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내려온 소년 (2)

유년의 이야기

by Rud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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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송우는 잠을 설쳤다. 비록 초등학교 4학년이지만 알 건 다 안다. 사실은 생일이 빨라 아홉 살 반이다. 그렇다고 몸집이나 키가 남들에게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적은 물론이고.

송우는 저녁때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공중부양이니 염력이니 초능력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죄다 찾아보았다. 익히 짐작하는 바였지만 모두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유튜브로도 그러한 장면을 수없이 확인했다. 그러나 송우가 아무리 어려도 낮에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서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남들에게 한다 해도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정도로 반응할 것이다. 속으로는 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송우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었다. 송우가 돌았거나 세상이 돌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나 수천, 수만, 수십만 년, 아니 그 이상 존재해 왔을지 모를 세상이 오늘 갑자기 송우를 위해서 돌아버렸을 리는 없다. 정말로 누군가가 돌았다면 송우 자신이겠지.

그런데 송우는 스스로가 돌았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

소년을 만나기 전까지는 절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송우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한테 그 이야기를 하면, 첫 마디에 책 좀 그만 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가버리겠지. 흥미도 호기심도 보이지 않고. 그것은 송우가 반대의 경우라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마음속에만 묻어두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정했어도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눈만 말똥말똥 뜬 채 침대에서 뒤척거리다가 잠이 드는 둥 마는 둥하다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캄캄한 한밤중에.

“그런데 왜 한국인이지?” 송우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한국말도 하고.”

우주인이 한국인처럼 생기고 한국말도 하나? 아니, 그것보다도 우주인이 왜 지구인처럼 생겼나고? ET나 뭐 그런 식으로 생겼다면 이해할 수도 있겠는데. 그리고 말도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그런 방식이라면 몰라도 어떻게 사람, 게다가 한국인처럼 말을 하는 거냔 말야…….

이것은 내일 만나 꼭 물어봐야겠다. 다른 것은 그렇다 쳐도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 참, 하늘에서 온 소년은 내일도 역시 그 시간 그곳에 오겠다고 하고 가버렸다. 하늘로 간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일어나서 느긋하게 걸어가 유유히 교문을 나서서 한가롭게 길을 걸어가 다른 건물들에 가려서 사라졌다. 여기에서 사라졌다고 한 표현은 어딘지 미스터리한 느낌이 드는 소년이라서 그렇게 한 것이다. 사실 이것도 참 궁금했다. 그냥 하늘로 쑥 올라갔다가, 나타날 때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면 어디 덧나느냔 말이다. 진짜 하늘에서 왔다면. 공중에 붕붕 뜨기도 하더만. 그렇다면 꼭 걸어서 나타나고 걸어서 사라져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아, 냅둬라. 다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거지 뭐. 하늘에서 산다고 별다르겠냐. 저나 나나 다 눈도 있고, 코도 귀도 입도 있고 팔다리도 다 있으니 알아서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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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음날 아침, 송우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도 새벽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는 조금 찌뿌듯하고 눈도 좀 뻑뻑한 것 같은데,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그냥 일어나 앉은 것이다.

게다가 송우는 약간 흥분상태이기도 했다. 정말 소년이 오늘 또 올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대하면서 진짜 우주인인지 하늘에서 온 사람인지 확인할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울렁거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학교에 가서도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원래 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지만 이날은 더욱 고립된 채, 게다가 정신이 반은 나간 채 수업을 들었다. 송우가 오늘은 특별히 더 기묘할 정도로 외톨이로 있는데도 다른 아이들은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단 한 아이만 빼놓고는. 성이 아주 특이한 묘선희라는 여자애였다.

묘선희는 송우가 생각하기에는 완벽한 천사다. 모든 면에서 다. 외모나 성격이나 마음 씀씀이나 모든 것이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송우가 반에서는 사실상 왕따로 지내고 있는데도 선희는 아무렇지 않게 먼저 다가와서 송우에게 말을 걸어주고 어떤 때는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무리 아이들 세계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 소문이 날 수도 있고, 또 함께 왕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송우는 선희가 전학 온 날 묘씨에 대해 인터넷을 다 뒤져 알아보았다. 송우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 모두 그런 것 같았다. 그 뒤 반 아이들이 여기저기에서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아무튼 송우가 찾아본 것을 대강 정리하면 이러했다.

