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산을 헤매는구나

by Rud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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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수. 함경남도 함흥에서 큰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 가서 가네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해에 광복이 되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으나 은수는 등록하지 않고 방황하다가 11월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은수는 그 다음 해에 신의주로 가서 한 사범대 영문과에 편입했고, 그리고 졸업하자마자 군에 징집되어 장교로 임관됐으며, 육이오 직전 소좌로 진급하여 동부사령부에 배속되었다. 육이오가 발발하고 나서 미군의 인천상륙 이후 국방군이 한반도 전선 곳곳에서 진격해 올라오자 은수의 부대는 상부에서 명령받은 대로 고성 주민들을 묶어서 북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은수는 그들을 곧바로 처형하지는 않고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행군했다. 그때 옆에 있었던 정치보위부 부관은 계속 은수를 압박했다. 명령대로 하지 않으면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은수는 평소부터 친근한 관계를 맺고 있던 한 부하에게 반역에 해당하는 명령을 한 뒤 보위부 부관을 데리고 숲으로 들어갔다.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나 좀 하자고 하면서. 그 사이에 부하에게는 마을주민들 일부를 적당히 풀어주고 도망치도록 하게 한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부관은 길길이 뛰면서 명령불복종으로 은수를 처형하겠다고 위협했다.

은수는 하는 수 없이 부하들에게 남아 있는 30여 명 되는 주민들을 동굴 속으로 몰아넣으라고 했다.

그러자 부관이 나서며 자신이 직접 처형하겠다고 말했다.

은수는 대꾸하지 않고 딴 곳을 쳐다보기만 했다.

부관은 병사 몇 명을 데리고 동굴로 들어갔다.

요란한 따발총 소리.

은수는 머리로 피가 솟구쳤다.

또다시 은수는 부관을 따로 불러 숲속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권총을 꺼내어 부관을 쏘았다. 그 뒤 은수는 곧바로 부대를 이탈했다. 그리고는 동해안 숲을 따라 북쪽으로 가서 원산 외곽을 거쳐 고향 함흥 바로 아래쪽에 있는 흥남까지 갔다. 처음에는 고향으로 가서 어떻게 해서든지 가족을 데리고 남으로 탈출할 생각이었다. 미군이 그곳으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면 기회가 생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함경도 일대에서 중학교 학생들을 포함해서 젊은 사람들을 마구 징집한다는 소문을 듣고 집에는 가지 않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연합군이 압록강 근처까지 올라갔지만 은수는 그에 대해서 듣지 못하고 숨어 있었다. 그러나 유엔군이 퇴각하면서 함께 피난 간다는 사람들 소문을 듣고는 산에서 나왔다. 그리고 피난민들 틈에 섞여 들어가서 흥남으로 갔다. 그렇게 해서 흥남에서 철수하는 미국의 마지막 화물선인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간신히 올라타고 부산으로 갈 수 있었다.

은수는 부산에 도착해서 배에서 내리다가 미군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젊은 남자에다가 농사꾼이나 막일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고 가족도 없이 혼자였기 때문에 의심을 받은 것이다. 머리는 제법 길어서 군인 티는 나지 않았지만 어딘지 주변을 경계하는 빛이 완연한 모습이었다. 은수는 미군부대로 끌려가 심문받았다. 하지만 인민군 탈영병이라는 사실은 숨긴 채, 일본에 유학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대학에 들어갔으나 지주의 자식이라고 핍박받아 육이오 전에 산으로 도망쳐서 숨어지내다가 이번에 남쪽으로 탈출해서 내려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신원을 보증해 줄 만한 근거가 없어서 일본 유학시절의 동문과 은사들, 하숙집 등을 알려주며 확인해 보라고 했다. 미군은 일본에 있는 연합군 사령부에 그 사실을 알려 확인해 보도록 요청했다. 그러한 중에 미군의 한 가톨릭 군종장교가 은수의 유창한 영어실력과 깔끔한 외모를 관심 있게 보고 그를 자신의 사무실로 자주 데리고 가서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다.

은수는 군종장교에게 자신은 한국에 남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가능하다면 그를 따라 미국에 가서 자신도 신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저는 이곳 남한 땅에는 일가친척이 없습니다. 고향에 있는 가족은 모두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이제 이곳에서 저는 희망이 없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할 때 미국인 신부를 만나 대화를 몇 번 나눈 적이 있습니다.”

군종신부는 호기심 있는 눈으로 은수를 바라보았다.

“그때부터 늘 신부의 길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미국에 데려다주실 수 있을까요? 신학교에 가고 싶습니다.”

