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밤마다

by Rudolf

假眠夜夜眠無假 | 가면야야면무가

밤이면 밤마다 잠은 이루지 못하고


연준은 납골당에 할머니와 낯선 할아버지의 유골을 함께 모신 뒤 돌아섰다. 두 분은 같은 날 돌아가셨다. 연준이 고성으로 찾아간 지 사흘 만에. 병원의 두 침대 양쪽에 나란히 누워서. 두 시간 간격으로.

연준은 아직도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마치 구름 위를 걷듯 정신이 몽롱하고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연준은 할아버지나 양민집단학살, 육이오, 신부와 같은 단어가 너무 낯설었다. 그런 말들은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나왔던 것이지 자신의 현실에서 등장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특히 할머니의 부재는 연준의 일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 상실감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었다.

“힘 내.”

“그래. 맞아. 그게 할머니가 바라시는 거야.”

“이런 말 지금 하는 것이 좀 어울리지 않겠다만, 너 빨리 장가가라. 할머니도 그걸 원하실 거야.”

“할머니가 너를 끔찍이도 아껴주셨는데 이제 어떻게 혼자서 사니…….”

“당분간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라.”

“건강. 알았지?”

연준은 마치 꿈을 꾸듯 며칠을 보냈다.

세상은 참 이상했다. 연준 자신을 포함해서.

아무리 이해할 수 없고 슬프고 참혹한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차츰 잊혀지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익숙해져 간다. 그러다가 혹 잊혀진 세계가 갑자기 출몰해서 현실이 된다면 이번에는 그것이 또 이국의 낯선 광경이 되는 것이겠지. 설사 그렇더라도 지금은 낯설어진 할머니의 세계가 갑자기 도로 나타나 주었으면 좋겠다고 연준은 생각했다.



연준은 집에 돌아올 때마다 거실에서 한동안 멍한 상태로 서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파에 가서 앉을 수도 없었다.

슬프다거나 비통하다거나 하는 것보다는 마치 사고가 마비되어 버린 것 같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듯, 현실이 아니라 가공의 세계에 빠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의식하지 못한 채 연준은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연준은 할머니의 물품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할머니의 체취가 묻어 있을 그런 것들을 만져보고 느껴보고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준은 할머니의 유품을 뒤적거리다가 생소한 것을 발견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낯선 남자, 노신부, 할아버지, 양민학살자라는 사람의 스케치 그림.

고성경찰서에서 받아온 봉투에서 나온 그림이다. 처음 그 봉투를 받았을 때 얼핏 안을 들여다보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할머니의 유품 중에 그것을 포함시키고 나니 의미가 달라졌다.

봉투에서 낡은 종이의 스케치를 꺼내어 바닥에 놓으니 갑자기 70년의 세월이 연준의 눈앞으로 클로즈업되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 그림은 할머니가 꽃다운 시절 그린 것이라고 했다. 고성의 시골 마을에서 사랑하는 남자에게 주려고 가슴에 안고 갔다가 평생 그리움과 증오의 대상이 된 그림.

20대 후반의 젊은 엘리트 인민군 장교. 그러나 군복과 군모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젊은이의 밝은 얼굴이었다. 연필 스케치. 그리고 매우 섬세한 그림이었다. 보통의 영정 사진 크기보다 조금 작았다. 마치 스케치북을 잘라서 그린 것 같았다. 얼굴 모습은 세밀히 묘사되어 있지만 머리칼과 나머지 목과 와이셔츠 칼라 부분은 대충 처리했다. 크로키 느낌도 많이 준다. 16살 소녀가 그린 것치곤 꽤 그럴듯했다. 앳된 소녀의 꿈과 애틋한 정성이 담긴 그림. 거기에 사랑도 들어가 있었겠지. 애초에는 흰색 종이였겠지만 지금은 아주 누렇게 변색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고풍스러움을 넘어 어딘지 고급스러운 느낌까지 준다. 할머니가 가끔 연필로 화분이나 창밖의 풍경을 대충 그리는 것을 보고 미술적 감각이 꽤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잘 그릴 줄은 몰랐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스케치에 그 낯선 신부 할아버지의 느낌이 그대로 배어 있는 점이었다. 살인마 괴뢰군 장교의 모습이 아니라 참신하고도 싱그러운 젊은 남자. 그 중에서도 맑고도 꿈꾸는 듯한 눈매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눈은 그 노신부의 눈매와 정말 많이 닮아 있었다. 선하고 지적인 느낌.

연준은 할머니 사진 중에서 가능하면 젊고 고운 모습을 찾아서 고른 뒤, 그 스케치 그림의 크기에 맞춰서 다시 사진을 뽑았다. 그리고 그 사진과 스케치를 옆으로 붙여서 두 분이 한꺼번에 들어간 영정 사진을 만들었다. 70년 세월을 건너뛰어 두 분이 함께하시라고.

