받는 OEM(주문자생산) 방식으로 의류를 생산했다.
이제 연준의 나이 40대 초반. 할머니 연희의 나이는 80대 중반.
강연준 사장.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할머니와 둘이서 산다.
할머니는 강원도 고성이 고향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곳에 친척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육이오 때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인민군이 도망가면서 마을사람들을 학살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이상은 고향에 대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곳에 가면 남아 있는 친척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할머니.”
연준이 고성에 함께 가보자고 여러 번 말했지만 할머니는 계속 싫다고 했다. 혹시 그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찾아보면 친척들이 있을지 모르지 않느냐고 손자가 설득했지만 할머니는 한사코 응하지 않았다.
“아니다. 가볼 필요 없어. 가봐야 마음만 고생한다.”
“할머니, 저 혼자라도 가볼까요?”
할머니는 이 말에 펄쩍 뛰었다.
“안 돼!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 말아라. 절대 안 된다.”
할머니가 이렇게 과하게 반응하는 것을 연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만 자란 연준은 할머니 말에는 무조건 따라주고 있었다. 할머니는 고성 이야기 말고는 한번도 연준을 나무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얘기 해주세요.”
그러나 할머니는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언젠가 할아버지도 전쟁 중에 돌아가셨다고 말을 해서 그렇게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군인으로 죽었는지 민간인으로 죽었는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할머니가 아들 수연을 낳았을 때 나이는 17살. 1951년, 육이오가 한창 진행되던 중이었다. 그 아이가 자라서 20대 중반에 연준을 낳은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버지에 대해서도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빠 어디 갔어요? 언제 와요?”
어렸을 때부터 연준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며 자주 졸랐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말없이 그저 연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럴 때의 할머니 눈은 늘 연준의 마음에 왠지 모를 아픔을 주었다.
연준이 또 하나 의아한 것은 할아버지 사진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친척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없었다. 할머니는 육이오 때 다 없어졌다고만 말했다. 그 외에는 어떠한 말도 해주지 않았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것도 거의 말해 주지 않았다. 아버지 쪽은 고성에서 모두 죽었다고 했지만, 어머니 쪽 외가에 대한 말은 더 간단했다.
“네 어머니도 이북에서 내려와 친척이 전혀 없단다.”
이 말 하나로 모든 것이 덮어졌다.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고향이 이북이라는 것 외에는 할머니는 거의 알려주지 않았다. 따라서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연준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호적상에는 할아버지가 1950년에 실종된 것으로 나와 있다. 지금부터 70년 전에. 연준은 그 이상 더는 알지 못한다.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아도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져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고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연준에게 모든 것이었다.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라 할머니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배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할머니가 특별히 만든 영양죽을 갖다주고, 회사에 나갈 때는 양복에서부터 와이셔츠, 넥타이, 양말, 손수건 모두를 준비해 주었다.
“요즘 사람 손수건 안 써요.”
“그래도 남자는 손수건 하나쯤은 있어야 돼. 그래야 신사지.”
“할머니, 나 신사 아니에요, 노총각이지.”
“노총각이 구질구질하면 부모 욕 먹여.”
“나 부모 없는데. 할머니밖에.”
“어여 나가라. 늦겠다.”
집을 나설 때는 현관까지 따라나와 소지품이나 서류 잘 챙겼는지 물어보고, 퇴근해서 들어오면 옷을 받아 걸고 맛 나는 반찬으로 식사를 차려주었다. 식사 뒤에도 배가 출출할 시간에 맞춰 연준 입에 착 달라붙는 마실 것 먹을 것을 늘 준비해서 갖다주고.
“장가를 빨리 가야지. 그래야 내가 손을 놓는데…….”
할머니는 이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연준은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손자며느리가 들어와도 아마 할머니가 다 챙겨주려 할 것이다.
연준은 집에 돌아올 때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할머니에게 드릴 것들을 가지고 왔다. 과자, 사탕, 빵 같은 것들뿐만 아니라 할머니가 예뻐할 만한 자질구레한 노리갯감들을 주머니에 넣고 와서는 늘 깜짝쇼 벌이듯 짠 하고 꺼내어 할머니에게 보여주고 손에 쥐어드렸다.
그럴 때마다 변함없이 깜짝 놀라며 웃고 행복해하는 할머니.
할머니의 뺨은 수줍은 소녀처럼 발그레해진다.
어느 날 연준이 집에 돌아와 보니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평소 다른 사람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는 분이라 누구하고 이야기 나누려고 나간 것은 아닐 터였다.
연준은 할머니에게 드리려고 사온 단팥빵 봉지를 멍하니 바라보며 어디다 놔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이상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어색했다. 연준이 들어오면 양복도 받아주고, 연준이 내미는 크고 작은 것들을 받으면서 한 번도 빠짐없이 짐짓 놀라주던 할머니인데…….