묘(苗)씨는 아주 희귀한 성이다. 중국의 역사서인 《북사(北史)》에 의하면 우리나라 삼국시대 백제의 8대 성은 ‘사(沙), 연(燕), 협(劦), 해(解), 진(眞), 국(國), 목(木), 묘(苗)’씨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 정(貞)씨가 더해져 9대 성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중국 고대국가 중 하나인 남제(南齊)의 역사서인 《남제서(南齊書)》에 의하면 위의 아홉 개 성씨 외에 부여(夫餘), 복(福), 골(骨)씨가 있었다고 한다. 복씨 중에는 백제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게 패망한 뒤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백제 무왕(武王)의 조카인 복신(福信)이 있다. 위의 백제 9대 성 중에서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성은 국씨, 연씨, 진씨, 묘씨 넷밖에 없다. 이러한 백제의 8대 성씨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의 〈최치원전〉에도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그럼, 계백(階伯) 장군의 성은 계씨인가?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계백 자체가 성이라는 설에서부터 계백이 단지 이름일 뿐이라고 하는 것 등등. 하지만 현재로선 이름이거나 별명일 것이라는 설이 가장 힘을 얻고 있다. 조선 후기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계백명승백제동성(階伯名升百濟同姓)’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계백의 이름은 승(升)이며 이는 백제와 성이 같다’는 뜻이다. ‘동성(同姓)’이라는 말은 백제 왕실과 같은 성, 즉 ‘부여(夫餘)’라는 말이다. 백제 당시의 고대사회에서는 왕족이나 귀족 및 고위관리 외에는 성을 쓸 수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계백은 이름이고, 성은 부여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따라서 계백장군의 전체 이름은 부여승(夫餘升) 또는 부여계백(夫餘階伯)이 될 법하다. 이 설명에 의하면 계백은 별명이 된다. 하지만 이 역시 가설일 뿐이어서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선희는 4학년이 시작되자마자 지방 어디에선가 전학 왔다. 부모님과 함께 송우의 동네로 이사 온 것이다. 그리고 전학 오는 즉시 학교 전체의 퀸이 되었다. 게다가 모든 아이들이 접근하려고 했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왜 그렇게 도도했는지 어느 누구하고도 쉽게 말을 섞지 않았다. 그러던 애가 오직 송우에게만은 오히려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곤 했던 것이다.

이날도 선희는 창가 책상에 앉아 저도 모르게 축구 골대 뒤 벤치를 골똘히 내다보고 있는 송우에게 다가왔다.

“어제 그 애 누구니?”

송우는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았다.

“누구?”

“축구 골대 뒤에서 함께 앉아 있었잖아.”

“…….”

“친구니?”

“…….”

“그런데 넌 왜 벤치에서 넘어졌니? 다치진 않았어?”

“응……. 그거 어떻게 알았어?”

“과학실에서 정리하고 나오다가 봤어. 꽤 친한 것 같더라. 그 애 우리 학교 아이 아닌 것 같은데…….”

“사실은 나도 잘 몰라. 어제 처음 봤어.”

“그래……? 무척 친하게 보였는데……. 나는 너한테 친구가 생겼는 줄 알고 좋아했었어.”

선희의 눈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을 보자 송우는 갑자기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랬더니……, 반 아이들이 모두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송우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좋은 애 같더라. 잘 사귀어 봐.”

선희는 미소 지으며 돌아서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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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는 아이들 눈을 피해 펼쳐놓고 있었던 과학백과 책으로 눈을 돌렸다. 마침 펴놓고 있었던 페이지의 반중력이라는 항목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머릿속에 그 설명은 하나도 안 들어오고 선희의 얼굴과 어제 그 소년의 모습만 뒤섞여 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송우는 문득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선희를 바라보았다. 선희는 막 자리에 가서 앉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낸다. 조그맣고 하얀 플라스틱병. 겉면에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송우는 그 광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것을 아직도 쓰나? 저 하얗고 갸름한 손에.

그 병은 한 달 전 과학시간에 만든 손 세정제였다. 그때 과학실에서 두 가지 형테의 세정제를 만들어 반 아이들이 모두 나누어 가졌다. 그러나 송우는 그것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고 한 방울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희는 그것을 아직도 가지고 다니는 것이었다. 지금껏 그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고 있다가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송우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선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송우를 바라보았다. 선희만 고개를 숙인 채 세정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온 신경을 그리로 쏟고서 막 꼭지를 누르려 하는 참이었다.

송우는 그 순간 세정제를 낚아챘다. 선희가 깜짝 놀라 손을 움츠리고는 송우를 올려다본다. 선희뿐만 아니다. 반 아이들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송우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송우는 아무런 말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선희도 말은 없이 놀란 얼굴로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송우는 세정제를 들고 그대로 교실 밖으로 나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쓰레기통에 세정제를 던져버렸다.


[다음 화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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