그렇게 하고 나니 연준의 가슴이 갑자기 아파왔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그 고된 세월 동안 그 그림을 간직하고 있었을까.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버지와 오빠를 총살하고, 나머지 자기 가족들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 남자. 특히 어머니와 할머니가 매 맞고 불태워 죽는 장면을 보았을 때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연준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처절했을 그 마음. 절망감. 하늘이 그 마음 알까, 땅이 그 고통을 알아줄까? 복수심과 그리움과 죄책감을 동시에 지닌 열여섯 소녀의 가슴.

아…….

그렇게 70년을 살 수 있는 것인가……?

연준은 할머니 대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연준의 아린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여자의 마음을 남자가 어찌 알랴마는 그래도 같은 인간이기에 할머니 가슴속에 들어가 그 긴 세월 더듬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


연준은 다시 추모공원을 찾았다.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아니, 낯선 남자.

두 분의 유골이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비현실감.

연준은 머리를 흔들고 나서 할머니에게 또 오겠다고 약속하고 몸을 돌렸다.

유골 봉안실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다가 문득 작은 조약돌 하나가 눈에 띄었다. 허리를 숙이고 집어들고서 바라보았다. 매끈하고 맑은 색들도 많건만 하필 거무튀튀하고 울퉁불퉁한 못생긴 돌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연준은 그 작은 돌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히 살폈다.

참 못났다.

아주 검은색도 아니고 지저분하고 어두운 색에 이것저것 잡색이 섞여 있는 데다가 잡티까지 마구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잔금이 많이 가 있고. 연준은 눈을 부릅뜨고 그 선들을 세밀히 바라보았다. 개미 다리 같은 미세한 금들. 제멋대로 이리저리 뻗어 있고, 서로 엉기어 교차하며 그 아스라이 작아지는 금들 사이에 저들끼리 경쟁하듯 크고 작은 넓이의 세모 네모 다섯모 여섯모 등등의 모양이 서로들 마주 보고 나 있다. 그 금들이 마치 억겁의 세월 전에 만들어진 듯 조약돌 위를 고집스럽게 달리고 있었다.

연준이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사이에 앗! 또 하나 금이 가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벌써 억겁이 하나 지난 모양이다. 순간 연준은 마음이 아팠다. 돌에 금 가는 것처럼 연준의 마음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

아니다. 할머니…….

연준은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 가슴에 금이 갔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아파하지 않는다.

연준만 아팠다.

할머니는 영정 사진 속에서 고요히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한 채.

연준은 조약돌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무수했던 그 잔금들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두루뭉술 조약돌만 보이는 것이다.

못생긴 돌.

연준이 살며시 조약돌을 내려놓고 허리를 펴자 할머니가 아쉬워한다. 이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발견되었는데…….

할머니…….

그러나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할머니에게서 세상으로.

조약돌 버리듯 할머니에게서 떠나 연준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연준은 노총각을 넘어 왕총각이다. 마흔이 넘도록 선도 무지 많이 보고 소개도 엄청 받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연준은 그 어떤 상대에게도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어떤 여자는 마음이 따뜻할 것 같지 않았고, 또 어떤 숙녀는 모두 다 마음에 드는데 눈매가 할머니와 달랐다. 한번은 거의 결혼 문턱까지 갔었다. 그러나 여자가 무심코 뱉은 한마디에 연준의 마음이 돌아서고 말았다.

어떻게 할머니 모시고 살아요? 요즘 시부모하고도 함께 안 사는데.

그래, 그 말이 맞다. 세태가 그러니까. 그리고 할머니도 늘 그렇게 말했다. 우리 손주 노총각 장가가면 나는 해방되는 거다. 나 혼자 나가서 내 맘대로 살 거니까.

그러나 연준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할머니가 연준의 세상 전부였던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고향이라는 고성에 대해서도 어쩌다 지나가듯 언급했을 뿐이다. 가끔 고향인지 어딘지의 산이나 들로 논밭으로 나다니며 꽃이랑 풀이랑 나뭇가지랑 따고 뜯고 꺾고 하던 이야기들을 할 때는 추억보다도 한숨이 더 많이 묻어나왔다. 지명도 말하지 않았고 사람들, 예를 들어 친구들 이름은 물론 가족이나 친척들을 부르는 언니나 어머니나 삼촌이나 조카 같은 호칭조차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연준은 할머니가 슬픈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제 할머니의 과거 극히 일부를 안 뒤 연준은 가슴이 메었다.

연준의 사업은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었으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열도 약간 있는 듯. 그러나 열감일 뿐 막상 열을 재보면 정상이다. 아마도 할머니의 슬픔이 연준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그런 것 같았다.


