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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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희는 부모님과 함께 춘천의 소양호에 다녀온 뒤 리포트를 썼다. 그것으로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주최하는 수자원보호 캠페인 공모에 응모해서 고등부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래서 그 상으로 수시전형에 도전했던 것이다. 아깝게 실패했지만.
현희가 쓴 리포트의 제목은 ‘한반도의 호수와 그 주변 생태계 현황’이었다.
한반도에는 모두 62개의 호수가 있는데, 남한에 45개(자연호수 9, 인공호수 36), 북한에 17개(자연호수 9, 인공호수 8)가 있다. 이들을 분류해서 가나다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북한의 자연호수에는 대부분 포(浦)라는 말을 쓴다는 사실이다.
[남한] 자연호수
1) 경포호, 2) 동정호, 3) 백록담, 4) 송지호, 5) 시중호, 6) 영랑호, 7) 우포늪, 8) 청초호, 9) 화진포
[남한] 인공호수
1) 간월호, 2) 경천호, 3) 광주호, 4) 괴산호, 5) 나주호, 6) 남양호, 7) 담양호, 8) 대청호, 9) 백운호수, 10) 보문저수지, 11) 삽교호, 12) 상사호, 13) 소양호, 14) 시화호, 15) 아산호, 16) 안동호, 17) 영산호, 18) 영암호, 19) 옥정호, 20) 용담호, 21) 운문호, 22) 은파호, 23) 의암호, 24) 임하호, 25) 장성호, 26) 주암호, 27) 진양호, 28) 청평호, 29) 춘천호, 30) 충주호, 31) 파로호, 32) 팔당호, 33) 하동호, 34) 합천호, 35) 호명호수, 36) 횡성호
[북한] 자연호수
1) 광포, 2) 동번포, 3) 삼지연, 4) 삼일포, 5) 서번포, 6) 소동정호, 7) 장연호, 8) 천아포, 9) 천지
[북한] 인공호수
1) 낭림호, 2) 구암호, 3) 부전호, 4) 만포호, 5) 서흥호, 6) 수풍호, 7) 연풍호, 8) 장진호
현희는 이들 분류 외에도 각 호수의 사진을 곁들이고 넓이와 그 인근의 생태계, 그리고 댐이나 강 등 주변환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주로 인터넷을 이용해서 조사했지만, 북한 지역 호수의 정보와 사진이 빈약할 경우에는 통일부나 국토교통부에 가서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이 자료를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라비아어, 인도어, 태국어, 베트남어 등 한국어 포함 총 13개 국어로 만들어 놓았다. 이것을 위해 학교 선생님들은 물론 외국어대학의 도움을 받고, 몇몇 환경운동가의 협조도 받았다. 여기에 더해 교회의 미대 다니는 언니에게 부탁해서 호수 전경의 사진을 삽화로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그 자료를 완성하는 데 꼬박 두 달이 걸렸다. 그 결과 한국수자원공사 고등부 최우수상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소년이 호숫가라고 말하는 순간, 현희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의 힘이 풀린 것이다.
‘그’ 호숫가.
작년 여름에 부모님과 소양호에 갔을 때, 그곳에서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호반 유원지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고 나서 현희는 아침 일찍 동이 튼 지 얼마 안 되어 텐트를 나섰다. 그리고 유람선을 타고 가면서 보았던 숲길을 혼자서 걸었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풀들, 아침 안개 사이로 보이는 먼 숲, 찰랑거리는 물결 위로 비치는 햇살들을 황홀한 마음으로 감상하며 걷다가 호수 쪽으로 약간 튀어나간 바위를 발견했다. 겉에서 볼 때는 무성한 나무에 가려 있어서 그런 바위가 있는 줄 몰랐으나, 나뭇가지 사이로 어떤 물체가 보이기에 호기심이 나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나뭇가지들을 조금 헤치고 그 틈으로 내다보니 바위 위에 어떤 물건들이 놓여 있는 것이었다. 잘 개켜져 있는 옷가지와 신발, 학생용 백팩 가방, 그리고 알록달록한 무늬 표지의 작은 노트가 한 권.