연준은 옷도 벗지 못하고 빵 봉지도 내려놓지 못한 채 방 안을 서성였다.
갑자기 사람 사는 집 같지 않게 휑하게 변한 집.
연준은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혹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연준은 할머니 방 문을 살며시 밀어 열어보았다.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텅 비었다. 혹시나 해서 장을 열어보았다. 아무것도, 아니 아무도 없었다.
연준은 집 안 구석구석을 다 확인해 보았다.
역시 할머니는 아무 데서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외출한다는 쪽지라도 있는지 살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제서야 연준은 핸드폰을 꺼내어 할머니 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받지 않았다.
여러 번 전화를 해보았다. 역시 받지 않았다. 음성메시지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다시 전화를 해서 혹 집 안에서 전화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여도 보았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겁이 났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 것이다.
할머니가 혹 산책 나가셨나 하고 밖에 나가 살펴보았다. 할머니와 연준이 가끔 함께 걸었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한번 집 안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어떤 단서라도 있을까 해서.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사실은 연준 자신도 무엇을 찾는지 몰랐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을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할머니 옷.
집에서 늘 입고 있던 옷이 옷장에 잘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 대신 봄 외출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가끔 쓰시던 큼직한 가방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신발장을 열어보았다. 할머니는 신이 몇 켤레 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연준이 사다 드린, 발이 편하다는 운동화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멀리 가신 것일까? 이 밤에?
연준은 초조하게 집 안을 서성거렸다.
밤 11시가 넘었다.
안 되겠다 싶어 연준은 경찰에 전화했다.
그 뒤 며칠 동안 연준은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일도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집에 와도 휑뎅그렁한 것이 마치 수십 년이나 된 폐가 같은 느낌이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그러나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오지는 않았다. 집에 들어가면 할머니가 저녁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는 혹 무엇인가 빠진 게 있나 몇 번씩 살펴보고 나갔어도 회사에 가서 무언가 필요해서 주머니를 뒤져보면 어떤 것 하나라도 꼭 집에 놓고 온 것이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도 넘게 할머니에게 전화해 보고, 그것도 모자라 틈틈이 경찰에 전화해서 읍소하다시피 부탁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할머니 소식을 얻을 수 없었다.
사립탐정 같은 곳에 부탁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며칠만 더 기다려 보자 하고 참았다.
할머니가 실종된 지 닷새 되는 날 연준이 사무실에 나가 있는데 경찰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것도 강원도 고성경찰서에서.
“강연준 씨 되시나요?”
“그렇습니다만…….”
“저희가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있는데, 이 번호가 손자분 것이라고 하는군요.”
“예, 맞습니다. 제 할머니 찾으셨나요?”
“지금 여기 계십니다. 그런데…….”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고 경찰은 말한다.
연준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그러나 경찰에서는 자신들도 판단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으니 빨리 와달라고 하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다고……?
연준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길로 연준은 고성으로 달려갔다.
연준이 고성경찰서에서 할머니를 만났을 때 그 옆에는 100살은 되었을 법한 웬 노인이 앉아 있었다. 완전 백발에 온화한 얼굴을 한 할아버지.
연준을 보고 그 할아버지는 일어섰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한없이 깊어 보이는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그러더니 눈가가 젖는 것 같았다.
연준은 당황스러웠다.
눈을 돌려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앉은 채로 눈을 들어 연준을 마주보았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로. 그러나 그 얼굴은 여태까지 본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전혀 새로운 모습. 그러나 어딘지 평온한 얼굴이었다.
“할머니…….”
할머니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서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보낸다. 그리고 눈에는 눈물이 도는 것 같았다.
경찰이 연준에게 다가와 잠깐 말을 나누자고 한다.
연준은 머리가 혼란스러운 채 경찰을 따라갔다.
“우선 앉으시지요.”
경찰이 의자를 권한다.
“저분 누굽니까? 그리고 제 할머니를 어디에서 찾았습니까?”
“저희도 지금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슨 일……?”
“저 할머니가 신고하셨습니다.”
“신고……?”
연준은 머리가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
“저 두 분이 워낙 연세가 많으셔서……, 하시는 말씀들을 저희가 다 믿기 어렵습니다. 다만…….”
“무슨 말씀이신지……?”
“저 할아버지가 집단학살을 저질렀다는군요.”
“…….”
연준은 말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경찰을 바라보기만 했다.
“혹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1970년대 초에 이곳 고성 부근 한 동굴에서 집단학살당한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30구가 넘는 시신이었는데, 육이오 때 집단학살된 것으로 여겨졌죠. 그런데 저 할아버지가 바로 그 일을 저지른 장본인이라고 신고한 겁니다. 할머니께서.”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리고 제 할머니하고 그 일이 무슨 관련이 있어서……?”
“우리도 혼란스럽습니다. 아무튼 저 할아버지 말에 의하면…….”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