며칠 전 연준은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요즈음 그것이 연준의 마음을 몹시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 유품은 아주 특이한 것, 아니 사실은 평범한 것이었다. 보통사람들이었다면 그랬을 테지만, 그러나 할머니의 유품 속에 그것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기다란 가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듯 녹슨 가위.

기다란 가위 하나가 누렇게 변색된 수건에 싸여 있었다. 수건은 처음에는 흰색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렇게 변한 그 수건 한복판에 더 짙은,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짙은 누런색이 넓게 퍼진 듯이 찍혀 있었다.

은장도 대신 가위? 옛 여인들이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 허리춤에 지니고 다녔다는 은장도 말이다. 그런데 은장도가 아니라 가위다.

그리고 짙누른 그 색은……?

연준은 그 수건을 다시 꺼내어 펼쳤다.

가위를 내려다보았다.

녹슨 가위를 그렇게 깊이 감춘 채 지니고 있었던 할머니. 오랜 세월 동안.

할머니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거의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할머니 자신뿐만 아니라 연준의 부모에 대해서도. 연준은 두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는 실종. 할머니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말해 주었어도 아버지에 대해서는 어쩌다 지나가듯, 아니면 무심코 한두 마디 했을 뿐 그 이상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아주 오래 전, 연준이 중학교에 다닐 때쯤일 것이다.

연준이 집 안에 있는 가위를 가지고 장난하다가 잘못해서 손을 찔린 적이 있었다.

그때 할머니는 기겁을 하며 가위를 빼앗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니 애미처럼 죽고 싶어?”

평소에 그렇게 인자하시던 할머니. 그러나 그때의 그 표정과 어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연준은 그러한 할머니를 보고 겁을 집어먹었었다.

“니 애비가 가위로…….”

할머니는 이렇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것 같았지만 그 순간 입을 닫고 말았다.

연준은 까만 눈을 들어 할머니 입을 쳐다보았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는 할머니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먼 옛적의 기억.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문득 그때 그 일이 다시 떠올랐다. 사실은 그 일 이후 몇 번 연준의 머릿속에 그에 대한 의문부호가 떠오르긴 했었지만 의식적으로 지워버리려 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녹슨 가위를 보자 어렸을 적 집 뒤쪽의 금이 간 낡은 굴뚝에서 가는 연기가 새어나오듯 연준의 머릿속에서 그 기억이 슬그머니 스며나오는 것이었다.

연준은 늘 할머니가 하는 이야기만 듣고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할머니가 자신이 약간씩 언급하는 것 외에는 아무리 물어도 더 이상은 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연준은 어릴 때부터 그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 그 이상은 궁금하지도 않았다.

혹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오겠지 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잊어버렸다.

그리고 할머니는 옛 사랑을, 아니 옛 원수, 그것도 아니고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복잡한 남자를 만나고 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어떠한 이야기도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니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남자의 스케치를 통해 해결되었다.

그 다음은 어머니와 아버지.

혹 그 가위와 관련이 있을까?

가위…….

그 가위에 스케치만큼이나 엄청난 일이 간직되어 있는 듯이 느껴졌다.

혹 남들이 알지 못할 어떤 끔찍한 비밀이나 비극이라도.

할머니에게서 듣지 못한 비밀한 이야기, 그 가위가 들려줄 수 있을까?

연준은 가위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다시 누런 수건으로 싸서 할머니 유품 속에 집어넣었다.



연준은 고성으로 다시 차를 몰았다. 무엇을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다. 몇 년 전에 통일전망대 관람차 고성에 다녀온 적이 있다. 물론 얼마 전에 할머니를. 찾으러 가기도 했었지만. 그리고 의류업계 지역모임에서 단체로 고성의 명파해수욕장에서 행사를 가진 적도 있었다. 깨끗하면서도 인상이 깊은 도시였다. 동해 검푸른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낭만적인 도시. 고성이라는 예스러운 이름과 달리 활달하고 혁신적으로 보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것보다는 어딘지 우울한, 민족의 비애까지 품은 비련의 도시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할머니의 슬픔이 배어 있는 도시였다.

할머니는 이곳을 떠난 뒤 다시 찾아와 보았을까?

혹 남몰래 와서 남아 있는 친척들을 찾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어쩐지 그랬을 것 같지는 않았다. 연준 같았어도 차라리 외면했을 것 같았다. 너무도 큰 상처가 남겨진 원망의 장소일 테니까.

사랑과 증오와 학살과 후회가 담긴 곳.

너무도 가슴 아픈 곳.

연준도 할머니를 따라 가슴이 아팠다. 마치 자신이 할머니 마음 같았다.

고성의 지금은 옛 그 도시가 아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는 항상 70년 전 그 모습이었을 것이다.

문득 연준에게도 할머니가 보았던 그때의 광경이 보이는 듯했다.


[다음 화로 계속]

이전 04화푸른 산을 헤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