현희는 가슴이 덜컹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찾으려 반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텐트에 놔둔 채 그냥 나왔던 모양이다.
현희는 겁이 나서 얼른 텐트로 돌아가 부모님에게 말하려고 급히 돌아서서 뛰다시피 몇 발자국 내딛다가 우뚝 발을 멈췄다.
아냐. 혹시 내가 잘못 생각했는지도 몰라.
현희는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그 바위로 살금살금 되돌아갔다.
그리고 두 방망이 치는 가슴을 억누르고 바위 근처까지 다가가서 다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좀 전과 똑같았다. 그리고 사람 그림자는 물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침 새소리와 저 아래에서 들려오는 물결 소리 외에는.
현희는 조심조심 더 다가가서 작은 노트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살짝 열어보았다. 여러 시가 적혀 있었다. 그 다음에 소녀적인 서툰 삽화들. 또 약간의 독백적인 글들. 그렇게 여러 페이지가 계속되다가 한 페이지를 펼치고서 현희는 숨을 멈췄다.
수시전형 리포트 준비
그 다음 페이지를 열어보았다.
제목 – 한국의 호수들
이제 현희는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깨알처럼 적어놓은 기획의도와 그 내용들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적혀 있었다.
현희는 그 노트를 품속에 넣어서 텐트로 가지고 갔다. 그때 야영장 주변은 무척 소란했다. 수상구조대와 경찰이 여기저기 깔리고 앰뷸런스까지 와 있었다. 텐트에서도 모두 사람이 나왔는지 말도 못 하게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현희가 야영장 가까이 다가가자 저 멀리에서 엄마가 현희를 알아보고 화들짝 놀란 듯 달려온다. 손에는 현희의 분홍색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엄마는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와서 현희의 팔을 와락 붙잡았다.
“이것아, 어디를 갔었어? 핸드폰도 안 가지고!”
엄마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현희가 엄마 품에 휩싸인 채 텐트로 가는 중에 경찰 몇 명이 산책로 위로 뛰어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야영장 근처에서 한 여학생이 호수로 투신했다고 한다. 마침 그 바위 절벽 아스라이 저 맞은편, 호수 건너편에 나와 있던 사람이 바위에서 누군가가 뛰어내리는 듯한 광경을 보고서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현희는 텐트로 들어가서 엄마한테만 살짝 그 노트를 내밀었다. 엄마는 노트를 주욱 들춰보더니, 현희처럼 뒷부분에 가서 눈을 멈췄다. 그리고는 숨도 쉬지 않는 듯 무표정하게 잠시 페이지를 넘기다가 조심스럽게 노트를 닫았다. 그리고는 텐트 입구를 살짝 열고 밖을 살피는 듯하더니 다시 안으로 들어와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현희에게 말을 했다.
“너는 아무 소리 하지 마. 이건 내가 가지고 있을게.”
7
현희는 주저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우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가 어지러운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맑은 겨울 하늘처럼, 아니 호수, 그래, 맑은 호수처럼 머릿속은 맑다 못해 명징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희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도 또렷이.
소양호의 새벽,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 보이는 바위절벽. 그리고 그 위로 허리를 잔뜩 숙이고 살금살금 다가가는 소녀. 그리고 한 손을 뻗어서 무엇인가를 잡으려 한다.
그때 벼락같은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사실은 현희의 마음속에서. 그러나 문득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소년이 속삭이듯이 하는 말이었다.
“수시전형에서 내가 공작을 좀 했어요.”
현희는 고개를 들어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그 리포트를 빼버렸거든요.”
소년은 생글거리며 말을 잇는다.
“한 번 더 기회를 드리려고.”
소년은 돌아섰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간다. 그런데 몇 발자국 걷다가 한 발이 공중으로 올라간다. 그러더니 그 다음 발이 더 높이 올라가고. 그렇게 해서 마치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라가듯 한 발 한 발 차례로 올려놓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누군가를 바라본다.
현희도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운이 저만치에서 서 있었다. 그러더니 깜짝 놀란 듯 현희 쪽으로 달려온다.
현희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소년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 화로 계속]