은수를 신뢰하고 있던 군종신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내가 도와주겠소. 교회에 연락해서 길을 만들어 볼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은수는 신부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은수가 저지른 일, 양민들을 학살한 것, 한 소녀를 버린 것, 그 일들이 늘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을 고백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속죄의 길을 가자고 생각한 것이다.

신부는 은수가 공산당 치하에서 핍박받고 탈출해 온 피난민이라고 상부를 설득해서, 은수를 데리고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갔다. 은수의 신원이 일본의 대학을 통해 확인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미국에 도착해서 군종신부의 도움으로 은수는 얼마 뒤 신학교에 들어가 신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은수는 신부가 되고 미국으로 귀화한 뒤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평생을 머물며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피했다. 가능한 한 한국인들은 만나지 않았고, 신문을 비롯한 언론도 피했다. 은수는 신부로서 은퇴한 뒤에도 계속 수도원에 머물렀다.

은수는 90세 후반이 되었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삶 동안 한국에 가서 해야 할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무엇보다도 아직도 그때의 장면이 생생한 그 옛날의 동굴, 자신의 명령에 의해 총살된 주민들. 그 동굴에 찾아가서 사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단 하루도 잊지 않고 있었던 그 소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꽃같이 아름다웠던 그 아이의 이름도 불러보고 싶었다. 그에게도 사죄하고 싶었다.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은수가 한국을 방문한다는 기사가 한국의 가톨릭 교계 신문에 났다. 미국명 토머스 강. 한국 출신 90대 후반의 신부가 70년 만에 고국을 방문한다는 기사. 그는 북한에서 지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핍박받다가 육이오 때 월남했으며, 미국으로 건너간 뒤 평생 수도원에서만 보낸 성자와 같은 분이라고 했다. 한국명은 강은수.

은수는 서울에 도착해서 자신의 안내를 맡고 있는 신부에게 강원도 고성 쪽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 사실이 교계 신문에 나면서 사진도 조그맣게 실렸다.


연희는 집 바깥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았으나 성당의 주일미사에만은 빠지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성당에서 교계 신문을 들춰보다가 한 사진에 눈길이 쏠렸다. 그리고 나서 무심코 읽어본 기사.

연희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토머스 강 신부. 한국명 강은수.

연희는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자세히. 오랫동안.

그 얼굴.

연희는 집에 돌아와서 70년이 되도록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보관해 두었던 보따리를 풀었다. 그 안에서 나온 스케치 한 장. 그것은 그녀가 은수를 만날 때마다 조금씩 그린 그의 얼굴이었다. 그 그림을 완성해서 은수에게 주려고 약속장소로 나가다가 인민군이 후퇴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마을사람들을 묶어서 끌고 갔다는 말도. 연희는 그 말을 듣고 본능적으로 마을 뒷산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산 중턱에서 자신의 집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본 것이다.

연희는 성당에서 가지고 온 신문을 편 채 그 기사 전체를 한참 동안 망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초점 없이 멍하게.

그리고 기사를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다시 읽어나갔다.

토머스 강 신부. 한국명 강은수.

그 이름에서 연희의 손가락은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또다시 사진 쪽으로 손가락을 떨면서 옮겼다.

백 살이 다 된 호호백발 노인의 사진. 그러나 그 눈과 입매가 어딘지 낯이 익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이름.

어떻게 그 이름을 잊을 수 있겠는가. 평생을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름인데.

그 이름과 사진을 다시 한번 연결시켜 보았다.

그리고 또다시. 또다시.

틀림없다.

연희는 몸이 와들와들 떨려왔다.

기사에는 연희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다른 내용도 있었다. 그것도 연희는 손가락을 대고 한 글자 한 글자 확인하듯 몇 번 읽어 내려갔다. 두 방망이 치는 가슴을 억누르며.

육이오 때 월남……, 함경남도 함흥이 고향……, 그리고 97세.

그 나이도 일치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나이까지 살아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연희는 설마설마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의 전 인생에 끔찍한 족쇄를 단 사람. 그 얼굴. 그 이름.

그 사람…….

그 사람이 70년이 지나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지난 시절 동안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던 그 사람.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마을사람들에게 두드려 맞고 불타 죽었고, 아버지와 오빠는 강은수 소좌에게 끌려갔다. 그 뒤 고성 서쪽 어느 깊은 산속의 동굴에서 수십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뉴스를 통해 들었다. 연희는 그것이 강은수가 저지른 일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연희는 한 잠도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고성……, 강은수……, 양민학살……, 신부…….

다음날 아침 연희는 간단한 짐을 챙겨 고성으로 향했다. 손자 연준에게는 아직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일단 고성에 가서 확인해 보자 생각하고 집을 나선 것이다.



연희는 그 신부가 머문다고 하는 고성 대진항 근처의 성당으로 갔다. 강원도에서 가장 북쪽에 있다는 성당이었다.

약간 비탈진 길을 올라 정문도 없는 성당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단층짜리 아담한 성전 앞마당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인 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노신부.

연희는 성당 입구에 멈춰서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 그 광경을 보다가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신부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면서 연희 쪽으로 얼굴을 향했다. 그러나 그대로 지나쳤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고개를 돌려 연희 쪽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뿐.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고 망설임도 없었다. 신부는 그대로 여러 사람과 계속 담소를 나누었다.

연희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대로 서서 바라보았다.

잠시 뒤 연희는 몸을 돌이켰다. 그리고는 곧장 성당 밖으로 나갔다.

그날 밤 여관에서 연희는 밤을 꼬박 새웠다. 전날 한잠도 자지 못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고성까지 오는 동안 버스에서 잠깐 졸았던 것밖에는 없었다.

확실했다. 그 얼굴.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얼굴 모습은 달랐지만 전체에서 풍기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이 설레지도 분노가 일지도 않았다. 다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잠을 잘 수 없었을 뿐이었다.

연희는 다음날 아침 다시 성당으로 갔다.

그를 찾았다.

만났다.

강은수 소좌가 맞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낯선 노파에게 보내는 의례적인 미소만 있었을 뿐.

연희는 스케치 그림 한 장을 넣은 봉투를 내밀고, 그것을 확인한 뒤 자신에게 찾아와 달라는 말만 남기고는 돌아왔다.



은수는 연희를 첫눈에 알아보았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뒤 저만치 성당 입구에서 들어오다 멈춰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노파.

순간적으로 그의 가슴은 얼음장처럼 얼어붙는 것 같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70년이 되는 세월이 흘렀어도 조금도 변하지 않은 듯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물론 얼굴을 알아본 것은 아니다. 한국에 온 뒤, 특별히 이곳 고성에 오고 나서는 옛 그 소녀 연희의 모습이 한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가슴이 아리도록 파고드는 그 추억들. 그 이름. 고성에 온 이후 은수는 현실을 떠나 70년 전의 기억 속에 들어가 옛 그 들판과 산속을 온통 헤매고 있었다. 소녀를 찾아서. 식사를 할 때도, 사람들을 만날 때도, 혼자 있을 때도 머릿속은 오직 하나, 그 소녀였다.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런데 한 노파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우뚝 멈춰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눈길을 무심히 지나쳤지만 다시 한번 바라보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아…….

모습은 달랐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길 속에서 은수는 연희를 보았던 것이다.

연희.

이럴 수가.

그러나 은수는 그쪽으로 가지 못했다.

머리가 혼란스러워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은수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의식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은수는 호텔에서 한잠도 자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성당에서 호텔로 전화가 왔다. 어떤 할머니가 은수를 찾는다고.

은수는 자신이 곧 갈 테니 기다려 달라고 하라는 말을 했다.

사실 은수는 다음날 연희가 자신을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잠도 자지 못했다.

은수가 성당으로 가서 연희를 만났지만 그녀는 봉투를 하나 내밀고는 그대로 가버렸다. 다음날 자신에게 찾아오라는 말만 남기고.

은수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다.

아……!

다음날 오전 은수는 연희에게 찾아가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그러나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 뒤 무슨 말인가가 오가긴 했지만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날 오후, 은수가 돌아간 뒤 연희는 넋이 나간 채 한동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연희가 간 곳은 고성경찰서.

연희는 그곳에서 양민학살범을 신고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과 강은수 소좌를 만난 과정을 상세히 진술했다. 강은수의 정체는 인민군 159부대 지휘관. 소좌. 빨갱이. 공산당. 고성에서 발견된 30구가 넘는 시신을 죽인 장본인. 연희 자신의 아버지와 오빠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 등등.

경찰이 성당으로 은수를 찾아갔다. 은수는 별 말 없이 경찰서로 가서 자신의 과거를 고백했다.

연희도 신고자로서 다시 경찰서로 가서 은수와 대면했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은수가 미국 시민권자인 것을 알고 외교부를 통해 대사관에 연락했다. 또한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언론에 알려지지 않도록 했다.

은수는 미국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지만 통화를 거절했다.

그 뒤 경찰은 연희에게서 손자 연준의 연락처를 받아 전화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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